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기업의 과거를 한 번 보자. 지금이야, 네이버가 '공룡' 수준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거기에 비하면 다음은 그저 조그만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하지만, 5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단 5년 전만 해도 말이다.

내가 '네이버에 물어봐'라는 소리를 주위 사람들로부터 듣기 시작한 건 아마도 2004년부터다. 그전에는 검색 하면 야후나 엠파스였다. 하지만, 그것도 큰 의미는 없었다. 최고의 인터넷 서비스는 '메일'과 '카페'였으니까. 그리고, 이 분야에서는 다음을 따라갈 기업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때의 공룡은 다음이었다.

어느 회사든 독특한 DNA가 존재한다. 그 DNA는 대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양날의 칼이다. 예를 들어 삼성 사람들은 매우 치밀하고 정교하다. 그들은 늘 확실하게 일처리를 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시스템의 삼성'이라거나,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흔한 표현이 그저 자기들이 우겨댄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가는 건 아니다. 나름 그렇게 받아들여질만 하니까 그렇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 장점이 그대로 단점인지라, 이들은 모험정신이 부족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더욱이, "장군님이 지시하면 우리는 한다" 식으로 시키는대로 따르는 버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업이미지에도 별로다. 반면 현대 사람들은 다르다. 창업자가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거북선을 보여주면서 현대중공업 신화를 써낸 그 불굴의 정신이 현대의 DNA다. 안 되면 안 된다고 하는 대신 수없이 창조적인 발상을 해가며 위기를 해결해 넘겨내고, 아무리 괴로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들은 '불굴의 기업가 정신'의 표상이며, '다이나믹 코리아'의 살아있는 증거다. 문제는 이게 그대로 단점이 될 때다. 뭔가 한 방 터뜨리는 건 잘하는데, 뭔가 마무리가 좀 못미더워서 여전히 현대차는 일제 차를 못 따라잡고, 일단 밀어붙이고 보다가 일 터지면 수습이 안 돼 온갖 욕은 다 들어먹는다. 결정적으로,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허술한지라 군데군데 비효율 투성이다.

다음과 네이버는 인터넷 업계의 현대와 삼성과 비슷하다. 네이버의 시스템은 효율적이고, 네이버의 시나리오는 늘 치밀하게 준비돼 있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하려면 그 수준에 따라가는 것 자체가 몹시도 피곤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도 된다. 반면 다음의 시스템은 좀 뭐가뭔질 모르겠다. 이쪽에선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저쪽에선 저런 소리를 하고, 새로운 시도가 많은 것 같긴 한데 제대로 수익을 내는 경우는 또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 두 인터넷 기업의 차이는 시스템과 창의력의 문제가 아니다. 내 생각엔 오히려 그들의 공식적인 '가치'와 현실에서의 '위치' 사이의 괴리가 문제인 것 같다. 네이버의 경영진들은 늘 공식적인 자리에 서면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과, 자신들을 성장시키고 오늘의 성공을 이끌어 준 네티즌들에 대한 감사를 나타낸다. 요컨대 네이버의 공식적인 가치는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다. 반면 다음의 경영진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다음의 성공과, 다음의 아름다운 미래를 말한다. 사회를 향해 뭔가 베풀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들이 성공하면 사회도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다. 난 이들이 옳다고 본다. 다음 직원들의 더 나은 근무여건을 위해 제주도에 회사를 세웠지만, 결과적으로 그덕에 제주가 발전한다.

그런데 사회에서의 위치는 다르다. 사회에 뭔가 더 많은 기여를 하겠다는 네이버는 늘 욕을 먹는다. 1위 기업이 감수해야 하는 당영한 비판 정도가 아니라, 원색적인 비난이다. 오히려 이윤 추구에 올인하는 다음은 칭송을 받는다. 최근 촛불집회 기간 동안 다음 아고라가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네이버에 비교해 다음이 매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기업인 것처럼 일부에서 얘기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그런데, 과연? 삼성이 에버랜드를 통한 경영권 승계 의혹 때문에 수년간 홍역을 치루면서도, 김용철 변호사 이전까지는 나름대로 위기관리를 잘 해왔던 것과는 달리 현대의 피를 물려받은 현대자동차는 글로비스를 통한 편법증여 한 건 만으로 1년 동안 토네이도에 휩싸인 것 같은 대가를 치뤄야 했다. 다음은 아마도 네이버를 보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반사이익에 도취돼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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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이어, 한 달 만에 제주도에 또 다녀왔다. 갈 때마다 제주도가 KT의 CF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혹시 "인터넷에 올리면 주문이 들어와요" 식의 장밋빛 환상이 제주도민들을 사로잡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달 내가 묵었던 펜션에서는 주인아주머니께서 아침마다 창문을 두드려 깨우며 "누룽지가 있는데 드실래요? 된장찌개가 있는데 같이 아침 먹을래요?"라고 물어보곤 했다. 전날 술을 먹었다거나, 아침부터 일정이 바빠 애써 사양했지만 인심은 참 좋았다. 그리고 그 펜션을 떠나는 날, 주인 내외분께서는 직접 집 앞까지 나와 배웅을 해줬다.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내 목에 걸린 카메라까지 받아다가 우리 부부를 찍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배경이 이 펜션의 예쁜 전면이었다. (여기 올린 사진에는 빼놓았지만,) 전화번호와 펜션이름이 크게 새겨진 간판이 아주 잘 드러난 상태였다. 인터넷을 타고, 제주여행 후기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이 펜션이 알려질 수 있도록 의도한 듯이.

해안도로를 달리다 눈에 뜨인 갈치조림 집에 무작정 차를 세우고 점심을 먹었을 때였다. 갈치조림은 무척 맛있었고, 쓰러져가는 듯한 낡은 가게 풍경이 성산포 풍광하고 운치있게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다. 잘 먹고 났더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뭘 보고 왔어요?" "그냥 차 몰고 달리다 대충 들어왔는데요?" "아유, 여긴 인터넷이나 신문 보고 많이들 찾아오는 곳인데." 지금 이분들에게는 인터넷 홍보전략이 체화돼 있고, 고객 반응 확인이 생활화 돼 있다. 인터넷 경제가 제주도민 전체에게 경영 마인드라도 심어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탓에 좀 어색하고 곤란한 상황도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제주도에 우후죽순 생겨난 수많은 펜션들이 제각기 경쟁적으로 광각렌즈를 사용해가며 예쁜 정원과 벤치, 멀리 떨어진 바다를 보여주다보니 수많은 펜션들이 하나같이 비슷해져 가고, 사진으로볼때면 모두가 똑같아 보인다. 정원이 있고, 꽃이 있고, 바다가 (멀리) 있고. 정말 좋은 곳은 어디인지 궁금해서 입소문이라도 보려고 들면 어김없이 광고성 글만 검색된다. 네이버나 다음에 '제주 펜션'을 쳐보면 키워드 광고만이 우루루 떠올라서 스크롤을 수없이 해야 하고, 모든 펜션들이 서로 '특별히 친절하고, 특별히 예쁘고, 특별히 교통이 편하다'고 자랑해대는 탓에, 오히려 전반적인 불신이 생긴다. 제주도의 펜션 수준은 유럽의 펜션하고 비교하면 호텔급이라고 할 정도인데도, 뭐랄까, 이건 일종의 플라스틱 신드롬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이번 제주도 출장길에서 만난 펜션 주인들은 "1년 동안 열심히 펜션 운영해봐야 기본 비용 빼고, 포털에 내는 검색광고비 빼면 남는 게 없다"고 투덜대곤 했다. 포털의 키워드 광고에 펜션들이 몰리다보니, 키워드 경매가격은 날로 치솟고, 1년 전에 클릭당 300원~1000원이던 경매가가 요즘은 비싸면 1만원까지 뛴다는 것이다. 100만 원을 광고비로 내놓으면 적어도 1000회 이상 노출되던 광고가 10분의 1도 안 되게 노출 빈도가 줄어들다보니, 실제 비용 지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인터넷에 발품만 열심히 팔면 각종 할인 및 결합상품을 수없이 찾을 수 있다. 이런 상품을 제공하는 곳은 제주여행 관련 카페들. 광고 효과가 떨어지다보니, 이윤을 줄여서라도 실제 구매로 연결시켜준다는 카페 등에 펜션이나 맛집, 렌터카 업체 등에서 열심히 혜택을 주는 것이다.(나부터도 이런 카페를 이용하곤 했다.)

펜션과 식당을 만들고, 그들이 말하는 '육지 사람들'에게 서비스와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은 제주도민들인데, 정작 여기서 이런 상품을 중개하고 큰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제주도민이 아닌 육지 사람들이다. 개인과 개인의 자유로운 거래가 한없이 늘어날 것만 같던 인터넷이었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제주가 보여주는 인터넷 경제는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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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헤드와 프린스의 새 앨범 가격은 '0'이다. 야후의 '무한대(∞)' 용량 이메일의 가격도 '0'이다. 구글의 전화번호 안내 역시 '0'이고, 컴캐스트가 나눠주는 DVR플레이어의 가격도 '0'이다. 플리커의 저장용량은 무한대를 향해 달려가고, 유튜브의 저장용량도 무한대로 증식한다. 대역폭도 상승해서 Full HD 동영상이 광대역망을 타고 흘러다니기 시작했으니, 대역폭도 무한대를 향해 발전한다. 듀얼코어는 쿼드코어로 발전하는데, 노트북 컴퓨터의 가격은 계속 하락한다. 그러니까, 그동안 시장을 지배해 왔던 복잡한 숫자들은 Freeconomics의 시대를 맞아 '0'과 '∞'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말, 와이어드매거진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롱테일 법칙의 바로 그 사람)이 이코노미스트에 이런 내용의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경제 트렌드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공짜 경제'라는 건 인터넷 산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민해 본 주제였다. 롱테일 법칙만큼 크게 획기적으로 들리진 않았다.

오히려, 와이어드매거진에 자세하게 소개된 '공짜 경제'에 대한 긴 글을 읽고 나니 혼란만 늘어났다. 저장장치와 대역폭, 프로세서의 처리속도는 점점 빠르게 발전해 가격이 의미없는 수준까지 내려왔다고 하는데, 여전히 인터넷업계에서는 그 대역폭과 저장장치, 프로세서 가격 때문에 비명이다. 앞으로, 언젠가, 의미없어 질 수 있겠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20x240 해상도의 초당 24프레임 동영상을 공급하기 위해 판도라TV와 mn캐스트같은 회사들은 계속해서 적자를 본다. 그런데 여기에 full HD라니. 너무 빨랐다. 내 옆자리 동료는 저 용량이 얼마 되지도 않는 동영상을 보기 위해, 열심히 다른 작업들을 중지하고, 필요없는 인터넷 창을 닫기 시작한다. 쿼드코어 프로세서가 보편화되려면 여전히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만 지나면 보편화될까? 아닐 것 같다. 크리스 앤더슨이 그리는 공짜경제는 프로세서와 대역폭, 저장공간의 가격이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환경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꿈의 화질'이라고 불렸던 DVD에 5년 만에 싫증을 내고 full HD와 블루레이를 찾는다는 데 있다. 우리의 욕구가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발전하는 기술의 가격은 한없이 0으로 수렴할 테지만, 1000만 화소 카메라를 대체하는 1억 화소 카메라가 가까운 미래에 나온다면 그건 또 어쩔 것인가. 기술 발전의 속도가 예측을 뛰어넘을만큼 빠르다고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늘어나는 속도는 늘 기술 발전의 속도보다 한 걸음 정도 빠르게 마련이다.

공짜 경제 시대의 중요한 자원인 '관심(attention)'이 한정돼 있다는 사실도 중요한 변수다. 세상에서 만인에게 평등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다만, 4억 명이 24시간을 갖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와 4000만 명이 24시간을 갖고 있는 한국 같은 나라 사이에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게다가 적어도 웹의 세계에서만큼은 세계를 시장으로 삼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시장은 아직은 한국에만 제한돼 있다. 통일이 된다거나, 자동번역기의 성능이 높아져서 일본과 한국이 웹 시장을 일부 공유한다고 해도, 여전히 이 시장은 제한적이다. '완전경쟁'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거대 시장에서 가능성을 찾아가는 미국 기업들과는 달리, 끊임없이 독과점이 이슈가 되는 제한된 시장에서 머리를 싸매고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에겐 '공짜 경제'를 지탱시키는 '관심이라는 자원'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크리스 앤더슨의 공짜 경제에 대한 희망찬 장밋빛 전망은, 적어도 한국에선 아주 먼 훗날의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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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인걸까. KBO가 현대 유니콘스를 명목상 해체하고, 제8구단을 명목상 창단하며 실질적으로 현대를 팔아 넘기는 계약을 정체 불명의 투자회사인 센테니얼이라는 곳과 체결했다고 한다.

우선, 유니콘스의 (실질적인 매각) 금액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센테니얼이 (명목상의) 서울 연고 구단 창단을 위해 지급하기로 한 돈은 120억 원. 하지만 이전에 인수 의사를 밝히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까지 갔던 KT가 밝혔던 (명목상의 창단 또는 실질적인 인수) 가격은 60억 원이었다. 불과 1, 2개월 남짓한 사이에 값이 두 배로 뛰었다. 현대가 그동안 가치가 두 배 높아졌을까? 아니다. 현대가 '수원' 연고지로 현재의 유니콘스를 태평양으로부터 인수했을 때 냈던 돈이 430억 원이었는데, 그걸 KT가 6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이 적정한 시장 가격이다. 그만큼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120억 원을 선뜻 내겠다고 달려들었다. 조건을 봐야한다. 아니나 다를까, 센테니얼은 120억 원을 2차례에 나눠 내는 옵션을 계약에 넣었다고 한다. 무슨 뜻일까?

센테니얼이 야구단 사업을 정상적으로 벌일 것으로 KBO가 기대했다면, 그런 바보같은 생각이 없다. 뭐, 그 정도로 KBO가 생각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시장 가격에 구단을 넘기려고 했더니 각종 비시장적인 요소들이 끼어들었고, 제대로 계약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을 가능성이 높다. KT가 적정가격을 써내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계약을 철회하는 과정을 보면서, 어느 기업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복마전에 끼어들겠다고 나설까? 아마, 센테니얼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자회사의 생리를 봐야 한다. 나는 기억한다. 뉴브리지 캐피탈이 부실투성이의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면서 "뉴브리지는 하나로텔레콤을 시세차익을 노리고 인수한 것이 아니다. IP TV라는 새로운 사업영역과 초고속인터넷이라는 훌륭한 자산을 믿고 제대로 된 사업을 벌이기 위해 인수한 것이다. 단기간에 하나로텔레콤을 되파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게 언제냐고? 2006년 초의 일이다. 2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새 하나로텔레콤은 SK텔레콤에 팔렸고, 여전히 부실투성이에 미래도 불확실한 IP TV 사업모델 하나를 위해, 하나로텔레콤의 모든 투자 기회를 포기하고 IP TV에 몰빵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여 인지도를 높인 게 경영의 전부였다. 하나로텔레콤은 정상적으로 통신 사업을 한 적이 없다. IP TV라는 트렌디한 사업에 자원을 '몰빵'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회사를 샀다 팔았을 뿐인데도, 뉴브리지는 그 과정에서 단기간에 수배의 이익을 챙겼다. 왜? 어차피, 유선통신망회사는 SK텔레콤이든, LG통신그룹이든, KT통신그룹이든 탐낼 수밖에 없는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미래가 불투명하니 위험부담을 지기 싫어서 대기업이 투자를 꺼릴 때, 투자회사는 과감하게 도박을 건다. 그리고 크게 먹으면 먹고, 망하면 망한다. 대신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절대로 투자회사가 인수 기업의 사업을 주력으로 벌이지는 않는다. 그저, 분칠을 할 뿐이다.

센테니얼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최고 스포츠는 야구다. 흥행 성적으로, 관중 동원력으로,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원활한 리그 운영의 필수조건인 제8구단이 사실상 해체 위기에 몰렸다. 시장 가치는 KT의 경우에서 살펴보니 60억 원에 불과하다. 이러저런 '정서법'을 만족시켜줘봐야 100억 원 내외에 해결이 가능하다. 문제는 되파는 가격이다. 여기에 '분칠'의 필요성이 생긴다. 센테니얼은 앞으로 그 분칠을 '네이밍 스폰서 유치'라는 실험으로 해낼 것이다. 계약 금액은 비밀로 한 채, 네이밍 스폰서가 사업성이 있다는 식의 홍보를 하는데 열을 올릴 테고, 이 과정에서 아무도 모른다는 톱클래스 연예인의 광고료처럼 각종 거품이 끼어들기 시작할 테다. 자연스럽게 사업모델을 자산 삼아 재매각 가격도 뻥튀기가 될 것은 틀림이 없다. 센테니얼로서는, 그저, 기회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비용이 조금 들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선수 관리와 경기 성적 등에 대한 '책임'은 단장이 맡고, 스탭 구조조정이나, 비용 효율화 등의 '칼'은 센테니얼 사장이 휘두르는 구조의 운영이 예정돼 있다. 방만 경영의 대표주자였던 현대 유니콘스는 몇 군데 손만 도 상당한 예산을 줄일 수 있을 게 뻔하다. 거기에 네이밍 스폰서까지 '저가에라도' 모집하면, 연간 소요 비용의 상당액을 외부 자금으로 돌릴 수 있다. 땅짚고 헤엄치기에 가까운 것이다. 원활한 통신사업의 필수요건인 유선통신망을 갖고 있는데, 시장가치는 형편없었던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한 뒤, 하나TV 사업으로 투자자를 설득하고, 연간 들어가는 비용은 광고료와 정책자금으로 돌려댔던 뉴브리지의 경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게다가 센테니얼은 리스크도 적다. 겨우 120억 원을 두 차례에 걸쳐 나눠서 낼 뿐이다. 자본금 5000만 원 짜리 소규모 창투사라서, 하다가 수가 영 틀리면, 회사 문을 닫겠다고 협박도 해볼 수 있다. 그건 센테니얼의 마지막 카드다. 국내 프로야구 시장에 대한 일말의 책임도 느낄 이유가 없는 일개 창투사가, 구단 문을 닫겠다며 배를 쨀 때, 가슴 아플 당사자는 KBO이고, 열이 나는 사람은 야구팬들일 뿐이다. 5년 의무 보유기간이 지나기 전에 문제가 생기면 땡깡을 부리면 되고, 문제가 없다면, 제값을 받고 팔면 된다. 한국 야구단의 가격은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할 때 400억 원이 넘었지만, 지금은 불행히도 100억 원도 안 된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고, 3만 달러를 향할 때 가장 성장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스포츠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야구단 값이 사실상 바닥에 이른 상황이라고 봐도 된다. 더욱이 센테니얼로서는 구단을 잘 운영하면 가치가 올라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고, 구단을 잘 못 운영하면 외국계 자본에라도 국내 야구단을 넘길 수 있으며, 판매 시점이 된다면 그 때는 메이저리그 야구단처럼 국내 야구단도 컨소시엄 투자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방법은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일단 창투사에 판 선례까지 있는데, 못할 것이 없다.

문제는 누가 만들었을까? 단연 KBO다. 그들은 무엇보다 시장 질서를 헤쳤다. 게임의 룰을 깬 자들에게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인수 의사를 밝혔고, 계약 직전까지 갔던 KT만 바보로 만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계약까지 못 간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가 '적은 가입금' 때문이라고 한다. 시장에서 팔리는 가격에 판매를 계약했다가, 물건을 넘기기 직전에 도로 뺏고 더 비싼 돈을 내라는 심보는, 기본적으로 상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건 시장이 아니라 깡패 놀음일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KT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합리적인 기업이 투자를 해보겠다고 나서겠나. 애당초, 국내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KBO가 막아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KBO는 현대 문제를 '미봉'했다. 뉴브리지 얘기를 앞에서 했듯, 센테니얼은 '땡깡'을 부려서 단기간에 현대를 팔든, 5년의 기간을 채우고 팔든, 현대를 매각할 것임에 거의 틀림이 없다. 그때의 가격은 60억 원도, 120억 원도 훨씬 넘어서는 가격이 될 것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7개로는 부족하고, 8개를 넘어서기에는 능력이 안되는 대한민국 야구판을 생각하면, 인수기업은 나오게 마련이다. 그 때가 되면, KT가 샀더라면, 그 차액의 일부를 야구단에 투자했을 텐데, 5년 간 센테니얼이 잇속만 차렸다는 비판에 대해 지금의 KBO 결정권자들은 어떤 변명을 해댈까. 5년 뒤면 그들은 모두 지금의 자리를 떠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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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지금 와서 세스 고딘을 들먹일 필요가 없는 거다. 원래부터 마케팅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이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휘어잡을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

세상의 그 어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세월의 힘'을 이길 수는 없다. 우리는 처음 '취권'을 찍다가 기고만장해져서 헐리우드에 진출해가지고는 '캐논볼' 시리즈 따위로 허송세월을 하던 성룡을 좋아하지 않는다. 취권은 좋아했지만, 성룡의 기고만장함까지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눈물을 쏟으며 아시아로 돌아와서 아시아 투어를 통해 아시아 각국의 어린이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하던 성룡은 기억한다. 성룡은 한국에도 수 차례 반복 방문하며 "내년에 자전거를 갖다 줄게"라고 말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같은 보육원을 연거퍼 방문하곤 했다. 그것은 진심이다. 하지만, 진심 또한 짧다. 나이가 환갑이 다 된 지금, 뒤늦게 다시 헐리우드를 두드리고, 때때로 아시아에서 영화를 찍곤 하는 성룡은 진심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몸으로 코미디처럼 보이는 아크로배틱 액션을 하고, 그러다 다치고, 다치는 자신을 보면서 사람들이 즐거워 한 대가로 돈을 버는 인생. 그 인생에는 즐거움도 있지만, 즐거움 만큼의 처연함도 있다.

애플이 지금 왜 이리도 인기일까. 그건 애플이 평생을 저따위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1등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자유로움과 히피적인 영혼이란 것은 다른 곳에는 없고, 오직 쿠퍼티노의 애플 기숙사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고 우겨왔던 그 말도 안 되게 독단적인 정신으로 벌써 30년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1977년에 20대였던 잡스는 어느새 50대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검정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애플의 광신도들과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 잡스는 경박해 보였지만, 30년을 경박하게 살아왔던 그에게 지금은 '무게'가 붙는다. 그 무게야말로 그의 '내공'이 된다.

내가 1984년의 이 매킨토시 광고를 보면서 느낀 건 이런 30년의 힘이다. 아마도 이 광고가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몹시도 건방져 보였을 테고, 아이디어만 넘치고 가벼워 보였을 것이 뻔한 저 광고. 하지만 한 회사가 저런 식의 건방질 정도로 자유로움만을 강조하는 컨셉을 30년 유지한다면, 그 다음에는 그 회사는 그렇게 생겨먹은 회사이기에 무슨 마케팅을 해도 자유로움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다. 애플이 한다면, Think Different일 것만 같은 30년 간의 세뇌가 매니아를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폰을 백날 따라하고, 아이팟을 아무리 카피해봐야, 그런 식으로 하루를 사는 당신들에게 미래는 없다. 당신들에겐 역사가 없으니까.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고 성공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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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디 오브라이언이 죽었을 때 조문객들은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그의 관에 돈을 던졌다. 그날 장례식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했던 구두쇠도 참석했다. 그 또한 비통한 표정을 짓고 패디의 묘 앞에서 외쳤다. "난 패디 오브라이언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내 사랑을 보이겠어요. 여러분이 여기에 돈을 얼마를 던져 넣든지간에 난 그 돈의 두 배를 내겠습니다." 구두쇠는 약간 취한 것처럼 보였고, 마을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이 구두쇠에게 한 번 교훈을 얻게 해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조문객들은 가지고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지폐와 동전을 모두 관 속에 던져 넣었다. 이렇게 던져 넣은 돈은 3012달러. 이 마을에서 장례식이 벌어진 이래로 가장 많은 액수의 저승길 노잣돈이었다. 그러자 구두쇠는 관 속에서 그 돈을 긁어 모았다. 그리고 패디 오브라이언 앞으로 6024달러 짜리 수표를 한 장 쓴 뒤 관 속에 던져 넣었다.

아일랜드에도 동양과 비슷하게 저승길 가는데 노잣돈을 마련해 주는 풍습이 있는 모양이다. 아일랜드의 풍습이야 평소 알 길이 없었지만, 약삭빠른 구두쇠 영감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수완 만큼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이야 물론 저렇게 타락해서 살지는 말라는 얘기겠지만, 어쨌든 장례를 치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조문객들의 슬픔과 고인에 대한 경건한 추모를 이용해 그 뒤편으로 한 몫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발행하는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지난해 10월 첫주판에 보면 여기에 관한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지난해 사망자 수는 24만5511명(보건복지부 자료). 이 중 화장한 건수가 전체의 52.59%(통계청 자료)로 12만9138건이다. 따라서 지난해 화장 시 총 소요비용은 1조5470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매장 시 총 소요비용 1조9224억원을 더하면 지난해 장묘산업 규모는 3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한국의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가 아마 이 정도 됐던 것 같다.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1~2년 전만 해도 이 돈이면 NHN을 통째로 살 수도 있었다.

저승길에 노잣돈을 챙겨주는 풍습 자체야 별로 탓할 게 없다. 하지만 한번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병원 장례식장에 가면 정말 허접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베니어합판으로 된 관을 하나 두고는 그것보다 훨씬 비싼 관들을 같이 판다. 절대 강매하지는 않지만, 사랑하던 가족을 마지막 보내는데 베니어합판으로 된 관을 선뜻 선택할 유족은 없다. 얼마 안 가 썩어 없어질 수의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4000만 원 짜리 '명품 수의'까지 팔린다는데 그런 걸 보면 부자들은 죽어서 재산을 무덤까지 가져가려는 모양이란 생각도 들곤 한다.

그나마 많이 장례문화가 개선돼 이 정도다. 아직도 매장을 하려면 관을 묻고 무덤을 밟아주는 인부들에게 잘 밟아달라고 1만 원 짜리 지폐를 수십 차례 꺼내 찔러줘야 하고, 화장터에서도 잘 태워 달라고 돈을 찔러줘야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 모양이다.

기쁜 날, 합리적으로 축하하려는 사람들 덕분에 결혼식이나 돌잔치의 거품은 조금씩 줄어드는 모양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슬픈 날 합리적으로 슬퍼하자고 말하긴 힘들다. 최근에는 다행히 웨딩플래너처럼 장례지도사라는 직업도 등장한 모양이지만, 솔직히 주위에서 찾아본 적이 없다. 써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고. 훌륭한 장례지도사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흰솔

동영상으로 보니까 꽤 실감이 난다.

닌텐도의 위(Wii)가 한국에 정식으로 판매되면 꼭 한 대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녀석도 몹시 탐난다. 역시 중요한 건 인터페이스. 처음에는 기사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터치스크린 패널을 30인치 크기로 만들면 단가가 어마어마할 거라고 짐작했는데, 자세히 보니 프로젝션 TV 아래에 적외선 인식장치를 달았더라. 문제는 화면을 키우면 키울수록 표면 뒤에 공간이 필요해질텐데, 적외선 장치만으로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깨지기 쉬운 터치스크린 역시 대안은 아닐 테고. 벽에 걸어놓고서도 '서피스 컴퓨팅(surface computing)'이 가능한 값싸고 상용화 가능한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정말 대박일 텐데.

그나저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것 치고, 눈길을 확 끄는 건 난생 처음 본 것 같다. 애플에서 또 아이디어 도용이라고 뭐라고 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완성도로 경쟁사보다 앞서서 제품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정마다 TV앞 탁자가 이 컴퓨터로 바뀌는 상상을 해봤다. 음... 아마도 내 자식 세대에서는 옛날 가정 풍경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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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을 막 마치고, 이 인터페이스 개발에 참여한 뉴욕주립대 제프 한의 홈페이지를 찾아가봤다. 굉장히 인상적이고 값도 낮출 수 있어보이는 서피스 컴퓨팅 기술의 미래가 보였다.
http://cs.nyu.edu/~jhan/ledtouch/index.html

발광다이오드(LED)를 백라이트로 촘촘히 박아넣는다면 벽걸이 서피스컴퓨팅도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LED는 응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는 것 같다. 대단하다.
Posted by 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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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는 정말 대단한 작물이었다. 그저 아무 곳에나 심어놓으면 혼자 알아서 자라줬다.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정성을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태풍이 몰려와 옥수수대를 모두 휩쓸어가지만 않도록 기도만 하면 됐다. 더욱이 자라기도 빨리 자랐다. 순식간에 키가 커져 먹을만해지는 이 작물은 2모작이 아니라 3모작, 4모작도 가능했다.

마야, 잉카, 아스텍 등 중남미의 어마어마한 고대 문명은 옥수수 덕분에 가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저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자라나는 옥수수 덕분에 먹고 살 걱정이 사라진 고대 왕국은 남는 시간을 어마어마한 피라밋을 건설하고, 시와 음악을 즐기는 데 사용했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옥수수는 여전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자라는 작물이다. 기후 조건을 심각하게 따지고, 농부의 노동에 비례해 성장해 주는 밀과 쌀 등의 고약한 작물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옥수수는 늘 값이 저렴했고, 흔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옥수수값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 나라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옥수수가 석유를 대신할 바이오연료의 원료로 각광받기 시작해서다. 미국 농지의 가격이 모처럼 폭등하고, 옥수수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바이오연료의 장점은 바이오연료의 원료인 식물이 재배되는 동안 대기중의 온실가스를 흡수함으로써 나중에 연료로 쓰일 때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미리 벌충한다는 데 있다. 화석연료야 꺼내쓴 만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늘릴 뿐이지만, 바이오연료는 자기가 배출할 만큼 또는 그 이상의 온실가스를 스스로의 일생 중에 먹어치운다. 또 하나의 장점은 값이 싸다는 것이었다. 바이오연료를 사용하면 돈도 아끼고, 환경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세계 각국은 수소연료나 태양열연료 등 신에너지 보급 이전 단계로 바이오연료 보급 계획을 앞다퉈 내놓았다.

문제는 그 계획들이었다. 정부가 바이오연료 사용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옥수수, 유채꽃, 사탕수수 등 바이오연료용 작물들의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각국 정부는 생산량과 예측 수요를 따져봤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예측은 틀렸다. 지금 현재의 낮은 가격은 공급이 수요를 훨씬 앞질러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요공급의 균형 상태까지 보급하겠다는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작물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각국 정부의 바이오연료 도입 계획은 수정 단계에 접어든다. 보급 속도를 늦추고, 바이오연료 사용비율을 줄이는 방식으로 수요 증대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때맞춰 경고도 나왔다. 지금처럼 바이오연료용 특화작물에 집중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바이오연료용 작물의 가격이 상승하면, 그 생산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운반비용 등이 또다른 온실가스 배출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성 기름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환경산업은 제3의 산업혁명"이라는 구호를 내놨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10년 이상 전부터 반복됐던 얘기다. 하지만 제3의 산업혁명의 진행 과정을 보면, 말이 자꾸 앞선다. 인센티브는 아직 불투명하고, 기업과 정부의 계획은 정교하지 못해서 실행단계에서 계속 비틀거린다. 그래도 이쪽이 변화의 방향이란 생각은 든다. 이 혁명은 언제쯤 양질전환을 일으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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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이란 말이 있다. '팡세'의 저자인 그 프랑스인 파스칼이 도대체 신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봐야 할까? 파스칼은 무조건 신을 믿(는 척 하)는 것이 올바른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런 거다.
1. 신의 존재를 믿은 사람은 신이 정말 존재할 때 천국에서 영생을 얻게 된다.
2. 신의 존재를 믿은 사람은 신이 정말 존재하지 않을 때 잃을 것이 없다.
3.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은 사람은 신이 정말 존재할 때 얻을 것이 없다.
4.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은 사람은 신이 정말 존재하지 않을 때 잃을 것이 없다.

이렇게 정리를 해놓으면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잭 그리고 수지 웰치 부부가 최근 비즈니스리뷰에 칼럼을 썼다. 파스칼의 도박에 관한 글이지만, 사실 진짜 주제는 기업들이 지구온난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친환경적인 경영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생산라인을 바꿔야 하고, 관리를 철저히 해야하며, 신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비용은 많이 드는데 효과는 미미하다. 환경문제라는 말만 꺼내면 "그거 돈도 안되잖느냐"며 고개를 내젓는 CEO가 세상에는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웰치 부부의 해답은 단순명료하다. 친환경 경영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중요한 문제라고 믿는 것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 이익이란 것이다. 불과 30년 전,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미국 기업의 화두로 떠올랐을 때 미국 공장들은 자신들보다 더 싸게 값을 부르는 멕시코와 아시아의 공장을 무시하고는 "우리 기술이 더 뛰어나니까"라는 근거없는 망상 속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일자리도 함께 사라졌다.

미국에 살고 있지 않아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웰치 부부는 그동안 환경론자들의 지구온난화 주장에 대해 '생각보다 과장돼 있을 수 있고,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견해를 보여왔던 모양이다. 환경론자들의 비난이 꽤 거셌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환경문제는 캠페인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전지구적으로 거대한 규모로 일어나야 효과를 볼텐데, 거기에 가장 어울리는 효율적인 시스템은 시장경제 아래에 있는 기업들이 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웰치 부부의 얘기는 꽤나 합리적이고 설득적이다.

비즈니스위크 원문은 유료회원이 아니라 그런지 못 구하겠고, 발췌문은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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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는 모두가 '쇼'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터미네이터'가 공화당 간판을 달고 2003년 민주당의 텃밭인 캘리포니아에서 정치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민주당의 위기와 캘리포니아의 자유주의 전통의 위기에 몸서리를 쳤다. 캘리포니아는 '기회의 땅 미국'의 상징과 같았다. 모두에게 기회가 평등하고, 쓸데없는 권위와 허례허식을 경멸하는 그 전통 말이다. 물론 아놀드는 이민자였고, 평등한 기회를 이용해 미국 사회 주류로 진입한 인물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보다는 그의 막대한 재산과 어눌한 액센트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던 그가 집권하자마자 친환경정책을 들고 나왔다. 역시 비웃음을 사기 딱 좋았다. 정치적 '쇼'로만 생각했다. 심지어 그는 2004년에는 GM이 만들어내는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비효율적이고 반환경적인 자동차'로 꼽히는 '허머 H2'(미군용 '험비' 트럭의 민간버전)를 수소자동차로 개량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남성적인 차를 타도 충분히 친환경적일 수 있다"면서. 영화배우 아놀드가 만들어낸 이벤트, 그때만 해도 그들은 그렇게 '터미네이터식 정치'를 비판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25% 이상 의무적으로 감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버렸다.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지만, 터미네이터는 이를 귓등으로 흘려 듣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고, 대신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와 기후변화 관련 정책 협의에 협력하기로 손을 잡았다. 그에게는 이념이란 게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공화당원들은 배신감마저 느껴야 했다.

환경 정책 이외에서도 이런 점은 많이 눈에 띄었다. 그는 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하는 공화당원인 동시에,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보건복지 예산에 주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공화당원이다. 이는 모두 전통적인 민주당의 가치들이다. "난 공화당을 대표해 주지사가 된 것이 아니다. 난 나를 뽑아준 유권자를 대표해 주지사가 됐다." 이런 말을 일삼는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의 골칫거리다. 하지만 동시에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겐 축복이다. 미래에서 날아와 존 코너를 지켜주는 터미네이터처럼, 아놀드의 행보는 동시대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결국 그는 '민주당의 텃밭'에서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더 많은 차를 만들고, 더 많이 차를 타도 좋다. 다만 친환경차를 타고, 기업은 연료효율적인 차를 만들어야 한다."

아놀드의 환경정책 이념에는 사실 문제가 좀 있다. 기술 발전에 대한 그의 맹신에 가까운, 어쩌면 표를 의식한 듯한 신념은 앨 고어같은 사람들의 '적게 쓰고 덜 편리하게 사는' 환경정책 이념과는 크게 어긋난다. 그리고 아놀드보다는 앨 고어의 정책이 사실 더 친환경적이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앨 고어의 환경다큐멘터리 영화)은 정말 불편하다. 정통 민주당원의 눈에 아놀드는 그저 무임승차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와이어드 매거진은 '2007 Rave Award' 수상자로 정치인 가운데 유일하게 그를 뽑았다. 말 그대로, 미국인들은 지금 터미네이터의 쇼에 열광(rave)하고 있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