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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서재2007. 6. 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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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한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버렸다. 논문발표회가 끝나고 머리를 식힐겸 집어들었다가 방대한 분량에 오래 지체되었다. 1800페이지가 넘는 3권짜리 책을 집어들 때는 휴식치곤 너무 긴 것 같아서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것(it)>은 스티븐 킹의 최고의 역작이며 대중소설로서의 흥행과 문학적 성과를 동시에 성취했다는 찬사가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순전히 분량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사소설도 아닌 공포소설을 오랫동안 읽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그러나 상권을 읽으며 스티븐  킹은 역시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이 탁월한 작가임을 다시 깨달았다. 

우리나라에서 상,중,하 3권으로 출간되었는데 특히 6명의 친구들이 전화 한통을 받고 24년전 데리로 돌아가려는 도입부분은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실체화 되지 않은 공포를 예민하게 그렸다. 각각의 캐릭터를 그려보게 되는 초반의 묘사는 담담하게 과거의 일을 궁금하게 만든다. 

<셀>에서 평화로운 공원이 폭풍의 전야 같았다면 <그것>의 인물 도입부는 전체의 1/3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전화 한통으로 홀린 듯 어린 시절을 보낸 데리(市)로 돌아가려는 6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어진다.

스티븐 킹은 인간의 공포감을 잘 끌어내는 작가이다. 어린 시절에 본 <캐리>, <샤이닝>, <미저리>의 공포감은 강렬했다. 특히 도시의 공포가 자주 등장하는데 어둡고 눅눅한 지하, 하수구, 쥐, 더러운 먼지들이 한데 뒤엉켜 도시 전체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바로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타인이다. 도시의 익명성은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위협적 존재이다. 데리 역시 스스로 살아숨쉬는 위협적 대상이며 존재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다.

초반이 무형의 공포에 대한 것이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그것’이 어떤 모양을 만들어 감에 따라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것’은 해리포터의 ‘보가트’처럼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것’에게 당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른 것을 보게 된다. 마지막에 최후의 결전에서 드러내는 그것의 모습은 유명한 조형물이 떠올라서 기대가 반감되었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말할 수 없지만)

이 책의 진짜 공포는 아무리 빨리 읽어도 절대 한 호흡에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침대 맡에서 읽다가 책을 내려 놓는 순간 악몽을 꾸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스티븐 킹은 최소한 데이트 약속을 깜박 잊게 만들고, 런던발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뉴욕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워하게 만드는 소설가로서의 목적은 달성했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