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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20 연금술사
Purslane/서재2007. 3. 20. 11:37

  연금술사는 나르키소스의 전설을 알고 있었다.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를 찾았다는 나르키소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결국 호수에 빠져 죽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수선화(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오스카와일드의 이야기는 결말이 달랐다.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의 요정 오레이아스들이 호숫가에왔고, 그들은 호수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왜 울고 있나요?"
  오레이아스들이 물었다.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어요."
  호수가 대답했다.
  "하긴 그렇겠네요. 우리는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에 반해 숲에서 그를 쫓아다녔지만, 사실 그대야말로 그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숲의 요정들이 말했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호수가 물었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놀란 요정들이 반문했다.
  호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게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연금술사는 감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도 소리내어 감탄했다. 상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렇게 서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나가 아닌 두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나르키소스가 호수를 보았더라면 슬프게 애도할 일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이 인상적인 시작의 세페이지만으로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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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