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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게 뒤지고 있던 송가를 응원하느라 정신이 팔렸던 나는, 조코비치의 다리가 풀리자 환호성을 질렀다. "몰아붙여. 기회야!"라고 외치며. 4세트, 체력이 소진됐을만도 한 때였다. 조코비치는 호주오픈 들어서 늘 3:0 완승만을 거둬왔고, 4세트까지 시합을 이어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송가는, 체력이 바닥나도 정신력만으로라도 뛸 만 했다. 말 그대로 이 순간이 송가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일 것임에 분명했다.

4세트, 그 4세트에서, 내가 응원하던 송가가 마지막 기회를 잡고, 조코비치에게 엄청난 위기가 닥친 바로 그 순간에서, 난 아마도 진짜 테니스를 느낀 것 같다. 쓰러져가는 조코비치는 송가의 서비스가 조금만 날카롭게 들어오면 팔조차 뻗지를 못했다. 송가가 랠리를 길게 이어가려고 하면, 아예 포기해 버렸다. 조코비치는 절반을 버리고, 자신의 서비스 게임에만 모든 것을 걸었다. 190km가 넘는 서브는 마지막 타이브레이크의 순간까지 계속해서 쏟아졌다. 서 있기도 힘들었을 것이 분명할 만큼 수건으로 땀을 연신 닦아내면서, 끊임없이 왼쪽 허벅지를 왼 손으로 마사지해가면서, 조코비치는 거기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켜냈다. 이 때 조코비치가 사용한 가장 큰 무기는 송가로부터 계속해서 얻어 맞았던, 송가의 전매특허 '드롭샷'이었다.

송가도 멈춰 서있지 않았다. 랭킹 3위에, '황제' 페더러를 꺾고 한창 상승세를 타는 이 노련한 신예에게 있는 힘껏 맞섰다. 200km가 넘는 서비스 에이스를 연속으로 꽂아 넣고, 슬램덩크 같은 오버헤드 스매시로 조코비치를 위협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송가의 가장 큰 무기는 그때까지 조코비치로부터 계속해서 얻어 맞았던, 조코비치의 전매특허 '다운더라인'이란 사실이었다.

송가가 패배한 건, 경험부족에서 나온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신력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혹시 조코비치가 졌다면(타이브레이크를 놓쳤다면 십중팔구 그렇게 됐겠지만), 그것은 송가 만큼 버틸 수 없었던 상대적으로 부족한 체력 탓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 초반의 두 젊은 선수는, 경기 내내 발전하면서, 마지막까지 상대의 약점을 파고 들면서, 상대의 장점을 배워나갔다. 어떻게 이렇게 드라마 같은 경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걸까. 송가와 조코비치의 대결은 재미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나의 편견은 여지없이 틀렸다. 오늘의 호주오픈 결승은 단연 최고의 경기 가운데 하나다.
Posted by 토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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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 테니스 블로그가 되어가..........

    2008.01.28 11: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테니스 블로그, 좋아요.^^ 쏭가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 자유로운 영혼, 조코비치는 정밀한 계산기같은 느낌을 주는, 재미난 경기였지요. 4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쏭가가 무너진 게 못내 아쉬웠다는...시상식 때에도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젊다는 게 저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

    2008.01.28 13:19 [ ADDR : EDIT/ DEL : REPLY ]
  3. 호주오픈이 끝났으니까... 한동안 테니스 얘기는 못 쓰지 않을까?

    2008.01.29 13: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저희집은 ESPN이 안나와서 못봤지만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했을 것같은 경기더라구요. 그러나..절대..테니스가 치고 싶어지지는 않는다는거.. ㅎㅎ

    2008.01.29 16: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저도 절/대/ 안 쳐요. 공이 저를 너무 어려워 하거든요.
    그냥 보기만 하죠. ^^

    근데 토끼머리님은 이번엔 야구 관련 글이네...혹시, 경제부라고 알고 있었는데, 혹 스포츠부 기자 아니신가요?ㅋㅋ

    2008.02.01 00:22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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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가 골프를 재미없게 만든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테니스도 그럴 뻔 했다. 페더러와 나달이 맞붙는 결승을 수 차례씩 보아오면서 이젠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하드 코트와 클레이 코트를 구분하면서 우열을 나눠 보는 것도 한 두번, 이젠 할만큼 했다.

그 때 송가(혹은 총가)가 나타났다.(송가로 표기하는 것이 대세인 듯 싶어 앞으로는 송가로 통일) 랭킹 상위권의 시드 선수들을 줄줄이 꺾으며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결승까지 진출했다. 게다가 준결승 상대는 세계 2위 라파엘 나달이었다. 그것도 기존에 약했던 하드 코트에서 최근 물이 오를대로 올라서 '황제' 페더러를 꺾을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고 한 바로 이 호주 오픈에서.

아래의 통계를 보면 송가의 승리의 비결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랭킹도, 역대 거둬들인 상금 총액도 나달에게 밀리는 것은 기본이다. 경력에서 일단 송가는 나달의 적수가 아니다. 더욱이 ATP에서 결승에 오른 첫 시합이 그랜드 슬램일 정도로, 송가의 경력은 일천하다. 경기 내용도 마찬가지. 둘 다 화끈한 시합을 자랑하긴 하지만, 나달은 호주 오픈 본선에서 3:0 아니면 2:0의 파워풀한 스트레이트로 4강까지 바로 올라왔다. 단 한 세트도 상대방에게 내준 적이 없었다.

차이는 서비스였다. 쿼터파이널까지 68개를 쏟아 넣은 송가의 서비스 에이스는 페더러와 공동 선두였다. 나달과의 시합에서도 서비스 에이스는 쏟아졌다. 나달과의 4강전에서 쏟아낸 에이스만 17개였다. 최고 속도는 221km. 개인 기록은 231km까지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로딕과 같은 스피드에 페더러같은 영리함까지 갖춘 모양이다. 최고다.) 이 시합 이후 송가의 에이스는 85개가 됐다. 더욱이, 베이스라이너인 나달에게 송가는 위력적인 서브&발리로 정면으로 맞섰다. 나달이 아무리 스트로크를 깊이 찔러대도, 송가는 기필코 네트까지 전진해내고야 말았다. 그 위압감과, 예상을 뒤엎고 떨어지는 드롭샷에 나달은 시종일관 괴로워했다.

송가가 꼭 페더러하고 한 판 붙었으면 좋겠다. 미안하지만, 조코비치, 이번엔 아닌 것 같다. 프랑스라면 늘 눈을 흘기지만, 송가에게만은 예외다. 이 프랑스 특급열차가 너무 멋지다.

송가와 나달 비교(전적은 호주오픈 4강까지)

 

송가

나달

1.88m

1.85m

몸무게

90kg

86kg

나이

22세

21

랭킹

38위

2위

스타일

오른손 포핸드, 투핸드 백핸드

왼손 포핸드,투핸드 백핸드

에이스(호주 오픈)

68

28

더블 폴트

10

12

5세트까지 간 경기

0

0

4세트까지 간 경기

2

0

3세트 이하 경기

3

5

총 경기 수

173

124

총 상금액

48만4813달러

1398만3874달러

별명

코트의 무하메드 알리

떼제베(TGV)

자이언트 킬러

클레이 코트의 왕

엘 마타도르(투우사)

황소

마요르카의 미노타우루스

Posted by 토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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