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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1 둠즈데이 북
Purslane/서재2007. 2. 2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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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 윌리스 / 최용준 역 / 열린책들 / 2005


도서관에 가면 아무래도 전공서적 근처를 가장 많이 가게 된다. 지금은 전공 자체가 워낙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있어서 인문학, 어문학, 사회학, 예체능계열 서적을 다 찾아다니고 있지만 학부땐 수업관련 서적은 영문학관련 책이 대부분이었다. 그 구석에 처박혀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책 번호 따위를 찾을 필요도 없게 될만큼 작가별, 분야별 위치가 머릿속에 그려지게 될무렵, 수업시간에 체크해두었던 소설을 한권씩 골라 읽으면서 열람실에서 여유를 부리는게 젤 행복했다.

현대 미국 소설과 영국 소설은 앞뒤칸으로 꽂혀있었는데, 중간쯤 슬쩍 꽂힌 현대 소설들이 있었다. 물론 수업시간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들이며(몇십년 후엔 모르겠지만) 폴 오스터 같은 작가들의 이름이 간간이 눈에 띄는 정도이다. 물론 핑크빛 꽃무늬로 장식된 미국 로맨스 소설이나 SF, 스티븐킹의 소설등도 있었다.

가끔은 교과서에 없는 소설을 읽고 싶을 때가 있지만, 수첩에 읽어야할 책 목록을 적어두었다가, 하나씩 지우는게 취미아닌 취미여서 도서관에서 충동구매(?)는 쉽지 않다. 4권쯤 뽑았다가도 (알바하는 사서들에겐 미안하지만) 3권은 다시 내려놓고 오게되는 것이다. 그 책 중에 하나가 코니 윌리스의『개는 말할 것도 없고To Say Nothing of the Dog(Bantam, 1998) 』였다.  녹색 양장을 하고 생뚱맞게 꽂혀있는 이 두툼한 개에게 눈이 가면, 이 정도 제목은 읽어줘야 할 것같은 마음에 만지작 거리다가도 다소 묵직한 모양새에 내려놓기를 여러번했다.

그러다 이번에 큰 맘먹고 도서관에 갔는데, 3편의 연작중 세번째인 '개'는 어디로 놀러가고, 두번째 장편 『둠즈데이 북』이 꽂혀있었다. 번역은 나중에 됐지만 앞서 쓴 책이라니 먼저 읽어도 좋을 듯싶어 일단 데리고 나왔다. K군의 표현을 빌자면 '그 사전같은 책은 뭐니?'였지만 지난 일주일간 2개의 사랑니를 뽑는 고통을 잊게해준 친구였다. 코니아주머니의 유머감각은 단연 최고!

중세의 삶을 연구하기 위해 키브린은 홀로 중세로 떠난다. 치밀한 계획을 하고 떠났지만 기술자들의 계산 착오로 1320년이 아닌 유럽 전역에 페스트가 퍼진 1348년으로 떨어진다. 수십만명의 사람이 죽었고, 어떤 마을에선 더이상 시체를 묻을 사람조차 남지 않았던 최악의 질병 돌던 시대로 떨어진 것이다. 떠날때 다행히 예방접종을 했지만 그녀가 도착한 마을 사람들은 고통 속에 치료제도 없이 하나씩 쓰러진다.

키브린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중세로 갔지만 과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도 없으며, 인과관계를 뒤집을 만한 일을 만들 수 없다. 단지 방관자 역할만 할 수 있다는 설정은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에 설득력을 더해주며 동시에 페스트의 한 복판에 서 있는 그녀에게 안타까움을 준다. 과거와 미래에 다른 듯 같은 설정을 병행 배치함으로써 시대의 변화는 있어도 사람의 삶에는 과장도 미화도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키브린이 떨어진 마을에 숲에서 로슈 신부가 그녀를 발견하고 한 영주의 집에서 치료를 받도록 도와준다. 촌스러운 시골 신부인 그를 영주의 어머니는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늘 묵묵하게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페스트가 돌고 마을 사람들에게서 질병이 나타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 헌신적으로 사람들을 돕는다. 잠도 자지 않고, 음식도 먹지 못하면서도 (의미는 없지만)치료하고 죽은 사람을 묻고, 시간이 되면 종을 치고, 고해성사를 도우며, 묵도를 진행한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