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머리2008. 6. 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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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을 몹시도 보고 싶었다. 2002년 그들과 우리가 월드컵 8강전에서 맞붙었을 때에는 어쩔 수없이 우리 팀을 응원했지만, 그들은 시종일관 한국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이고도 결국 패배한다. 그게 세간에서 말하는 스페인의 '토너먼트 징크스'였고, 그들이 '영원한 우승 후보'라는 비아냥섞인 농담을 계속 감내해야 했던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유로2008에서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선택은 옳았다. 라울-모리엔테스 라인을 뒤엎은 선택은 실력대로 선수를 선발하는 공정한 처사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팀의 전체적인 경기력 향상에는 꽤나 기여했던 모양이었다. 스페인 대표팀의 수호 성인과도 같은 'San 이케르 카시야스'는 팀을 빛내주는 장식 역할에서 빠져나와 주장 완장을 찬 채 대표팀의 기둥으로 자리를 잡았고, 라울이 사라진 공백은 조직력과 젊음, 패기가 대신했다. 그렇다고, 비야와 토레스가 라울-모리엔테스 라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콘'을 버리고 실리를 챙긴 아라고네스의 뚝심은 확실히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묘하게도 내게 해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스페인에게 정서적으로 끌리는 나는, 그들의 더러운 인종주의 전통과 격렬한 이데올로기 갈등을 혐오하고, 어이없으리만치 강한 과거의 영화에 대한 동경, 급한 성질머리와 대책없는 낙관주의에 고개를 젓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을 좋아한다. 그건 내가 한국인이고, 그들이 스페인인이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공통점을 갖게 되는 '애증'이라는 감정 때문이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