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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는 정말 대단한 작물이었다. 그저 아무 곳에나 심어놓으면 혼자 알아서 자라줬다.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정성을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태풍이 몰려와 옥수수대를 모두 휩쓸어가지만 않도록 기도만 하면 됐다. 더욱이 자라기도 빨리 자랐다. 순식간에 키가 커져 먹을만해지는 이 작물은 2모작이 아니라 3모작, 4모작도 가능했다.

마야, 잉카, 아스텍 등 중남미의 어마어마한 고대 문명은 옥수수 덕분에 가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저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자라나는 옥수수 덕분에 먹고 살 걱정이 사라진 고대 왕국은 남는 시간을 어마어마한 피라밋을 건설하고, 시와 음악을 즐기는 데 사용했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옥수수는 여전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자라는 작물이다. 기후 조건을 심각하게 따지고, 농부의 노동에 비례해 성장해 주는 밀과 쌀 등의 고약한 작물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옥수수는 늘 값이 저렴했고, 흔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옥수수값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 나라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옥수수가 석유를 대신할 바이오연료의 원료로 각광받기 시작해서다. 미국 농지의 가격이 모처럼 폭등하고, 옥수수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바이오연료의 장점은 바이오연료의 원료인 식물이 재배되는 동안 대기중의 온실가스를 흡수함으로써 나중에 연료로 쓰일 때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미리 벌충한다는 데 있다. 화석연료야 꺼내쓴 만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늘릴 뿐이지만, 바이오연료는 자기가 배출할 만큼 또는 그 이상의 온실가스를 스스로의 일생 중에 먹어치운다. 또 하나의 장점은 값이 싸다는 것이었다. 바이오연료를 사용하면 돈도 아끼고, 환경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세계 각국은 수소연료나 태양열연료 등 신에너지 보급 이전 단계로 바이오연료 보급 계획을 앞다퉈 내놓았다.

문제는 그 계획들이었다. 정부가 바이오연료 사용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옥수수, 유채꽃, 사탕수수 등 바이오연료용 작물들의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각국 정부는 생산량과 예측 수요를 따져봤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예측은 틀렸다. 지금 현재의 낮은 가격은 공급이 수요를 훨씬 앞질러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요공급의 균형 상태까지 보급하겠다는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작물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각국 정부의 바이오연료 도입 계획은 수정 단계에 접어든다. 보급 속도를 늦추고, 바이오연료 사용비율을 줄이는 방식으로 수요 증대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때맞춰 경고도 나왔다. 지금처럼 바이오연료용 특화작물에 집중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바이오연료용 작물의 가격이 상승하면, 그 생산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운반비용 등이 또다른 온실가스 배출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성 기름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환경산업은 제3의 산업혁명"이라는 구호를 내놨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10년 이상 전부터 반복됐던 얘기다. 하지만 제3의 산업혁명의 진행 과정을 보면, 말이 자꾸 앞선다. 인센티브는 아직 불투명하고, 기업과 정부의 계획은 정교하지 못해서 실행단계에서 계속 비틀거린다. 그래도 이쪽이 변화의 방향이란 생각은 든다. 이 혁명은 언제쯤 양질전환을 일으키려나.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