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2.21 16년 만의 서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비스 에이스. 그 말을 할 때면 혀끝에 울림이 느껴진다. 입 밖에 소리내어 발음하고 싶지만 정작 그 여섯 글자를 발음할 수 있는 자격을 따기란 네 번 중에 한 번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네 번 중에 한 번이라니, 쳇,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물론 열에 하나도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는 거다. 말하자면.

그래서 서브에서 중요한 건 에이스가 아니다. 오히려 포인트는 에이스를 노린 퍼스트 서브가 폴트 됐을 때 시도하는 세컨 서브다. 세컨 서브는 상대방의 리턴을 다시 공격 찬스로 노리기 위한 '바둑의 첫 수'다. 서브를 두고 있을 때, 나는 흑돌을 든 기사의 심정처럼 비장하다.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맞서 첫 수로 승부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기사의 비장함.

하지만,
역시,
에이스가 들어갔을 때가 가장 기쁘다.

그동안 나는 서브를 잊었다. 에이스를 넣었던 순간을 잊었고, 세컨을 성공시키는 노련함도 잊었다. 처음 서브를 배웠던 중학교 1학년 까까머리 시절의 그 서브를 나는 잊었다.

그 후 다시는 서브를 넣지 못했다. 몇 년 뒤 코트를 찾으면 다시 포핸드 스트로크-백핸드 스트로크-포핸드 발리의 정해진 순서를 답습하곤 했다. 누구도 '시합을 위한 테니스'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박제된 곰 머리마냥 미련하게 포핸드 스트로크를 반복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서브를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클레이코트에서였다. 낙엽이 바닥에 톡, 소리를 내며 떨어졌을 때, 갑자기 공을 왼 팔이 뻗어가는 왼 발 앞 머리 위로 높이 던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라갔다 떨어지려는 공을 톡, 하고 때렸다. 공은 제 자리에 꽂혔다. 아주 약하게. 에이스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내게는 에이스의 기쁨 못지 않은 '서브의 귀환'에 따른 기쁨의 엔돌핀이 샘솟았다.

몸에 힘을 뺐다. 갑자기 찾아온 16년 전의 기억에 허리와 어깨와 팔과 라켓 헤드를 내맡겼다. 이날 시합에서 나는 몇 차례 발리를 노리고 네트로 다가온 상대방의 머리 위로 높이 뜨는 로브를 성공시켰고, 스트로크 랠리에서는 상대방을 뒤로 주춤거리게 만들 정도의 멋진 톱 스핀 드라이브도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16년 전의 서브가 되돌아온 뒤 상대방에게 퍼스트 서브를 실패한 직후에 찾아왔다. 에이스를 노렸는데 공은 무심히 서브 라인 뒤편으로 떨어졌고, 상대방은 내 세컨 서브를 톡, 하는 서브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 때 나는 모험을 걸었고, 세컨 서브에 힘을 실었으며 에이스를 잡을 수 있었다.

늘, 모험과 도전에 따른 보상이 가장 달콤하다. 다시는 빌빌거리는 서브를 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날의 게임 스코어는 6-3, 6-0. 불행히도 참패.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