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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극장대기실2007. 5. 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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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국심이 늘 신기하다. 종교적 믿음과 애국심이 동격이 되는 사람들. God 앞에 the를 붙이지 않는 것처럼 CIA 앞에도 the를 붙이지 않는다는 말은 얼핏 오만함으로 보인다. 그들에겐 그것 자체가 이념이다.

윌슨은 늘 정직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어린 윌슨에게 신뢰를 쌓지 못하면 친구들을 얻을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절대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한다.

엘리트 학생이었던 윌슨은 미국 최고의 비밀결사단체 해골단 가입하게 된다. 모임의 연대감은 대단하다. 해골단의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정기 집회를 하는 모습은 따뜻한 파티를 연상시킨다. 단체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결속력을 가진 선후배와 동료들의 믿음을 가지기 충분하다.

그러나 윌슨의 부인 클로버는 늘 해골단이 신보다 먼저 호명된다고 빈정거린다. 그들은 충성을 맹세한 후에 신에게 기도한다. 미국인의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은 미국의 국가 정체성에 중요한 요소이다. 그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은 아일랜드와 폴란드인들만큼이나 높다. 미국인은 압도적으로 하나님과 국가 모두에 헌신한다. 하나님과 CIA, 해골단을 그렇게 연결된다.

믿음과 신뢰로 유지되는 비밀결사단체는 CIA와 유사하다. CIA에서 일하라는 제의를 하러온 로버트 드 니로는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유태인과 흑인, 일부 가톨릭은 제외된다는 농담을 덧붙인다. 진짜 미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은 앵글로-개신교도뿐이기 때문이다. 애국심은 아무에게서나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

영화의 중간쯤 팔미의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윌슨에게 "이탈리아인에겐 가족과 신앙, 아일랜드 인에겐 고국, 유태인에겐 전통, 심지어 흑인에게도 음악이 있다. 우리에겐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 있다. 나머지는 그저 방문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CIA와 해골단이 부르짓던 애국심 고취는 우파적이고 군사적이며 남성, 백인, 앵글로 그리고 압제적인 것이다. 군사적 특성을 가지는 애국심은 적이 사라지면서 대상을 잃었다. 미국인들은 신기하게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국가적 자부심을 높게 가지고 있다. 그들이 표현하는 자부심은 온건하게 보이는 유럽인들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이다.

미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타자가 사라지자 자유적이고 민주적인 미국의 신조가 흔들렸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들은 콩고에서 결혼할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흑인이다. 아버지는 당황한다. 그녀가 얼마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윌슨은 혼란스럽다. 그리고 이내 그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정리한다.

절규하는 아들 앞에서 더 이상 그런 식의 정리는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 아들은 초국가적 정체성을 가지는 세대이다. 윌슨으로 대변되는 미국에게 이상적인 적은 이념적으로 적대적으로 인종적, 민족적으로 달랐다. 그들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제기하는 대상이었다. 이제 그런 정체성은 모호해졌다. 그러므로 에드워드 주니어가 흑인 여성과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윌슨이 근무하는 CIA는 007처럼 멋지지 않다. 정부의 권력이 응축된 집단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냥 소시민에 가깝다. 집을 나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양옆에 서 있는 다른 남자들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시를 쓰던 소년은 평생 무뚝뚝한 표정으로 살아왔지만 어디에서부턴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CIA 건물을 빠져나가는 윌슨의 뒷모습은 친구도 조국도 없이 혼자가 되는 최대의 두려움을 현실로 맞닥뜨리기 직전이다. 어떤 애국심이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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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발표회가 끝나고 영화를 장장 세시간 정도 보고 있자니 쪼끔만 본드처럼 멋졌으면 머리가 덜 피곤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가끔 총이라도 쏴줬으면 무표정한 맷데이먼을 원망하지 않았을텐데..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