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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31 조선 시대를 살아가는 KBO의 야구인들


무슨 생각인걸까. KBO가 현대 유니콘스를 명목상 해체하고, 제8구단을 명목상 창단하며 실질적으로 현대를 팔아 넘기는 계약을 정체 불명의 투자회사인 센테니얼이라는 곳과 체결했다고 한다.

우선, 유니콘스의 (실질적인 매각) 금액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센테니얼이 (명목상의) 서울 연고 구단 창단을 위해 지급하기로 한 돈은 120억 원. 하지만 이전에 인수 의사를 밝히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까지 갔던 KT가 밝혔던 (명목상의 창단 또는 실질적인 인수) 가격은 60억 원이었다. 불과 1, 2개월 남짓한 사이에 값이 두 배로 뛰었다. 현대가 그동안 가치가 두 배 높아졌을까? 아니다. 현대가 '수원' 연고지로 현재의 유니콘스를 태평양으로부터 인수했을 때 냈던 돈이 430억 원이었는데, 그걸 KT가 6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이 적정한 시장 가격이다. 그만큼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120억 원을 선뜻 내겠다고 달려들었다. 조건을 봐야한다. 아니나 다를까, 센테니얼은 120억 원을 2차례에 나눠 내는 옵션을 계약에 넣었다고 한다. 무슨 뜻일까?

센테니얼이 야구단 사업을 정상적으로 벌일 것으로 KBO가 기대했다면, 그런 바보같은 생각이 없다. 뭐, 그 정도로 KBO가 생각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시장 가격에 구단을 넘기려고 했더니 각종 비시장적인 요소들이 끼어들었고, 제대로 계약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을 가능성이 높다. KT가 적정가격을 써내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계약을 철회하는 과정을 보면서, 어느 기업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복마전에 끼어들겠다고 나설까? 아마, 센테니얼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자회사의 생리를 봐야 한다. 나는 기억한다. 뉴브리지 캐피탈이 부실투성이의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면서 "뉴브리지는 하나로텔레콤을 시세차익을 노리고 인수한 것이 아니다. IP TV라는 새로운 사업영역과 초고속인터넷이라는 훌륭한 자산을 믿고 제대로 된 사업을 벌이기 위해 인수한 것이다. 단기간에 하나로텔레콤을 되파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게 언제냐고? 2006년 초의 일이다. 2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새 하나로텔레콤은 SK텔레콤에 팔렸고, 여전히 부실투성이에 미래도 불확실한 IP TV 사업모델 하나를 위해, 하나로텔레콤의 모든 투자 기회를 포기하고 IP TV에 몰빵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여 인지도를 높인 게 경영의 전부였다. 하나로텔레콤은 정상적으로 통신 사업을 한 적이 없다. IP TV라는 트렌디한 사업에 자원을 '몰빵'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회사를 샀다 팔았을 뿐인데도, 뉴브리지는 그 과정에서 단기간에 수배의 이익을 챙겼다. 왜? 어차피, 유선통신망회사는 SK텔레콤이든, LG통신그룹이든, KT통신그룹이든 탐낼 수밖에 없는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미래가 불투명하니 위험부담을 지기 싫어서 대기업이 투자를 꺼릴 때, 투자회사는 과감하게 도박을 건다. 그리고 크게 먹으면 먹고, 망하면 망한다. 대신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절대로 투자회사가 인수 기업의 사업을 주력으로 벌이지는 않는다. 그저, 분칠을 할 뿐이다.

센테니얼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최고 스포츠는 야구다. 흥행 성적으로, 관중 동원력으로,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원활한 리그 운영의 필수조건인 제8구단이 사실상 해체 위기에 몰렸다. 시장 가치는 KT의 경우에서 살펴보니 60억 원에 불과하다. 이러저런 '정서법'을 만족시켜줘봐야 100억 원 내외에 해결이 가능하다. 문제는 되파는 가격이다. 여기에 '분칠'의 필요성이 생긴다. 센테니얼은 앞으로 그 분칠을 '네이밍 스폰서 유치'라는 실험으로 해낼 것이다. 계약 금액은 비밀로 한 채, 네이밍 스폰서가 사업성이 있다는 식의 홍보를 하는데 열을 올릴 테고, 이 과정에서 아무도 모른다는 톱클래스 연예인의 광고료처럼 각종 거품이 끼어들기 시작할 테다. 자연스럽게 사업모델을 자산 삼아 재매각 가격도 뻥튀기가 될 것은 틀림이 없다. 센테니얼로서는, 그저, 기회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비용이 조금 들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선수 관리와 경기 성적 등에 대한 '책임'은 단장이 맡고, 스탭 구조조정이나, 비용 효율화 등의 '칼'은 센테니얼 사장이 휘두르는 구조의 운영이 예정돼 있다. 방만 경영의 대표주자였던 현대 유니콘스는 몇 군데 손만 도 상당한 예산을 줄일 수 있을 게 뻔하다. 거기에 네이밍 스폰서까지 '저가에라도' 모집하면, 연간 소요 비용의 상당액을 외부 자금으로 돌릴 수 있다. 땅짚고 헤엄치기에 가까운 것이다. 원활한 통신사업의 필수요건인 유선통신망을 갖고 있는데, 시장가치는 형편없었던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한 뒤, 하나TV 사업으로 투자자를 설득하고, 연간 들어가는 비용은 광고료와 정책자금으로 돌려댔던 뉴브리지의 경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게다가 센테니얼은 리스크도 적다. 겨우 120억 원을 두 차례에 걸쳐 나눠서 낼 뿐이다. 자본금 5000만 원 짜리 소규모 창투사라서, 하다가 수가 영 틀리면, 회사 문을 닫겠다고 협박도 해볼 수 있다. 그건 센테니얼의 마지막 카드다. 국내 프로야구 시장에 대한 일말의 책임도 느낄 이유가 없는 일개 창투사가, 구단 문을 닫겠다며 배를 쨀 때, 가슴 아플 당사자는 KBO이고, 열이 나는 사람은 야구팬들일 뿐이다. 5년 의무 보유기간이 지나기 전에 문제가 생기면 땡깡을 부리면 되고, 문제가 없다면, 제값을 받고 팔면 된다. 한국 야구단의 가격은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할 때 400억 원이 넘었지만, 지금은 불행히도 100억 원도 안 된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고, 3만 달러를 향할 때 가장 성장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스포츠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야구단 값이 사실상 바닥에 이른 상황이라고 봐도 된다. 더욱이 센테니얼로서는 구단을 잘 운영하면 가치가 올라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고, 구단을 잘 못 운영하면 외국계 자본에라도 국내 야구단을 넘길 수 있으며, 판매 시점이 된다면 그 때는 메이저리그 야구단처럼 국내 야구단도 컨소시엄 투자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방법은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일단 창투사에 판 선례까지 있는데, 못할 것이 없다.

문제는 누가 만들었을까? 단연 KBO다. 그들은 무엇보다 시장 질서를 헤쳤다. 게임의 룰을 깬 자들에게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인수 의사를 밝혔고, 계약 직전까지 갔던 KT만 바보로 만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계약까지 못 간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가 '적은 가입금' 때문이라고 한다. 시장에서 팔리는 가격에 판매를 계약했다가, 물건을 넘기기 직전에 도로 뺏고 더 비싼 돈을 내라는 심보는, 기본적으로 상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건 시장이 아니라 깡패 놀음일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KT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합리적인 기업이 투자를 해보겠다고 나서겠나. 애당초, 국내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KBO가 막아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KBO는 현대 문제를 '미봉'했다. 뉴브리지 얘기를 앞에서 했듯, 센테니얼은 '땡깡'을 부려서 단기간에 현대를 팔든, 5년의 기간을 채우고 팔든, 현대를 매각할 것임에 거의 틀림이 없다. 그때의 가격은 60억 원도, 120억 원도 훨씬 넘어서는 가격이 될 것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7개로는 부족하고, 8개를 넘어서기에는 능력이 안되는 대한민국 야구판을 생각하면, 인수기업은 나오게 마련이다. 그 때가 되면, KT가 샀더라면, 그 차액의 일부를 야구단에 투자했을 텐데, 5년 간 센테니얼이 잇속만 차렸다는 비판에 대해 지금의 KBO 결정권자들은 어떤 변명을 해댈까. 5년 뒤면 그들은 모두 지금의 자리를 떠나는 건가?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