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lane'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07.08.03 메뉴얼 4
  2. 2007.07.12 1
  3. 2007.07.10 마미야 형제 2
  4. 2007.07.04 7월 3일
  5. 2007.07.02 The Simpsons Movie 4
  6. 2007.06.25 책꽂이 정리
  7. 2007.06.22 번역 2
  8. 2007.06.19 2
  9. 2007.06.06 앵두와 체리 3
  10. 2007.06.03 [밀양] 고마워요 살아줘서 4
Purslane/길모퉁이2007. 8. 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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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이 익숙해질 무렵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그냥 인사하고 서로 낯을 익히는 정도였으나, 그 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준비할 것도 많고, 해야 할일도 많은데 어지러웠다. 게다가 이 일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모두가 다 처음이라 주위의 조언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집집마다 상의해서 정하기 나름이라지만, 뭘 상의하고 뭘 조율해야 되는지도 몰라서 한참을 헤맸다. 왜 이렇게 중요하며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에 매뉴얼이 없는 걸까.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은 바쁘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지만 마음써야 하는 일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나왔다. 예상 가능했을런지도 모른다. 그저 미쳐 생각하지 못했을 뿐.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강해지는 것같다.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커가고, 더욱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같다. 그래서 이렇게 과정이 어려운 건가. 전혀 모르던 분야를 신경써야하고, 생소한 단어들을 접하고, 해야할 일과 책임이 늘어간다. 못견디겠어, 힘들어 라고 말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본다.

어쩌면 재미있는 일은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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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길모퉁이2007. 7. 1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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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비가 그쳤다.

오락가락 하던 비가 버스에서 내리니 다행히도 딱 멈췄다.

꺼냈던 우산을 도로 가방에 넣고 걸음을 재촉했다.

아직도 비가 오는 줄 알고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늘 그런 사람들을 보면 '비 안와요'라고 말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한번도 말해본 적은 없지만 그냥 이상하게도 꼭 말해줘야 할 것같다.

'저기, 이제 비 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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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서재2007. 7. 1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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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한 한참 후에 원작을 발견했다. 작고 예쁘게 양장되어 나오는 일본 소설에 몇 번 속은 터라 영화 포스터를 보지 않았더라면 집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을 고려하고도 에쿠니 가오리 작품이라는데 호기심이 두 번 동했다. <냉정과 열정사이>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회자되는 데에는 노련함이 있을 것 같았다.

마미야 형제는 궁상맞고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소박하고 엉뚱한 구석은 있지만 아직 소년 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연애는 더더욱 그렇다. 찌질해 보이는 남자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유독 불편하다. 삼십대의 궁상맞은 언니들 이야기는(이제 ‘언니’들도 아니다ㅠㅠ) 재미있는데 남자들이 그러는 모습은 외면하고 싶어진다. 다행히 이 형제는 연애를 제외하고는 귀여운 편이다.

좋아하는 일본적 취향이라면 매체를 불문하고 역시 섬세함 아닐까. 손에 잡힐 듯한 일상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아주 명확하게 내 일상으로 이입된다. 장소와 상황에 대한 물리적인 묘사도 그렇지만 감정적인 부분에 대한 부분은 더 그렇다. 이를테면 아키노부가 비디오 대여점에 들어서는 이런 부분 .

  가게에 들어서자 바로 알아차린 나오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키노부의 다리에서 힘을 빼고, 마음에 힘을 주는 미소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 온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소심한 아키노부의 짝사랑은 이상하게 안타깝지 않다. 두 형제의 평화로운 일상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오히려 이 흥미진진한 사건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할 뿐이다. 사랑에 빠지면 이루어 져야만 할 것 같은 주인공의 의무감 따위는 없다.
술이 잔뜩 취해 돌아온 아키노부는 문 밖에서 동생 테츠노부를 시끄럽게 불러댄다.

  “있는게 당연하잖아. 지금이 도대체 몇 시인 줄 알고.”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자기 방을 나온다. 복도가 싸늘하다. 거실 난방을 틀어 두면 좋았을걸. 테츠노부는 후회했다.
  출퇴근용 검정 코트 차림 그대로, 아키노부는 부엌에 서서 물을 마시고 있다.

짜증내면서도 형을 걱정하고 있다. 이런 두 사람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든다니.  다행히 두 사람은 큰 원을 한바퀴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쩌면 이런 결말이 더 비현실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에 든다. 갇혀 있는 소설 속 공간이라면 그렇게 두 사람만 멈춰서 있어주면 좋겠다. 매일 출근을 하고 저녁엔 야구 스코어를 챙기며 비디오를 빌려보고, 한가하게 살랑대는 바람을 맞으며 거실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맥주를 한잔 하고 잠이 드는 것도. 고백하자마자 거절당하고 신칸센에 올라타 눈물을 훌쩍이는 모습은 어쩐지 어울리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책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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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길모퉁이2007. 7. 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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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목과 어깨부터 몸이 욱신욱신 쑤셨다. 출근 지하철에서 딱히 졸립지는 않은데도 눈이 뻑뻑해서 글이 잘 안들어온다. 45분쯤 걸리는 전철의 마지막 20분 정도는 눈을 감고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간다. 45분을 온전히 글을 읽으며 버틸 정도로 쌩쌩한 날은 별로 없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1층 편의점으로 갔다. 이렇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오전에 두잔 마시는 커피를 한잔으로 줄이고 좋아하지 않는 시큼한 오렌지 주스라도 마셔야 정신이 들것 같았다. 비슷비슷한 종류의 음료수가 너무 많다. 오렌지와 감귤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뭔가 비타민이 풍부해 보이는 음료를 집었다.

어찌되었든 '나에게 활기를 돌려다오'라는 기분으로 빨대를 꽂았는데, 시큼한 맛에 정신을 차리려던 나의 기대와는 다른 맛이 난다. 어릴 때 먹던 과일맛 거버를 희석시켜놓은 것 같다. 이유식으로 먹는 거지만 어릴 때 감기에 걸려서 아프면 엄마가 거버를 사주시곤 했다. 어쩐지 이걸 먹고 있자니 정말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다행히 퇴근 무렵엔 많이 좋아졌다. 이렇게 약이든 뭐든 뭘 자꾸 먹어서 해결하려는 내가 미련해 보인다. 체력을 길러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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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극장대기실2007. 7. 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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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여기는 정말 극장대기실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고 나오던 밤 12시에 극장로비에서 심슨가족을 만났다.
반가워서 얼른 달려가 옆에 앉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심슨에게 인사하려면 맥주와 도넛이라도 들고가야했는데..
저 뭔가 집어야 할 것같은 빈손이라니..

<심슨무비>는 올 여름 기대작 중 거의 마지막으로 찾아올 듯하다.
<캐리비안의 해적 3>과 <밀양>과 <트랜스포머>가 지나갔고, <해리포터 5 - 불사조의 기사단>과 <심슨무비>가 남았다.
슬쩍보면 아동 취향같지만 해리포터는 3편 이후로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있고, 심슨은 엄연히 아동용은 아니다.

여름엔 어쩐지 시원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끼고 딩굴거리는 것이 잘 어울린다. 이렇게 쾌적한 휴가가 또 있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겨울에 따뜻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아랫목에 배를 깔고 딩굴거리는 것도 잘 어울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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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길모퉁이2007. 6. 2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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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을 비웠다. 틈틈이 집에 가져갈까 생각해왔었지만 책이라는게 다섯 권만 되어도 무게가 보통이 아니어서 이내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쌓인 책과 자료들 일년 치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논문작성자 열람실을 쓰면서 차곡차곡 읽었던 사이보그 관련 책이 1/3쯤 되었고, 이번에 논문을 쓰면서 모은 자료들이 절반이 좀 넘었다.

부시럭부시럭 대면서 정리를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부터 공부하겠다고 나온 캐럴 바깥쪽에 앉은 두 커플에겐 미안하지만 (소리가 얼마나 들리는지는 잘 모른다) 오며가며 보니 옆구리 찔러가며 노는 모양새가 별로 공부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책 몇 개 만지고 고새 먼지 날린다고 재채기를 하며 요란을 떨었다.

차를 가져가서 한번에 옮기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쇼핑백을 몇 개 준비해갔다. 두어번만 움직이면 될 줄 알았다. 차도 일부러 지하주차장이 아닌 교우회관 쪽에 댔다. 마침 날씨도 흐렸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았다. 사진 속 쇼핑백이 5개이고 아직 못 들어간 저 책들은 나중에 쇼핑백을 차에 비우고 다시 가져와서 나눠 넣었다. 총 7개. 일단 정리를 마치고 잠시 서서 무겁게 3개씩 들고 내려갈 것인가. 2개씩 여러 번 왔다 갔다 할 것인가 고민했다.

두개도 들어보고 세 개도 들어봤다. 아, 세 개는 무리다. 내 핸드백을 들고 내려가는 것까지 포함하여 총 4번을 왕복했다. 한번 다녀오고나서 머리가 핑 돌아서 다녀올 때마다 5분씩 쉬었다. 그 와중에 반납이 임박한 아직 못 읽은 책까지 읽느라 거의 한시간 반이 걸렸다.

더 큰 문제는 이것들을 내 방으로 옮기고 나니 이미 만원인 책꽂이에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버려야 할 것도 있을 텐데 애써모은 자료라는게 잘 버려지지도 않고 책은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모은 자료들은 스테플러로 찍어서 클리어화일에 모아놓았는데, 이래서야 책꽂이에 꽂으면 나중에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이제 이것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줘야하고, 적당히 묶어서 파일에 넣어줘야 한다. 이런.

빈자리를 만드는게 급선무라 책꽂이의 대대적인 정리에 들어갔다. 큰 맘 먹고 잔뜩 버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종이가 배출되었다. 50개쯤 남은 비디오 테잎 중에 또 20개쯤 버렸다. 지난번에도 스무개 정도를 버렸더니 분리수거하시는 경비아저씨가 한번에 그렇게 많이 버리면 안된다고 하셔서 나눠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걸 몇 주에 걸쳐서 내놔야 하는군. 더 이상 듣지 않는 테잎도 20개쯤 내놨다.

그렇게 정리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저녁 8시가 되도록 정리를 못끝냈고, 지금 내 방은 발디딜 틈도 없다. 학부 때부터 버리지 못한 수업 자료들까지 정리해볼 심산으로 다 꺼내놓았는데, 일일이 훑어보고 정리하려면 일주일도 부족할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어깨가 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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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길모퉁이2007. 6. 22. 15:08

본의아니게 번역할 일이 생겼다.

학부 전공이 영문학이다보니 초면에 전공을 묻다보면 늘 듣는 말이 '영어 잘하시겠네요'이다. 아, 그중에 몇몇은 '영어를 잘해서 좋겠네요'라고 넘겨짚기도 한다. 늘 절대 아니라고(절대를 강조해서) 말해도 사람들은 겸손함 쯤으로 치부해버리고 곧 잊어버린다. 정말이지 아니라고 말할 땐 믿어줘야 한다.

같이 공부해본 사람들에겐 이미 겸손하게 '아니에요'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뽀록난 상태이지만 딱히 검증을 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막연히 잘하겠거니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번역을 좀 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오는 불상사가 가끔 생긴다.

번역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일인지 해본 사람들은 안다. 누구는 적당한 어휘를 찾느라 하루종일 고생하다가 정말 딱 들어맞는 말을 찾아내고 희열을 느꼈다는데, 나라며 돈 돌려주고 책을 덮어버릴 거다.

게다가 이렇게 부탁받는 글들은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재미있는 내용이 별로 없다.
이번 번역도 돈을 아무리 줘도 차라리 주말에는 그냥 놀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거절했었다.(많았으면 달랐을지도 ☞☜)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보다가 결국 사람이 없었는지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설문조사결과를 정리한 것이 절반 이상이라 그다지 어렵진 않았지만 처음해보는 분야인데다 별 관심이 없으니 시간이 5배는 더 걸린다. 한줄 번역하고 커피마시고, 한줄 번역하고 문자보내고, 한줄 번역하고 냉장고에 뭐 있나 열어보고. 이러다 보니 2-3시간이면 끝날 분량이 하루종일 걸리기도 했다.

수요일에 초고를 보냈는데 불상사에 불상사가 겹쳐, 나와 절반을 나누기로 한 분이 착각을 하시고 내가 번역한 부분을 열심히 번역해 오셨다. 의뢰를 한 곳에서 시간이 촉박하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통에 졸지에 그분 것을 다시 절반으로 나누어 추가로 일을 하게 되었다.
하기 싫은 일은 해도 잘 안풀리는 모양이다.

이제 한문단만 끝내면 되는데 또 이렇게 딴짓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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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길모퉁이2007. 6. 1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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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가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다.
최근 앨범을 낼때마다 크게 인기를 끌지도 못했고, 가끔 출연하는 쇼·오락프로그램에서도 어울리지 못했다. 나이를 잘은 모르지만 마흔이 다되어 갈 거다. 20대 초반의 젊고 덩치좋은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보였고 그런 그가 안타까웠다. 주변의 중론도 그러하였는지 최근엔 게임 프로그램엔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토크쇼를 표방한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그의 모습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재기발랄하고 MC를 휘어잡던 말솜씨는 어느새 조근조근한 말투로 변해있었다. 개그맨보다 더 웃긴 가수였던 걸로 기억했는데 어느새 MC와 스텝들을 지루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진다던가. 10초에 한번씩 톡톡 튀어줘야 하는 요즘 트렌드와 멀어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가 낯설었다. 어쩌면 이번 방송은 그동안 <무릎팍 도사> 중 제일 재미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작은 키에 까만 얼굴도 매력이었는데, 이젠 술과 담배는 늘고 외로운 일상을 사는 노총각 이미지에 점점 떨어지는 인기와 음반판매량을 정확히 수치로 보여주면서 실패자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답답한 기분이 들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못했다.

코너가 끝나갈 때 쯤 꿈이 뭐냐는 질문에 하늘을 날고 싶다는 대답은 우문현답이었다. 질문에는 앞뒤 맥락도 없었다. 진행자가 무슨 질문을 해도 보편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 한숨을 푹푹쉬며(게스트 잘못 불렀다, 내지는 오늘 방송 망했구나라는 표정으로) 아무 질문나 던진다는게 당신의 마지막 꿈은 무엇입니까였다. 역시 이 대답을 들으며 당황해하는 진행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집을 사고 싶고, 큰 차를 타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건 노력하면 이룰 수 있잖아요. 꿈은 소망하는 거구요. 저는 하늘을 날아보고 싶어요.

바로 초등학생 같다는 비웃음을 받았지만 나는 그 한마디로 조금 전까지 그가 하던 모든 말이 계산하지 않은 솔직함 일거라고 믿어보고 싶어졌다. 아무렴 어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에겐 가장 좋은거지. 나는 어디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던가. 목표 대신 꿈을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흠.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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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길모퉁이2007. 6. 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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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그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사실 잘 모른다. 언제 먹을 수 있는 건지. 그냥 한여름이 되기 전에 한동안 맛있는 과일이 쏟아진다는 막연한 감 밖에는.
과일 가게에 산딸기, 앵두같은 빨간 과일들이 보이면 무척 반갑다.

며칠 전에 먹은 자두는 아직 시큼했고, 앵두는 너무 어렸다.
오늘 산 체리는 대성공! 정말 맛있다!
새빨갛고 말랑말랑한 자두와 통통한 앵두와 검붉은 체리의 계절.
아. 행복해.

매번년 만끽할 수 있는 기간이 짧다고 느껴진다.
두쪽만 먹어도 배부른 수박과 번거로운 포도의 계절이 오기 전에 열심히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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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극장대기실2007. 6. 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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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 구성이 지나치게 친절할 때부터 좀 이상했다. 숨바꼭질하는 아들을 찾던 흔들리는 카메라나 범행이 일어나기도 전에 범인을 알려주는 상황들은 이 영화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없음을 보여준다.

<밀양>은 신애의 영화이지만 늘 카메라 포커스 한 발짝 옆에 서 있는 종찬의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어째서일까. 우리는 처음에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이해하려 노력했다. 남편을 잃고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동네에 내려와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그녀의 고단함에 공감하려 했다.

그러나 나도 교회에서 아픈 자매님의 손을 잡아주고, 절규하는 울음이 안타까워 머리에 손을 얹어주던 지인들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된다. 누가 그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강가에 버려진 아들의 시신을 앞에서 충격에 다리를 휘청거리고 남편과 자식을 죽인 며느리라고 손가락질 받던 당신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을 어떻게 감히 할 수 있겠는가.

신애는 유난히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은 채 혼자 서 있는 장면이 많다. 유일하게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이 사라지고 그녀는 누구의 손도 잡으려 하지 않는다. 가녀린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위태위태하게 서서 어떻게든 혼자 이겨보려는 모습이 애처롭다.

절망의 끝에서 그녀가 손을 내민 곳은 신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하고 하나님을 만남으로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활짝 웃으며 ‘저 이제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싱크대에 서서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목이 메인다. 신은 자신이 한 것처럼 죄인을 용서하라 하셨지만 왜 남편과 아들을 처참하게 데려가셨는지는 설명해 주지 않으신다.

대신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곳에 서있는 종찬이 서 있는다. 신애가 죽던 원작 소설의 결말과 달리 영화에 나타나는 그의 존재는 기대가 막연한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신애가 유괴범의 전화를 받고 손 뻗을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나 결정적 순간에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사건을 제외하면 밀양에 들어설 때부터 내내 신애를 돕는 사람이다.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신애 앞에 거울을 들고 서 있던 그 남자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살아줘서 고맙다고.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바라지 않던 그녀가 살려달라고 말하고, 거울을 들어주겠다며 다가오는 종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는 그녀가 변했다고 믿었다. 어설픈 희망을 품지 말라고 영화 내내 누누이 보았건만 먹먹한 마음에 희망이라도 가지지 않는다면 나조차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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