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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8 굿바이 송가, 축하해요 조코비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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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게 뒤지고 있던 송가를 응원하느라 정신이 팔렸던 나는, 조코비치의 다리가 풀리자 환호성을 질렀다. "몰아붙여. 기회야!"라고 외치며. 4세트, 체력이 소진됐을만도 한 때였다. 조코비치는 호주오픈 들어서 늘 3:0 완승만을 거둬왔고, 4세트까지 시합을 이어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송가는, 체력이 바닥나도 정신력만으로라도 뛸 만 했다. 말 그대로 이 순간이 송가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일 것임에 분명했다.

4세트, 그 4세트에서, 내가 응원하던 송가가 마지막 기회를 잡고, 조코비치에게 엄청난 위기가 닥친 바로 그 순간에서, 난 아마도 진짜 테니스를 느낀 것 같다. 쓰러져가는 조코비치는 송가의 서비스가 조금만 날카롭게 들어오면 팔조차 뻗지를 못했다. 송가가 랠리를 길게 이어가려고 하면, 아예 포기해 버렸다. 조코비치는 절반을 버리고, 자신의 서비스 게임에만 모든 것을 걸었다. 190km가 넘는 서브는 마지막 타이브레이크의 순간까지 계속해서 쏟아졌다. 서 있기도 힘들었을 것이 분명할 만큼 수건으로 땀을 연신 닦아내면서, 끊임없이 왼쪽 허벅지를 왼 손으로 마사지해가면서, 조코비치는 거기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켜냈다. 이 때 조코비치가 사용한 가장 큰 무기는 송가로부터 계속해서 얻어 맞았던, 송가의 전매특허 '드롭샷'이었다.

송가도 멈춰 서있지 않았다. 랭킹 3위에, '황제' 페더러를 꺾고 한창 상승세를 타는 이 노련한 신예에게 있는 힘껏 맞섰다. 200km가 넘는 서비스 에이스를 연속으로 꽂아 넣고, 슬램덩크 같은 오버헤드 스매시로 조코비치를 위협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송가의 가장 큰 무기는 그때까지 조코비치로부터 계속해서 얻어 맞았던, 조코비치의 전매특허 '다운더라인'이란 사실이었다.

송가가 패배한 건, 경험부족에서 나온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신력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혹시 조코비치가 졌다면(타이브레이크를 놓쳤다면 십중팔구 그렇게 됐겠지만), 그것은 송가 만큼 버틸 수 없었던 상대적으로 부족한 체력 탓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 초반의 두 젊은 선수는, 경기 내내 발전하면서, 마지막까지 상대의 약점을 파고 들면서, 상대의 장점을 배워나갔다. 어떻게 이렇게 드라마 같은 경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걸까. 송가와 조코비치의 대결은 재미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나의 편견은 여지없이 틀렸다. 오늘의 호주오픈 결승은 단연 최고의 경기 가운데 하나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