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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서재2007. 7. 1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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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한 한참 후에 원작을 발견했다. 작고 예쁘게 양장되어 나오는 일본 소설에 몇 번 속은 터라 영화 포스터를 보지 않았더라면 집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을 고려하고도 에쿠니 가오리 작품이라는데 호기심이 두 번 동했다. <냉정과 열정사이>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회자되는 데에는 노련함이 있을 것 같았다.

마미야 형제는 궁상맞고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소박하고 엉뚱한 구석은 있지만 아직 소년 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연애는 더더욱 그렇다. 찌질해 보이는 남자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유독 불편하다. 삼십대의 궁상맞은 언니들 이야기는(이제 ‘언니’들도 아니다ㅠㅠ) 재미있는데 남자들이 그러는 모습은 외면하고 싶어진다. 다행히 이 형제는 연애를 제외하고는 귀여운 편이다.

좋아하는 일본적 취향이라면 매체를 불문하고 역시 섬세함 아닐까. 손에 잡힐 듯한 일상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아주 명확하게 내 일상으로 이입된다. 장소와 상황에 대한 물리적인 묘사도 그렇지만 감정적인 부분에 대한 부분은 더 그렇다. 이를테면 아키노부가 비디오 대여점에 들어서는 이런 부분 .

  가게에 들어서자 바로 알아차린 나오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키노부의 다리에서 힘을 빼고, 마음에 힘을 주는 미소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 온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소심한 아키노부의 짝사랑은 이상하게 안타깝지 않다. 두 형제의 평화로운 일상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오히려 이 흥미진진한 사건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할 뿐이다. 사랑에 빠지면 이루어 져야만 할 것 같은 주인공의 의무감 따위는 없다.
술이 잔뜩 취해 돌아온 아키노부는 문 밖에서 동생 테츠노부를 시끄럽게 불러댄다.

  “있는게 당연하잖아. 지금이 도대체 몇 시인 줄 알고.”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자기 방을 나온다. 복도가 싸늘하다. 거실 난방을 틀어 두면 좋았을걸. 테츠노부는 후회했다.
  출퇴근용 검정 코트 차림 그대로, 아키노부는 부엌에 서서 물을 마시고 있다.

짜증내면서도 형을 걱정하고 있다. 이런 두 사람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든다니.  다행히 두 사람은 큰 원을 한바퀴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쩌면 이런 결말이 더 비현실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에 든다. 갇혀 있는 소설 속 공간이라면 그렇게 두 사람만 멈춰서 있어주면 좋겠다. 매일 출근을 하고 저녁엔 야구 스코어를 챙기며 비디오를 빌려보고, 한가하게 살랑대는 바람을 맞으며 거실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맥주를 한잔 하고 잠이 드는 것도. 고백하자마자 거절당하고 신칸센에 올라타 눈물을 훌쩍이는 모습은 어쩐지 어울리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책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