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머리2008. 6. 1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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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팀 러서트를 모른다. 부고 기사를 보고 처음 알게 됐을 따름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즈 부고 기사에 실린 한 줄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런 것이로구나. 기자로 산다는 건.

He had a gift for making the most complex political machinations understandable and compelling.
NBC의 동료들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회고했다. 가장 어렵고 복잡한 정치적 이슈를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주는 능력. 이런 능력은 타고난 재능이기도 하겠지만, 대학을 졸업한 직후 정치인들의 보좌관을 맡으며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그의 독특한 이력 덕분이기도 하다. 그는 정치 분야에서 한 눈을 팔지 않았고, 헌신적으로 일했으며, 정말로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반응도 놀랍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물론,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까지 공화당과 민주당을 넘나드는 정치인들이 그의 급작스런 죽음을 아쉬워했다. 그는 매주 진행되는 'Meet the Press' 프로그램을 녹화하던 도중 스튜디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나이는 58세, 옛날이면 몰라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한창 일할 창창한 나이다.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언론계의 동업자이자 경쟁자들도 그의 죽음을 추도했다. "그는 그저 훌륭한 정치담당 방송기자가 아니다. 그는 미국 최고의 정치담당 기자다." 월스트리트저널 출신인 앨 헌트 블룸버그 편집장의 말이다. 훌륭한 직업인의 죽음 앞에서는 경쟁자도, 정적도 없었다.

매주 400만 명의 미국인이 그를 만나기 위해 'Meet the Press'가 상영되는 NBC로 채널을 고정하곤 했다. 그가 맡기 전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정치 프로그램에 불과했던 이 코너는, 러서트의 진행과 함께 '이슈를 몰고 다니는' 논쟁적인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약간 불경스러운 질문이지만 살짝 궁금해진다. 손석희 씨는 매우 논쟁적이며 영향력 있는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다. 그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방송 도중 쓰러진다면, 이에 대해 한국의 메이저 신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국의 신문들처럼 긴 지면을 할애해 그를 추도할 수 있을까. 그의 방송에서 난도질당했던 현재의 여당 정치인들이 그의 빈소에 조문을 보낼 수 있을까. 그 때에 가서도 우리는 겸허하지 못한 채 죽은 이를 앞에 두고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직업인의 평생을 부관참시해야 하는 것일까.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