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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4 '0'과 '∞', 프리코노믹스를 설명하는 두 개의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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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헤드와 프린스의 새 앨범 가격은 '0'이다. 야후의 '무한대(∞)' 용량 이메일의 가격도 '0'이다. 구글의 전화번호 안내 역시 '0'이고, 컴캐스트가 나눠주는 DVR플레이어의 가격도 '0'이다. 플리커의 저장용량은 무한대를 향해 달려가고, 유튜브의 저장용량도 무한대로 증식한다. 대역폭도 상승해서 Full HD 동영상이 광대역망을 타고 흘러다니기 시작했으니, 대역폭도 무한대를 향해 발전한다. 듀얼코어는 쿼드코어로 발전하는데, 노트북 컴퓨터의 가격은 계속 하락한다. 그러니까, 그동안 시장을 지배해 왔던 복잡한 숫자들은 Freeconomics의 시대를 맞아 '0'과 '∞'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말, 와이어드매거진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롱테일 법칙의 바로 그 사람)이 이코노미스트에 이런 내용의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경제 트렌드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공짜 경제'라는 건 인터넷 산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민해 본 주제였다. 롱테일 법칙만큼 크게 획기적으로 들리진 않았다.

오히려, 와이어드매거진에 자세하게 소개된 '공짜 경제'에 대한 긴 글을 읽고 나니 혼란만 늘어났다. 저장장치와 대역폭, 프로세서의 처리속도는 점점 빠르게 발전해 가격이 의미없는 수준까지 내려왔다고 하는데, 여전히 인터넷업계에서는 그 대역폭과 저장장치, 프로세서 가격 때문에 비명이다. 앞으로, 언젠가, 의미없어 질 수 있겠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20x240 해상도의 초당 24프레임 동영상을 공급하기 위해 판도라TV와 mn캐스트같은 회사들은 계속해서 적자를 본다. 그런데 여기에 full HD라니. 너무 빨랐다. 내 옆자리 동료는 저 용량이 얼마 되지도 않는 동영상을 보기 위해, 열심히 다른 작업들을 중지하고, 필요없는 인터넷 창을 닫기 시작한다. 쿼드코어 프로세서가 보편화되려면 여전히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만 지나면 보편화될까? 아닐 것 같다. 크리스 앤더슨이 그리는 공짜경제는 프로세서와 대역폭, 저장공간의 가격이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환경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꿈의 화질'이라고 불렸던 DVD에 5년 만에 싫증을 내고 full HD와 블루레이를 찾는다는 데 있다. 우리의 욕구가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발전하는 기술의 가격은 한없이 0으로 수렴할 테지만, 1000만 화소 카메라를 대체하는 1억 화소 카메라가 가까운 미래에 나온다면 그건 또 어쩔 것인가. 기술 발전의 속도가 예측을 뛰어넘을만큼 빠르다고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늘어나는 속도는 늘 기술 발전의 속도보다 한 걸음 정도 빠르게 마련이다.

공짜 경제 시대의 중요한 자원인 '관심(attention)'이 한정돼 있다는 사실도 중요한 변수다. 세상에서 만인에게 평등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다만, 4억 명이 24시간을 갖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와 4000만 명이 24시간을 갖고 있는 한국 같은 나라 사이에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게다가 적어도 웹의 세계에서만큼은 세계를 시장으로 삼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시장은 아직은 한국에만 제한돼 있다. 통일이 된다거나, 자동번역기의 성능이 높아져서 일본과 한국이 웹 시장을 일부 공유한다고 해도, 여전히 이 시장은 제한적이다. '완전경쟁'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거대 시장에서 가능성을 찾아가는 미국 기업들과는 달리, 끊임없이 독과점이 이슈가 되는 제한된 시장에서 머리를 싸매고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에겐 '공짜 경제'를 지탱시키는 '관심이라는 자원'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크리스 앤더슨의 공짜 경제에 대한 희망찬 장밋빛 전망은, 적어도 한국에선 아주 먼 훗날의 일이지 않을까.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