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lane/길모퉁이2008. 3. 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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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했다.
엄밀히 말하면 학위수여증이 나왔으나 받으러 갈 시간이 없었다. 2007년 8월 25일 아침에 인터넷으로 550원짜리 졸업증명서를 한번 떼어보고 그것으로 졸업을 확인했다.

쭉 잊고 있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학교에 가서 받아오긴 해야 할텐데..라고 생각만 하고는 2주전에 학교에 갔을 때도 까맣게 잊고 그냥 돌아왔다.

문자가 왔다. 졸업식이 있다는 것이다. '박사 : 총장 악수, 석사 : 자율참석'이란다. 박사는 총장님하고 악수해야 하니까 가능하면 참석하고, 석사는 오던가 말던가라는 뜻이겠지.

가을학기에 졸업을 하면 졸업식이 없어서 부모님이 서운해하시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학위증하나 달랑 받아오면 끝인데다 무더운 여름에 학사모를 쓰고(빌려는 준다) 방학 끝 무렵 교정에서 혼자 사진을 찍는 것도 무안한 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선배도 봤다).

대학원은 내가 번 돈으로 혼자 공부하겠노라고 큰소리치며 들어갔었다. 통장에 달랑 2천만원을 가지고 이거면 등록금은 되겠거니 생각했었다. 책도 사고 용돈도 해야 하니 공부도 할겸 4학기는 이런저런 조교일을 했다. 5학기를 마쳐야 했기에 금전적인 여유는 별로 없었지만 그동안도 부모님께 부담을 드린 적은 별로 없었던지라 공부하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셨다.

막상 8월에 졸업이라고 말씀을 드렸어도 졸업선물도, 특별한 저녁식사도 없이 심심하게 지나갔다. 이제와서 졸업식에 참석할 생각이 있으시냐고 물었을 땐 겸사겸사 회사도 반나절 쉬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시간이 되네, 안되네, 갈수 있네, 없네 몇 번의 연락이 오간 후 결국 온 집안 식구와 신랑까지 학교에 왔다. 마치 학부졸업식처럼 식구들이 잔뜩 참석하고,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고 북적북적한 학교를 돌아다녔다.

학부, 석박사가 동시에 졸업을 하면서 본관 앞 잔디밭은 발디딜 틈이 없었고, 이제 또 언제 이런 걸 해보겠느냐는 심정으로 가운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었다. 가운을 빌리고, 반납하고, 학위증을 받느라 문과대과 대학원 건물을 오가야했다(한번에 어디서 업무를 처리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행정처리는 그날도 여전했다).

급히 점심을 먹고 1시쯤 식구들 모두 각자의 일터로 헤어졌다. 난 현장조사가 있어서 1시간 가량 전철을 타고 경기도로 내려갔다. 눈을 감고 가면서 생각했다. '좋아하시는 것 같았지?'

부모님은 예전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별로 하시는 적이 없으셨다. 좋은 학교에 가라는 욕심도 별로 부려보신 적이 없으셔서 그게 서운했던 적이 많았다.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다른 집은 어떻게든 좋은 학교에 가라고 저렇게 달달볶는데, 우리집은 왜 그냥 두시나 싶었다.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더 잘할 수 있었을지, 아니면 혼자 알아서 하게 두어서 이만큼 하게 된건지. 욕심이 없으셔서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내내 잊고 있었는데 졸업식날 부모님 얼굴을 보니 그래도 조금은 좋아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