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3.25 제주를 뒤덮은 인터넷 열풍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달에 이어, 한 달 만에 제주도에 또 다녀왔다. 갈 때마다 제주도가 KT의 CF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혹시 "인터넷에 올리면 주문이 들어와요" 식의 장밋빛 환상이 제주도민들을 사로잡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달 내가 묵었던 펜션에서는 주인아주머니께서 아침마다 창문을 두드려 깨우며 "누룽지가 있는데 드실래요? 된장찌개가 있는데 같이 아침 먹을래요?"라고 물어보곤 했다. 전날 술을 먹었다거나, 아침부터 일정이 바빠 애써 사양했지만 인심은 참 좋았다. 그리고 그 펜션을 떠나는 날, 주인 내외분께서는 직접 집 앞까지 나와 배웅을 해줬다.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내 목에 걸린 카메라까지 받아다가 우리 부부를 찍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배경이 이 펜션의 예쁜 전면이었다. (여기 올린 사진에는 빼놓았지만,) 전화번호와 펜션이름이 크게 새겨진 간판이 아주 잘 드러난 상태였다. 인터넷을 타고, 제주여행 후기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이 펜션이 알려질 수 있도록 의도한 듯이.

해안도로를 달리다 눈에 뜨인 갈치조림 집에 무작정 차를 세우고 점심을 먹었을 때였다. 갈치조림은 무척 맛있었고, 쓰러져가는 듯한 낡은 가게 풍경이 성산포 풍광하고 운치있게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다. 잘 먹고 났더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뭘 보고 왔어요?" "그냥 차 몰고 달리다 대충 들어왔는데요?" "아유, 여긴 인터넷이나 신문 보고 많이들 찾아오는 곳인데." 지금 이분들에게는 인터넷 홍보전략이 체화돼 있고, 고객 반응 확인이 생활화 돼 있다. 인터넷 경제가 제주도민 전체에게 경영 마인드라도 심어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탓에 좀 어색하고 곤란한 상황도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제주도에 우후죽순 생겨난 수많은 펜션들이 제각기 경쟁적으로 광각렌즈를 사용해가며 예쁜 정원과 벤치, 멀리 떨어진 바다를 보여주다보니 수많은 펜션들이 하나같이 비슷해져 가고, 사진으로볼때면 모두가 똑같아 보인다. 정원이 있고, 꽃이 있고, 바다가 (멀리) 있고. 정말 좋은 곳은 어디인지 궁금해서 입소문이라도 보려고 들면 어김없이 광고성 글만 검색된다. 네이버나 다음에 '제주 펜션'을 쳐보면 키워드 광고만이 우루루 떠올라서 스크롤을 수없이 해야 하고, 모든 펜션들이 서로 '특별히 친절하고, 특별히 예쁘고, 특별히 교통이 편하다'고 자랑해대는 탓에, 오히려 전반적인 불신이 생긴다. 제주도의 펜션 수준은 유럽의 펜션하고 비교하면 호텔급이라고 할 정도인데도, 뭐랄까, 이건 일종의 플라스틱 신드롬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이번 제주도 출장길에서 만난 펜션 주인들은 "1년 동안 열심히 펜션 운영해봐야 기본 비용 빼고, 포털에 내는 검색광고비 빼면 남는 게 없다"고 투덜대곤 했다. 포털의 키워드 광고에 펜션들이 몰리다보니, 키워드 경매가격은 날로 치솟고, 1년 전에 클릭당 300원~1000원이던 경매가가 요즘은 비싸면 1만원까지 뛴다는 것이다. 100만 원을 광고비로 내놓으면 적어도 1000회 이상 노출되던 광고가 10분의 1도 안 되게 노출 빈도가 줄어들다보니, 실제 비용 지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인터넷에 발품만 열심히 팔면 각종 할인 및 결합상품을 수없이 찾을 수 있다. 이런 상품을 제공하는 곳은 제주여행 관련 카페들. 광고 효과가 떨어지다보니, 이윤을 줄여서라도 실제 구매로 연결시켜준다는 카페 등에 펜션이나 맛집, 렌터카 업체 등에서 열심히 혜택을 주는 것이다.(나부터도 이런 카페를 이용하곤 했다.)

펜션과 식당을 만들고, 그들이 말하는 '육지 사람들'에게 서비스와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은 제주도민들인데, 정작 여기서 이런 상품을 중개하고 큰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제주도민이 아닌 육지 사람들이다. 개인과 개인의 자유로운 거래가 한없이 늘어날 것만 같던 인터넷이었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제주가 보여주는 인터넷 경제는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