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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02 장기기증의 경제학 2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본 동력은 '인센티브'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물질적 인센티브가 근면한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기업이 사회를 위해 환경보호에 힘쓰고 불우이웃을 도우면 사회는 기업을 존경하게 된다'는 정신적 인센티브가 기업으로 하여금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한다. 적절한 인센티브는 활발한 생산과 합리적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유독 이런 적절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분야가 있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는 합리적인 생산과 분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바로 장기기증 분야 얘기다. 장기를 기증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말 자체는 뭔가 음험하게 들린다. 실제로 최근 외신을 보면 파키스탄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신장이 하나밖에 없는 주민이 마을 전제 인구의 40~50%에 이른다고 한다. 장기를 제공했을 때 물질적 인센티브(미화 2500달러)를 주는 브로커들의 장사속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장기 거래는 불법이며, 장기 기증에 대한 물질적 보상도 역시 법으로 금지돼 있다. 그래서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장기를 기증하면 돈을 주는 대신 박수를 쳐 준다. 정신적 인센티브를 줘서 장기기증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센티브는 2500달러라는 물질적 인센티브보다 훨씬 적은 모양이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늘 장기 기증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들이 제한적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공급은 매우 제한적인데도 불구하고, 그 수요는 전혀 제한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선진국 사람들은 후진국 사람들의 장기를 기증받고, 장기를 기증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얌체같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동의한 이타적인 사람들의 장기를 기증받는다. 전혀 공정하지 않은 세상이다.

다행스럽게도 상황을 해결할 혁신적인 방법이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라이프 셰어러즈(http://www.lifesharers.org/)는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킨다. 물질적 인센티브는 장기 밀매를 유발시키기 때문에 가입비는 없다. 대신 회원들은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 이 경우 회원의 인센티브는 유사시 다른 회원으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을 수 있는 우선권을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뇌사 회원의 장기를 필요로 하는 다른 회원이 없다면 장기는 비회원에게 기증된다.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이 먼저 장기를 이식받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리자는 간단한 방법이다. 궁극적으로는 라이프 셰어러즈의 회원이 늘면 늘수록 장기 이식을 받을 확률이 늘어난다는 사회적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암웨이의 창업자 리차드 디보스의 방법도 파워풀하다. 물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때의 부작용이 개인간 이뤄지는 불법적인 장기 밀매라면, 물질적 인센티브를 개인이 제공할 수 없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돈은 개인 대신 보험사가 내고, 그 수혜는 장기 기증자가 받으면 된다는 얘기다. 디보스는 뇌사자가 장기를 제공하면 보험사로 하여금 장기 기증자가 생전에 지명한 사람에게 1만 달러씩을 주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러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장기 기증자가 자신이 지명한 후손에게 적절한 경제적 유산을 남길 수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장기를 사고 팔 수 없기 때문에 밀매의 부작용도 최소화된다. 또 이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보험사로서도 이익이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병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보험사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보험비는 1만 달러의 수십 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인센티브를 준다면 장기기증자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장기기증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건 아마도 이 분야 행정관료들에게 경제 마인드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얀거탑이란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 마지막회에 장기기증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때마침 이 덕분에 장기기증에 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는데, 이런 때일수록 한번쯤 장기기증에 관한 인센티브를 생각해 봤으면 싶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