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06.03 그것
  2. 2007.04.17 캐비닛
  3. 2007.03.28 공중그네 2
Purslane/서재2007. 6. 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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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한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버렸다. 논문발표회가 끝나고 머리를 식힐겸 집어들었다가 방대한 분량에 오래 지체되었다. 1800페이지가 넘는 3권짜리 책을 집어들 때는 휴식치곤 너무 긴 것 같아서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것(it)>은 스티븐 킹의 최고의 역작이며 대중소설로서의 흥행과 문학적 성과를 동시에 성취했다는 찬사가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순전히 분량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사소설도 아닌 공포소설을 오랫동안 읽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그러나 상권을 읽으며 스티븐  킹은 역시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이 탁월한 작가임을 다시 깨달았다. 

우리나라에서 상,중,하 3권으로 출간되었는데 특히 6명의 친구들이 전화 한통을 받고 24년전 데리로 돌아가려는 도입부분은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실체화 되지 않은 공포를 예민하게 그렸다. 각각의 캐릭터를 그려보게 되는 초반의 묘사는 담담하게 과거의 일을 궁금하게 만든다. 

<셀>에서 평화로운 공원이 폭풍의 전야 같았다면 <그것>의 인물 도입부는 전체의 1/3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전화 한통으로 홀린 듯 어린 시절을 보낸 데리(市)로 돌아가려는 6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어진다.

스티븐 킹은 인간의 공포감을 잘 끌어내는 작가이다. 어린 시절에 본 <캐리>, <샤이닝>, <미저리>의 공포감은 강렬했다. 특히 도시의 공포가 자주 등장하는데 어둡고 눅눅한 지하, 하수구, 쥐, 더러운 먼지들이 한데 뒤엉켜 도시 전체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바로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타인이다. 도시의 익명성은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위협적 존재이다. 데리 역시 스스로 살아숨쉬는 위협적 대상이며 존재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다.

초반이 무형의 공포에 대한 것이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그것’이 어떤 모양을 만들어 감에 따라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것’은 해리포터의 ‘보가트’처럼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것’에게 당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른 것을 보게 된다. 마지막에 최후의 결전에서 드러내는 그것의 모습은 유명한 조형물이 떠올라서 기대가 반감되었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말할 수 없지만)

이 책의 진짜 공포는 아무리 빨리 읽어도 절대 한 호흡에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침대 맡에서 읽다가 책을 내려 놓는 순간 악몽을 꾸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스티븐 킹은 최소한 데이트 약속을 깜박 잊게 만들고, 런던발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뉴욕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워하게 만드는 소설가로서의 목적은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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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서재2007. 4. 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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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스러운 거짓말쟁이가 나타났다. 정교하게 속이지 않아서 좋다. 거짓말 인줄알면서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주고 싶은 능청스러움.


책 <캐비닛> 날개에 날린 작가 소개에는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고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그냥 평범해 보였다. 정규 교육을 받고 글쓰는 재능이 있어보여 몇 년 더 공부했나보다 싶었다. 물론 긴 글을 쓰는 지난한 과정은 생략되어 있겠지만.


그러나 <캐비닛>을 다 읽고 뒤에 붙은 심사평을 대충 넘긴 후 전경린씨와 함께한 수상작가 인터뷰를 보면서 나의 섣부른 판단을 반성했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또 존재하는 구나 싶었다.


도시의 하층민 생활을 경험하고, 막노동판에서 일하다가 25살에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대학에 진학하기도 어려웠겠지만 글쓰는 ‘일’을 하는 2년간 매달 오십만원을 지원해주던 친구가 존재했고, 그러면서 산이나 집에 틀어박혀서 확신도 없이 몇 년씩 글을 쓰는 끔찍한 과정을 자진해서 시작하다니. 움직일 돈이 없어서 앉아서 글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은 대입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에브리데이가 할리데이였지만 암흑같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는 욕심이 별로 없었다. 한달에 팔십 만원정도면 어슬렁거리며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대신 소설을 시작하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위가 헐고, 등짝이 아프고, 편두통과 눈이 아플 정도로 글을 쓰며 부족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에 16km를 걷는다.

그는 말한다. 능청스러운 거짓말은 이런 것이다. 작가는 ‘있는’ 것을 ‘있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있게 만드는 최대의 적은 ‘작가’다. 그는 왜곡시키고 축소시키는 존재이다. 서술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캐비닛>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상피에르의 루저 실바리스처럼 유일한 생존자이며 서술자지만 그래서 진실을 검증할 수 없는 사람이 등장한다. 독자가 진짜 같지만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능청스러운 거짓말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더 풍요로워진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나는 책을 덮고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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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서재2007. 3. 2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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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의 강박증은 『공중그네』처럼 주로 남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성별과 관계없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부풀려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조금씩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에 초월한 의사 이라부만이 여유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소아과에서 아이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싸우는 의사라니. 그야말로 치료의 대상 아닌가. 강박증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며 진짜 환자의 속을 꿰뚫고 의도한 치료였다면 그는 천재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라부는 확실히 정신병이다. (정신병은 천재에게 많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많이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으며, 환자들에게 좋은 치료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도시에 사는 우리는 누구나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 밖으로는 거대해 보이고 싶어서 왜소한 모습을 감추려 한다. 하루에도 모르는 사람들과 수없이 마주쳐야하고 그 속에서 나라는 인간을 각인시키고, 다시 적당히 지우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공중그네』의 주인공들은 그럴듯한 직장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자신의 강박증을 말할 수 없어서 조용히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하나같이 상담을 통해 스스로가 그린 거대한 모습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발견한다.

『공중그네』이야기는 광고문구처럼 유쾌했지만 이라부의 병원은 무서웠다. 어쩐지 상담이라도 받으러 가면 생글생글 웃으며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만 시키면서 괴롭힐 것 같다. 그는 치료를 받으러 온 어떤 캐릭터보다도 매력적인 의사지만 옆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다는 것은 어렵다. 소심한 대부분의 도시민들은 그런 성격을 가지면 사는데 장애가 많아진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이라부에게 보장된 앞길이 없어도 그럴 수 있을까.라고 어쩐지 딴죽거리게 되었다.

그런데 커다란 몸집으로 어떻게하든 될대로 되겠지 하는 표정으로 공중그네를 타고, 캐치볼을 하고, 엉망진창인 글을 쓰는 그 모습에 다들 반했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에서 무얼 본걸까. 궁금했다. 강박증에 걸린 환자들의 사연을 읽으며 정도는 다르지만 자신의 자화상으로, 의사 이라부는 이상형으로 보기라도 한 걸까. 글래머 간호사의 비타민 주사 한 대만 맞으면 나도 마음이 편해질 거라는 상상을 하며.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