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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1 빌러비드
Purslane/서재2007. 2. 2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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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i Morrison/ 김선형 올김/ 들녘/ 2003

「빌러비드beloved」는 1851년 신시네티Cincinati에서 있었던 마가렛 가너Margaret Garner라는 흑인노예여성이 자기 자식을 죽인 조그만 사건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은 이 사건에서 흑인 내부의 문제, 노예문제, 그리고 여성의 문제를 보았다. 어린 딸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선택에 우리는 함부로 비판을 가할 수 없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물론 할말은 없지만 한편으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 고통을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돌을 던질 수 없다.

흑인은 미국내 소수민족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노예 역사는 길지 않지만 노예해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차별을 받아왔다. 문학에 있어서도 흑인 문학의 비중은 크지 않다. 반면 솔 벨로우Saul Bellow등 유태계 문학은 20세기 미국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태인들만이 가진 방랑자의 역사, 소수민족의 특수성, 홀로코스트의 경험 등이 문학작품에 등장하면서 주목을 받아왔다. 최근 유태인들이 미국사회의 핵심에 많이 편입하면서 유태문학의 비중은 많이 줄어들었다. 주류가 되면서 강자의 위치로 서서히 변해가게 되었다. 흑인의 경우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쉽게 떠오르는 엉클 톰의 이야기도 백인이 다룬 흑인문제이지 흑인 자신의 경험은 아니다.

미국 내에서의 흑인들은 특수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온 개척자들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을 타고 짐짝 취급을 받으면서 바다를 건너왔다. 미국 도착해서도 혹독한 노동을 하고 하나의 잔인하게 다뤄지면서 독특한 감수성을 형성했다. 해방이 된 후 여전히 인종차별을 받았으며 1960년대에 와서야 제도적 장치로 흑인의 사회, 교육 환경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최근 대학에서는 흑인쿼터제를 사용하기도 해서 백인들이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러한 흑인들의 역사가 소설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토니 모리슨의 소설은 백인의 소설과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고 표현된다. 아프리카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미국인(American Citizen)으로서의 정체성 찾기에 주력한다. 흑인문학은 1960~70년대 미국 내에서의 흑백 갈등, 흑인의 인권, 법적차별에 관심을 가지다가 최근 많이 해결되면서 흑인 내부의 문제, 자기치료, 수많은 경험을 우리가 어떻게 소화해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 미국인들은 많은 인종이 하나로 융화되는 melting pot이 아니라 각자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melting salad라고 말하기도 한다.

「빌러비드」는 노예해방령이 선포되기 전인 1856년에서 남북 전쟁이 끝나고 남부재건이 끝날 무렵인 1874년 사이를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외면하지 않는다. 쎄서Sethe는 처참한 고통을 경험하고 임신한 상태로 모유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다. 두 아들, 딸과 함께 임신한 몸으로 탈주에 성공하지만 노예주인 선생(school teacher)에게 발각되자 이제 막 걸음을 뗀 딸을 죽인다. 소설은 이 사건이 일어난 17년 후에서 시작한다. 시어머니는 그 이후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고, 쎄서는 다른 흑인들과 교류도 없어졌다. 귀신들린 집으로 불리는 그 집은 계속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두 아들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난다. 탈출할 때 뱃속에 있던 덴버만이 엄마와 함께 고립된 집에서 살아간다. 쎄서는 자기의 손으로 목숨을 빼앗은 아기의 영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7년 만에 사람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는 여자아이가 집에 찾아오고, 쎄서는 그 아이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치유한다.

실제 사건이 일어날 당시 마가렛 가너에게는 남편과 여러 흑인이 같이 있었으나, 소설에는 남성의 존재가 아예 사라진다. 함께 하기로 했던 남편은 결국 탈출에 실패하고, 쎄서를 감싸주던 폴 디Paul D 역시 사건을 알게 된 후 쎄서를 떠난다. 자상한 남편의 역할을 할 것 같던 그도 사건을 감당하지 못한다. 대신 빌러비드를 만난 후 조금씩 마음을 여는 쎄서에게는 마을의 흑인 여성들의 손길이 닿는다. 모리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가 아니라 흑인의 연대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쎄서는 농장에서 유모역할을 했지만 전통적으로 등장하는 인자한 모습이 아니다. 근대 서구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것은 여성은 가정의 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도 정치나 기업 경영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리슨은 이와는 조금 다르게 가정을 지키는 여성의 역할을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강조하고 있다. 쎄서의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는 동네사람들에게 뭘 해서 먹이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렬한 연설을 하고 집회를 주관하는 한편 전통적 여성의 역할이라 여겨진 먹이고, 키우고, 돌보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모리슨은 남녀 성 역할을 전통적 역할에 매어두지 않으면서 여성의 전통적 모성 역할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쎄서나 베이비 석스는 가정 내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강하고 적극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빌러비드 역시 유령인지 진짜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흑인 여성을 대표하고 있다. 그녀가 대변하고 있는 것은 노예제와 연관된 역사적 경험까지 포괄하는 집단적 무의식이다. 빌러비드를 죽인 쎄서가 죄의식의 화신이라면 빌러비드는 욕망과 불만족을 가지고 있다. 쎄서가 빌러비드를 통해 잊고 싶고, 억누르고 있던 죄의식을 일깨우고 속죄하는 것을 그래서 이다. 쎄서는 그녀를 통해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야가야 하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기법에서도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사용하므로서 쎄서의 기억의 파편들의 조각을 드러낸다. 모리슨이 re-member라고 부른 이것은 과거를 기억하는 한편 복원하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그들의 경험을 기억하되 그것을 직시하고 개개인의 삶에서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잊지 말 것을 강조한다. 흑인의 종족적, 개인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기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주체로서 작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