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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30 스페인의 우승
  2. 2007.02.21 승부차기의 비밀
토끼머리2008. 6. 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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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을 몹시도 보고 싶었다. 2002년 그들과 우리가 월드컵 8강전에서 맞붙었을 때에는 어쩔 수없이 우리 팀을 응원했지만, 그들은 시종일관 한국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이고도 결국 패배한다. 그게 세간에서 말하는 스페인의 '토너먼트 징크스'였고, 그들이 '영원한 우승 후보'라는 비아냥섞인 농담을 계속 감내해야 했던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유로2008에서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선택은 옳았다. 라울-모리엔테스 라인을 뒤엎은 선택은 실력대로 선수를 선발하는 공정한 처사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팀의 전체적인 경기력 향상에는 꽤나 기여했던 모양이었다. 스페인 대표팀의 수호 성인과도 같은 'San 이케르 카시야스'는 팀을 빛내주는 장식 역할에서 빠져나와 주장 완장을 찬 채 대표팀의 기둥으로 자리를 잡았고, 라울이 사라진 공백은 조직력과 젊음, 패기가 대신했다. 그렇다고, 비야와 토레스가 라울-모리엔테스 라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콘'을 버리고 실리를 챙긴 아라고네스의 뚝심은 확실히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묘하게도 내게 해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스페인에게 정서적으로 끌리는 나는, 그들의 더러운 인종주의 전통과 격렬한 이데올로기 갈등을 혐오하고, 어이없으리만치 강한 과거의 영화에 대한 동경, 급한 성질머리와 대책없는 낙관주의에 고개를 젓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을 좋아한다. 그건 내가 한국인이고, 그들이 스페인인이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공통점을 갖게 되는 '애증'이라는 감정 때문이다.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07. 2. 21. 22:28

순식간에 승부가 갈리곤 하는 승부차기.

승부차기의 성공률은 80%가 넘는다. 하지만 의외로 승부차기의 매력은 20%도 안 되는 실패율에 있다.

골키퍼는 "못막아도 그만"이지만 키커는 "못 넣으면 역적"이 되기 때문. 이 실수의 공포가 선수들로 하여금 '가운데 공'을 극단적으로 피하게 만들고 그에 따라 실수 확률을 높인다. 보는 사람의 두근거림도 여기서 생긴다.

선수들은 왜 공을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만 찰까? 가운데로 차는 선수는 거의 없다. 가운데 낮은 볼은 하물며 더욱 없다. 이유는 단 하나, '쪽팔림의 두려움' 탓.

2006년 월드컵의 가장 재미있는 기록 가운데 하나는 스위스의 '승부차기 0점' 기록이다. 80~90%에 이르는 승부차기 성공률을 감안할 때 이건 아마도 1000분의 1 확률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들을 쫄게 만든 승부차기의 비밀은 당시 경기를 보도한 AP통신 기사에 잘 나와 있다.

AP통신은 스위스의 첫 키커가 공을 차자 이렇게 말했다. "마르코 스트렐러의 노력은 첫 공을 찬 우크라이나 선수보다 훨씬 엉망이었다. 공이 쇼브코프스키 골키퍼에게 가운데로 낮게 날아가버린 것이다." 우크라이나 첫 키커 셰브첸코도 골을 놓쳤지만, '적어도 가운데로 낮게 차지는 않았기 때문'에 스트렐러보다 훨씬 훌륭한 선수로 묘사됐다.

스위스의 둘째 공도 마찬가지로 실축. 하지만 묘사는 사뭇 달랐다. "바르네타가 크로스바를 맞췄다." 그게 전부였다. 크로스바를 맞췄을 뿐이다. 어차피 실축은 같은 실축인데.

세번째 스위스 키커 리카르도 카바나스. AP는 흥분한다. "리카르도 카바나스의 슛은 완전히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그가 찬 볼은 골대 한 가운데를 향해 날아갔고, 우크라이나 골키퍼의 앞에 그대로 볼을 헌납했다." 이것도 결국 같은 하나의 실축일 뿐이었다.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을 월드컵 경기, 누구는 그저 크로스바를 맞췄을 뿐이지만, 가운데로 공을 날린 그들은 상대편보다 더 큰 실수를 저지르거나, 완전히 아마추어 수준인데도 키커로 나선 셈이 된다. 이런 와중에 어떤 강심장이 가운데로 공을 찰 수 있을까.

그래서 이번 월드컵을 보다보면 축구라는 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스포츠였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름답기보다 씁쓸하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