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머리2011. 3. 21. 17:04

"야, 그것 참 용하구나."

저는 늘 똑똑한 학생이었습니다. 시험도 잘 치뤘고, 점수도 잘 받았습니다. 그래서 반장도 하고 상장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시험을 봤는지, 몇 점을 받았는지, 반장을 할 때 부반장하던 친구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개근상 빼고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상장을 받았던 건지 등등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건 다 일종의 스트레스였습니다. 해야만 해서 잘 했던 일이었죠. 하지만 아직도 명심보감의 첫 구절은 기억이 납니다.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이 복으로 이를 갚아주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면 화로 보답받는다는 내용. 제가 처음으로 사전을 찾아 뜻을 외웠던 영어단어도 기억납니다. 그것은 선물을 뜻하는 'Gift'였지만, 이 단어는 또한 '재능'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제 재능이 배우고 익히고 외우고 다시 말하는 것이었다면, 그 재능을 가르쳐 주고 북돋아준 건 할아버지였던 모양입니다. 책에서 본 이야기를 기억한 뒤 조르르 달려가 자랑을 늘어놓을 때 할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야, 그것 참 용하구나." 그 얘기가 계속 듣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만 이 말에 용기를 얻었던 건 아닌 모양입니다. 할아버지의 자식들인 제 어머니와 이모, 삼촌은 유난히 책 한 권을 다 외웠다거나, 세계 수백개 국가의 수도 따위를 탈탈 외워냈다는 식의 자랑 레퍼토리를 잔뜩 갖고 있습니다. 퀴즈쇼만 나오면 이 집안 자손들은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TV 앞에 달려들어 경쟁을 벌입니다. 그럴 때에도 할아버지는 뒤에서 말씀하셨을 겁니다. "너희들, 그것 참 용하구나"라고요.

할아버지는 여행작가였습니다. 늘 글을 쓰셨죠. 먼 곳을 다니시고,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하시고, 겪어보지 않은 일을 겪어보자 하셨습니다. 그 덕에 평안북도 산골에서 시작된 삶은 서울을 지나 군산까지 이어졌고, 할아버지의 후손들은 이 땅에 갇히지 않고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갑니다. 할아버지의 서가에 꽂혀 있던 낡은 고전들로 밤을 지새던 후손들은 교사가 됐고, 변호사가 됐으며, 기자가 되어 세상을 누빕니다.

할아버지는 또 의사였습니다. 용한 기술로 환자들을 감탄시키는 의사가 아니라 그냥 의사였습니다. 한 때는 시청앞 번화가였던 거리에서 잘 나가는 병원의 원장이었던 할아버지는 시청이 이사가고 동네가 쇠락해도 계속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불과 몇년전까지도 진료를 계속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환자들은 더 이상 눈이 아파 눈이 보이지 않는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왔던 그 분들은 그저 나이 때문에 눈이 점점 어두워지던 분들이셨죠. 하지만 할아버지의 환자들은 그냥 할아버지가 눈을 봐 주고, 형식적인 안약을 넣어주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던 모양입니다.  그건 약도, 메스도 아닌 믿음의 치료였으니까요. 병원 문을 닫기 직전까지도 그 병원에는 날마다 수십 명의 환자가 몰려들었습니다. 정년을 훨씬 넘겼을 아흔의 노의사에게 환자들이 눈을 맡긴다는 건, 서울에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낚시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낚시라는 건 저 같은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취미였습니다. 고기를 낚아채는 순간의 수백, 수천 배의 시간을 그저 앉아서 기다리는데 쓰다니요. 하지만 주말이면 낚시배낭을 챙겨 저수지로 향하던 할아버지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면 고기는 오게 마련이었죠. 투덜대는 제게 할아버지는 '멍텅구리'라는 바늘이 달린 낚싯대를 주셨습니다. 바늘이 바보처럼 많이 달려 온갖 잡고기를 꾀어 아무렇게나 잡아올리는 낚싯대였죠. 기다리는 시간 없이도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지만, 큰 고기는 멍텅구리에 걸리지 않는 법이었습니다. 하루밤이 흐르면 알 굵은 고기로 가득찬 할아버지의 바구니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피라미로 가득찬 제 바구니의 차이는 계속 두드러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고맙습니다. 참을성없는 우리에게 할아버지는 자신의 길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멍텅구리를 달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물고기와 같은 자식들을 한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자식들이 좋은 선택을 할 때면 그 옆에서 "그것 참 용하구나"라며 우리의 결정을 지지하고 후원해 주셨죠. 그리고 더 넓은 세계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여행작가의 시선으로 펼쳐내 보여주셨습니다. 멀고 험한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다치고 아파할 때면 할아버지는 용한 기술 대신 믿음과 신뢰만으로 우리의 마음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할아버지와의 시간들에 이렇게 많은 추억을 전해주고 가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