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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3 This is Purslane 1
  2. 2007.02.21 This is Bobby Long
동상이몽2007. 2. 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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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ove Song For Bobby Long, 2004 Directed by Shainee Gabel


He'd make a lovely corpse. - Charles Dickens <Martin Chuzzlewit>

사랑했던 사람을 추억하는 눈빛. 하얗게 센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는 차에서 내리며 여기서 인도India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바비. 그러나 우리는 첫 장면에서 바비 롱의 푸르스름한 엄지발가락과 거기에 붙어서 그냥 생채기정도라는 듯 귀엽게 씽긋 웃는 노란 밴드를 보았다. 그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다니면서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이 정도는 아직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으며 그래서 노쇠한 모습에 연민이 느껴진다.

그는 친구 로레인의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이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로레인의 딸 퍼슬레인에게 전화로 연락을 하지만 그녀는 너무 늦게 도착한다. 그렇다. 딸은 늘 어머니를 추억하며 살았지만 한번도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래도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가 살던 뉴올리언즈의 집에 머물면서 로레인을 기억하는 흔적들로 인해 잊고있던 어린시절과 만난다. 모든 사람들이 로레인을 추억하지만 정작 사진 한장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름답게 불렀다는 목소리도 한번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남겼던 애정과 악보가 남아있다.

아, 로레인. 그녀를 떠올리는 친구들의 눈빛에서 나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본다. 도시를 동경하며 바에서 노래를 부르던 시골 소녀. 늙고 주름진 얼굴이지만 애정이 담긴 표정. 퍼슬레인을 보며 어머니를 꼭 닮았구나 라고 말하는 친구들의 표정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퍼슬레인이 어머니의 낡은 집에서 바비와 살게 되면서 막 이사라도 온 것처럼 지저분하던 곳이 조금씩 바뀐다. 그녀는 페인트 칠을 새로 하고, 음식다운 음식을 만들고, 간이 침대 대신 가구를 들여놓고, 블라인드를 올려 집안에 빛이 들게 한다. 그렇다. 로레인의 사진은  나올 필요가 없었다. 퍼슬레인의 모습에 상냥하면서 영리했을 로레인이 보이기 때문이다.

퍼슬레인은 다른 꽃 옆에서 자라는 잡초이다. 민들레같은 잡초이다. 그리고 태양이 지면 함께 진다. 들판에 피었있는 꽃처럼 거칠고 불안해보였던 그녀는 바비 롱을 만나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그리고 바비 롱으로 하여금 자식에게 못다한 애정을 쏟도록 만들어 준다.

오프닝에서 바비가 걸었던 길을 똑같이 퍼슬레인이 다시 걷는다. 장례식에 가던 지친 모습의 바비와 달리 퍼시의 발걸음은 가볍고 힘차다. 로레인의 무덤가에 바비 롱을 위한 연가와, 어머니의 악보와 퍼슬레인 꽃을 내려놓는다.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있는 바비 롱의 비석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묘하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

"I just want to breathe in every day. "Happiness makes up in height what it lacks in length." - Robert Frost

Posted by Purslane
동상이몽2007. 2. 2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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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롱을 위한 연가(A Love Song for Bobby Long)라는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난 어딘가로 날아가던 중이었다. 아마도 2만피트 쯤 상공에서, 5인치 정도의 스크린으로 난 바비 롱을 만났다.

그곳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전의 뉴올리언즈. 철부지 여대생은 바비 롱을 찾아가고, 주정뱅이 영문학자 바비 롱은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지독하게 춥거나, 끔찍하게 더운 곳. 때로는 호수가에서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보드카에 취해 욕지거리가 난무하는 작은 시골마을.

대사로 말을 하는 영화가 있다. "나 너 사랑해.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날 버려. 난 정말 슬퍼." 주인공은 슬프다. 하지만 관객은 슬프지 않다. 이런 영화는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해져 버린 사진과 같다.

상황으로 말을 하는 영화가 있다. 남자 주인공은 떠나 버렸다. 여자 주인공은 조용히 핸드백 속에서 다이어리를 꺼낸다. 그 곳엔 남자 주인공과 그동안 계속 함께 봤던 영화표가 수십장 모아져 있다. 한 장 씩, 한 장 씩 반으로 찢는다. 그리고 눈물은 보이지 않지만 손끝이 떨리기 시작한다. 주인공도 슬프다. 관객도 슬프다. 적당한 조명에 훌륭한 테크닉, 이 사진은 훌륭하다.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데 진정 하고자 하는 말이 쏙쏙 전달되는 영화가 있다. 이건 마술이다. 재미가 없는 것 같은데 재미가 있고, T.S.엘리엇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랑 고백처럼 들린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는 죽음이 찾아오고, 슬플 것 같은 장면은 영화에서 몽땅 들어냈는데도 보고나면 눈물이 쏟아진다. 주인공은 슬프지 않다. 하지만 관객은 몹시 슬프다. 이런 영화는 인생의 영화가 된다.

손에 펜이라는 것을 쥔 이후로, 펜은 데스크탑을 거쳐 노트북 컴퓨터로 바뀌었지만, 설명조의 내 글은 단 한 순간도 변한 적이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 이름은 바비 롱. 과연 언젠간 설명하지 않아도 설명이 될 수 있을까.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