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4.09 GranMonte 1
  2. 2007.09.12 Spanish Weekends #3 1
  3. 2007.04.23 조금만 더, 조금만!
  4. 2007.03.13 전라도식 점심식사 7
  5. 2007.02.24 사비니 레 본
토끼머리2008. 4. 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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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와인을 사 왔다고 하니까 모두 "왜?"라며 의아해하곤 했다. 그 날씨에서도 포도가 제대로 자라느냐는 걱정과 함께. 심지어 태국의 와인숍에서조차 '그란몬떼'를 달라고 부탁하자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왜 태국 와인을 사느냐는 듯.

하지만 실제로 시도해본다면 선입견은 깨질만하다. 태국식 볶음밥을 만들어놓고는 술을 뭘 꺼낼까 고민하다가 꺼내 들었던 그란몬떼, 인터넷을 뒤져보니 2002년산이 더 좋다는 얘기들이 있던데, 2003년산도 충분히 괜찮았다. 약간 매콤하면서 몹시 강한 향기로 가득찬 볶음밥과 꽤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와인, 마치 신혼여행을 다시 떠나온 것 같았다.

참고로, 그란몬떼 투어를 가면 아래와 같은 시스템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온도, 습도, 강수량, 일조량 등을 자동으로 측정해 데이터센터에서 정보를 분석한 뒤 올바른 조치를 취하기 위한 시스템인데, 포도 품질을 개선하는 것 외에도 관광객을 위한 기상 안내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그란몬떼 와이너리가 있는 카오 야이 밸리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라 수많은 관광객이 찾기 때문에, 이 와이너리의 기상 시스템이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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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2007. 9. 12. 20:27
푸에르타 비에하. ‘오래된 문’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와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프랑스를 떠올린다. 이외에도 프랑스에서도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곳은 한두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나, 독일이나 이탈리아도 와인 재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란 것 정도야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독 스페인을 선택하는 사람은 적다. 스페인은 이들에게 와인의 나라라기보다는 투우와 플라멩고의 나라일 뿐이다.

하지만 오해다. 그라나다에서의 저녁식사. 우리는 알바이신과 알람브라 사이의 거리에서 빠에야와 와인을 주문했다. 스페인에는 리오하 강 유역이라는 훌륭한 와인 산지가 있다. 스페인 와인을 잘 모르니 추천을 부탁한다고 묻자 종업원은 “15유로(약 2만원)정도 하는 정말 좋은 와인이 있다”며 이 와인을 내왔다. 조금 미안하지만 이보다 더 높은 등급인 한국에서도 나름 유명한 스페인 와인 ‘마스 라 플라나’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관광지 레스토랑에서 그 가격이라니!

하루종일 더위와 미로같은 골목길에 시달려 짜증을 내기 직전이던 purslane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술의 신 바쿠스는 행복도 아마 함께 관장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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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머리2007. 4. 2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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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레마두라는 스페인에서도 혹독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건조하고, 더위가 멈추지 않으며, 추울 땐 가차없는 곳. 어원을 따져보면 EXTREMADURA라는 말 자체가 '지나치게 성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 이런 험악한 곳에서 성숙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거란 생각도 든다.

코르테 레알은 엑스트레마두라와 상당히 닮아 있다. (사실은, 엑스트레마두라 산 와인이란 표시만 보고 별 생각없이 골라 들었다.) 밸런스가 무척 좋은데, 그것도 적당히 자리잡은 밸런스가 아니라 아주 강한 서로 다른 특징들이 서로 충돌하고 부딪히며 만들어낸 밸런스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 와인은 타협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지긋지긋한 전쟁 끝의 종전협정과 같다. 그렇다보니 딱히 흠을 잡을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팽팽한 긴장감이 시종일관 느껴진다.

그런데도, 뭔가 아쉽다. 좋은 향과 부드러운 첫 느낌, 목을 넘길 때까지의 맛은 그랑크뤼 3~4등급 정도는 우스워 보일 정도다. 하지만 마지막 뒷 맛이 씁쓸하고 시다. 덜 숙성된 것도, 산화가 된 것도 아닌 포도 자체의 신맛 같은데 몹시 거슬린다. 사실 거슬린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많이 거슬리는 신맛은 아니다. 그래도 너무 완벽한 긴장이 한 순간에 깨어지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소매점 가격이 2만 원 대. 가격 대비로는 거의 최고급에 속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인데, 불행히도 마지막 뒤끝이 사람들의 인상을 구긴 모양이다. 별로 샵에서 인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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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노가 자랑하는 산테다메 키안티 클라시코. 한국에서의 인기는 거의 하늘을 찌르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격이 20달러를 넘지 않으며(일반적으로 13~14$에 팔리는 듯) 국내 수입가격도 거품을 대충 제거하면 2만원대 초반(또는 2만원)이면 구할 수 있다.

더구나 키안티 클라시코다. 저 욕심많고, 따지기 좋아하며, 혼자만 잘 되려고 하는 (한국인과 아주 흡사한) 이탈리아 포도 농부들이 싸우고 싸워 따낸 것이 키안티 '클라시코'다. 근처에 있다고 다 키안티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안동 반경 50km 이내에서 안동소주를 만든다고 그게 과연 진짜 안동소주겠느냐는 것과 같은 논리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클라시코'는 '원조'에 해당하는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_-;) 루피노 산테다메 키안티 클라시코 DOCG 2004. 이름으로도 기가 죽을 지경이다.

열어서 잔에 따르고는 강한 신맛을 느꼈다. 산지오베제가 원래 그렇지 뭐, 100%라는데...라고 넘기려고 했지만, 병을 열어둔지 1시간이 지나도록 신맛이 순해지질 않는다. 아니, 더 튄다. 2004년산이라고 참아주려고 했지만 도저히 못 참겠어서 좀 거칠게 잔을 흔들어도 보고, 기다려도 봤다. 향과 입안에서의 느낌은 괜찮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신맛이 튀느냔 말이다. 오히려 처음 코르크를 열고 30분 정도까지의 신 맛이 조화롭다고 느껴질 정도다. 좀 오래 열어뒀다고 해서 산화를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다.

보니까, 이 와인의 수입원인 금양인터내셔널이 엄청나게 루피노 와인을 밀고 있는 모양이다. 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가가 4만원대라고 해서 루피노의 키안티 클라시코 DOCG가 4만원 가치를 하진 못했으니까. 보관상태가 몹시 안 좋았던 것 같은 얼마전에 골랐던 트라피체 말벡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아무리 배에 담아서 대충 건너온다고 해도, 좀 더 신경을 쓰시지. 산지에서 농부나 양조사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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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머리2007. 3. 1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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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웨이의 영향인지, 생떼밀리옹하면 '슈발 블랑'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슈발 블랑 못지않게 유명한 와인이 샤토 오종(Ausone)이다. 생산량이라거나 각종 평점 등은 슈발 블랑에 못하지만, 독특한 특징과 몇몇 빈티지의 개성 등은 그랑크뤼 1등급의 명성에 전혀 누를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다 오늘 들은 얘기다.)

샤토 퐁벨(Fonbel 2002)은 오종의 세컨드 와인. 점심 식사를 함께 했던 분이 식탁에 턱 퐁벨을 올려 놓으셨다. 점심 메뉴는 떡갈비와 연포탕. 전라도 음식과 생떼밀리옹의 메를로가 상당히 잘 어울렸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조금 아쉬웠던 건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시간을 천천히 두고 병을 좀 열어뒀다가 마셨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다는 것.

전라도 식당의 점심식사에서 생떼밀리옹을 열 줄 알았던 이 멋진 양반은, "거의 모든 음식마다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보곤 하는데, 아무리 잘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도 삭힌 홍어에는 맞는 놈을 못 찾았어요. 그건 그냥 소주가 최고로 잘 어울리죠"라고 말해줬다. 점심이라, 홍어를 먹기 이른 시간이었던 게 다행이었다. 이 식당 홍어가 무척 맛있기로 유명했으니까.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07. 2. 2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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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와인은 어려워서 다가서기 힘들 줄로만 알았다. 우리가 아는 부르고뉴 와인이라고 해봐야, 에세조, 리시부르 등 도저히 돈을 내고 먹을 수 없는 엄청나게 비싼 와인들이 대부분이니까. 게다가 피노 느와 하나로만 만드는 와인이란 건, 사람 기를 죽이기 십상이다. 부르고뉴의 피노 느와를 마시려면 내 혀가 더 섬세해야 하고, 내 자세도 더 느끼려고 노력해야 될 것만 같았다. 여러 종류의 포도를 섞어 만들어 마시다보면 자유롭고 화려하게 변화하는 보르도의 블렌딩 와인과는 사뭇 다를 것으로 생각한 거다.

사비니 레 본의 와인들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다. 대학 동창들과의 술자리, 선배가 호기롭게 "예산은 15만 원이니까 적당히 골라봐"라고 말했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냉큼 피노를 고르려고 했고, 서울와인스쿨에서는 사비니 레 본 레 라비에르와 뉘 생 조지를 추천했다. 선택은 사비니 레 본, 나쁘지 않았다.

선배가 추천한 가게는 서울와인스쿨. 얘기는 전에도 들어봤는데, 직접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도저히 와인샵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건물의 3층. 허름한 곳에 담배연기와 치즈향이 가득했고, 곳곳에서 와인병들이 부산스레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고, 비싸지도 않은 곳. 다만 집에서 너무 멀다는 게 흠이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