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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극장대기실2007. 3. 2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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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는 객관적 현실의 증거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대신 전쟁시詩의 역할을 하는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쟁 사진은 전사들이 지속해야만 하는 일들을 독려하는 사명, 그런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최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버지의 깃발>의 모티브가 된 조 로젠탈의 사진 역시 그런 지점이 있었다. 전쟁의 위해 의도된 사진들은 역할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극도로 아름답게 만든 전쟁 영화 한편을 보고 열광했으며, 그 바르지 못한 묘사의 불편함을 애써 잊고 즐기려 했다. 마음 한편에서는 창피했지만 그것이 영화 <300>이 가진 미덕이다. 이 영화는 수세기동안 많은 예술작품을 통해 비난 받으면서도 재생산되어온 잔인한 전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것을 그동안 보아왔던 아름다우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 한편으로 보아야 한다. 프랭크 밀러가 묘사하고 싶었던 숭고함을 담은 한편의 그림. 거기서 과장된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나 역사적 올바름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것을 전쟁에 대한 미화로 여기고 끈질기게 감독을 따라다니며 현재 미국과 비교하며 질문을 던지는 것은 기대했던 대답을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300>을 즐겁게 감상하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를 애써 무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300>을 재밌게 본 변명이다.

<300>은 레오니다스 왕의 수련으로 시작된다. 어린 레오니다스는 가녀린 몸을 지녔지만 눈빛은 야수의 그것이다. 그는 자기 몸집보다 큰 방패를 어루만지며 전사로 자란다. 이 의젓한 소년은 강인한 왕으로 성장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용맹하지만, 자상한 남편이기도 하다. 이 완벽한 남자의 패기가 페르시아 대사를 구덩이로 기세좋게 처넣으면서 전쟁을 선포한다.

아, 전쟁을 시작 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에도 아시아 놈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레오니다스 왕의 결단은 용감하기는 하나, 온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300명의 전사 역시 모두 역사에 남을 만한 전투를 벌인 후 전사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고 머리대신 몸을 쓰겠다는 선언에 그것에 기꺼이 동참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길을 떠난 300명의 전사들은 페르시아 군을 향해 가던 중 죽어가는 소년을 만난다. 이미 쑥대밭이 된 마을은 불타고 있고, 주민들은 커다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스파르타인들은 ‘신에겐 자비심도 없는가’라는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며 더욱 비장한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후광이 비치는 나무에 끔찍하게 사람을 매단 이모탈과 돌과 페르시아인 시체를 적당히 반죽해 벽을 만드는 스파르타군과 무엇이 다른가. 라고 말하면 안된다.

그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로 훈련받은 스파르타군이다. 초콜릿 바같은 복근을 자랑하며 단단한 방패와 새빨간 망토를 휘날리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파르타군이다. 후에 스파르타군과 맞붙는 이모탈의 가면이 벗겨지면 레오니다스가 돌려보낸 곱사등이 에피알테스보다도 추한 얼굴을 하고 있다. 괴물처럼 생긴 에피알테스가 군에 합류하겠다고 따라온 것을 돌려보내고, 그가 크세노크세스에게 뒷길을 알려주는 첩자 노릇을 하는 모습을 보며 못생기고 탐욕스러운 놈이라고 욕해도 안된다.

300명의 완벽한 대열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균열이 필요하고 그런 역할을 해줄 괴물같이 생긴. 그래서 사람인지 괴물인지 잘 모르겠는 인물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레오니다스 왕이 초콜릿 바는커녕 크런치 바 같이 생겨서 대열에 합류할 수는 없지 않냐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는데 못알아 들은 것뿐이다. 그는 애초에 스타르타군이 될 수 없는 외모를 타고 났다. 그러니까 여기서 추한 외모에 탐욕스럽기까지 하다고 이분하거나, 스파르타군이 자기들끼리 뭉쳐서 잘난척한다고 해도 안된다.

그들의 용맹스러움은 똑같은 짓을 해도 페르시아군의 잔인함과는 다르다.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는 페르시아인들을 떨어진 감 줍듯이서 창으로 푹푹 찔러서 죽이고, 동시에 사과를 우적우적 먹으며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들에겐 일상이다. 전사로 자란 그들에게 페르시아인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전투가 시작될 뜨거운 문에 도착하자마자 수만의 페르시아인을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웃는 것은 두려움은 커녕 제대로 싸울 상대가 기다리고 있음을 기뻐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한편의 서사시이다. 고대의 구술 서사시이다. 실제로 <300>은 누군가의 목소리로 진행되며, 그것이 마지막에 떠난 댈리오스인지는 그 보다 후대의 떠돌이 시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조들이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는지를 적당한 과장을 섞어서 모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호메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스파르타인들의 전투엔 제우스가 폭풍으로 도와줬다고 말하면서 눈앞에서 전투가 펼쳐지는 것처럼 묘사해주는 것이다. 일리아스같은 서사시를 구술로 들으면 지루할 정도로 상세히 묘사되는 친척에 친구에 형제의 전투 장면들로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죽어갔는지 듣느라 며칠 밤을 새고도 남는다. 그래도 우리네 조상이야기이니 흥미진진할 것이다. 눈먼 장님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지팡이를 치면서 일리아스를 읊어주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뭐, 호메로스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는지는 정확히 밝혀진바 없다)

구술로 전해지는 서사시의 형식을 취하면서 <300>은 역사적 사실성을 보증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난다. 증거나 기록의 역할에서 발을 뺀다. 이는 어떤 과장된 묘사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로서 훌륭하게 작동한다. 일당 백으로 싸우는 첫 번째 전투씬에서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되는 움직임은 진짜 서사시를 그리는 듯하다. 철저하게 스파르타인의 편에 서서 우리네 조상들이 얼마나 멋진 전사들이었는가를 생생하게 묘사해주는 역할에 충실하였고 그것은 성공했다. 당신이 스파르타의 후예가 아니라면 불편해도 참아라. 이것은 철저히 그들의 영웅담이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