두 기업의 과거를 한 번 보자. 지금이야, 네이버가 '공룡' 수준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거기에 비하면 다음은 그저 조그만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하지만, 5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단 5년 전만 해도 말이다.

내가 '네이버에 물어봐'라는 소리를 주위 사람들로부터 듣기 시작한 건 아마도 2004년부터다. 그전에는 검색 하면 야후나 엠파스였다. 하지만, 그것도 큰 의미는 없었다. 최고의 인터넷 서비스는 '메일'과 '카페'였으니까. 그리고, 이 분야에서는 다음을 따라갈 기업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때의 공룡은 다음이었다.

어느 회사든 독특한 DNA가 존재한다. 그 DNA는 대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양날의 칼이다. 예를 들어 삼성 사람들은 매우 치밀하고 정교하다. 그들은 늘 확실하게 일처리를 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시스템의 삼성'이라거나,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흔한 표현이 그저 자기들이 우겨댄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가는 건 아니다. 나름 그렇게 받아들여질만 하니까 그렇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 장점이 그대로 단점인지라, 이들은 모험정신이 부족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더욱이, "장군님이 지시하면 우리는 한다" 식으로 시키는대로 따르는 버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업이미지에도 별로다. 반면 현대 사람들은 다르다. 창업자가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거북선을 보여주면서 현대중공업 신화를 써낸 그 불굴의 정신이 현대의 DNA다. 안 되면 안 된다고 하는 대신 수없이 창조적인 발상을 해가며 위기를 해결해 넘겨내고, 아무리 괴로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들은 '불굴의 기업가 정신'의 표상이며, '다이나믹 코리아'의 살아있는 증거다. 문제는 이게 그대로 단점이 될 때다. 뭔가 한 방 터뜨리는 건 잘하는데, 뭔가 마무리가 좀 못미더워서 여전히 현대차는 일제 차를 못 따라잡고, 일단 밀어붙이고 보다가 일 터지면 수습이 안 돼 온갖 욕은 다 들어먹는다. 결정적으로,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허술한지라 군데군데 비효율 투성이다.

다음과 네이버는 인터넷 업계의 현대와 삼성과 비슷하다. 네이버의 시스템은 효율적이고, 네이버의 시나리오는 늘 치밀하게 준비돼 있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하려면 그 수준에 따라가는 것 자체가 몹시도 피곤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도 된다. 반면 다음의 시스템은 좀 뭐가뭔질 모르겠다. 이쪽에선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저쪽에선 저런 소리를 하고, 새로운 시도가 많은 것 같긴 한데 제대로 수익을 내는 경우는 또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 두 인터넷 기업의 차이는 시스템과 창의력의 문제가 아니다. 내 생각엔 오히려 그들의 공식적인 '가치'와 현실에서의 '위치' 사이의 괴리가 문제인 것 같다. 네이버의 경영진들은 늘 공식적인 자리에 서면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과, 자신들을 성장시키고 오늘의 성공을 이끌어 준 네티즌들에 대한 감사를 나타낸다. 요컨대 네이버의 공식적인 가치는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다. 반면 다음의 경영진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다음의 성공과, 다음의 아름다운 미래를 말한다. 사회를 향해 뭔가 베풀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들이 성공하면 사회도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다. 난 이들이 옳다고 본다. 다음 직원들의 더 나은 근무여건을 위해 제주도에 회사를 세웠지만, 결과적으로 그덕에 제주가 발전한다.

그런데 사회에서의 위치는 다르다. 사회에 뭔가 더 많은 기여를 하겠다는 네이버는 늘 욕을 먹는다. 1위 기업이 감수해야 하는 당영한 비판 정도가 아니라, 원색적인 비난이다. 오히려 이윤 추구에 올인하는 다음은 칭송을 받는다. 최근 촛불집회 기간 동안 다음 아고라가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네이버에 비교해 다음이 매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기업인 것처럼 일부에서 얘기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그런데, 과연? 삼성이 에버랜드를 통한 경영권 승계 의혹 때문에 수년간 홍역을 치루면서도, 김용철 변호사 이전까지는 나름대로 위기관리를 잘 해왔던 것과는 달리 현대의 피를 물려받은 현대자동차는 글로비스를 통한 편법증여 한 건 만으로 1년 동안 토네이도에 휩싸인 것 같은 대가를 치뤄야 했다. 다음은 아마도 네이버를 보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반사이익에 도취돼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다음이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