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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7 캐비닛
Purslane/서재2007. 4. 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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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스러운 거짓말쟁이가 나타났다. 정교하게 속이지 않아서 좋다. 거짓말 인줄알면서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주고 싶은 능청스러움.


책 <캐비닛> 날개에 날린 작가 소개에는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고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그냥 평범해 보였다. 정규 교육을 받고 글쓰는 재능이 있어보여 몇 년 더 공부했나보다 싶었다. 물론 긴 글을 쓰는 지난한 과정은 생략되어 있겠지만.


그러나 <캐비닛>을 다 읽고 뒤에 붙은 심사평을 대충 넘긴 후 전경린씨와 함께한 수상작가 인터뷰를 보면서 나의 섣부른 판단을 반성했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또 존재하는 구나 싶었다.


도시의 하층민 생활을 경험하고, 막노동판에서 일하다가 25살에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대학에 진학하기도 어려웠겠지만 글쓰는 ‘일’을 하는 2년간 매달 오십만원을 지원해주던 친구가 존재했고, 그러면서 산이나 집에 틀어박혀서 확신도 없이 몇 년씩 글을 쓰는 끔찍한 과정을 자진해서 시작하다니. 움직일 돈이 없어서 앉아서 글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은 대입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에브리데이가 할리데이였지만 암흑같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는 욕심이 별로 없었다. 한달에 팔십 만원정도면 어슬렁거리며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대신 소설을 시작하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위가 헐고, 등짝이 아프고, 편두통과 눈이 아플 정도로 글을 쓰며 부족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에 16km를 걷는다.

그는 말한다. 능청스러운 거짓말은 이런 것이다. 작가는 ‘있는’ 것을 ‘있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있게 만드는 최대의 적은 ‘작가’다. 그는 왜곡시키고 축소시키는 존재이다. 서술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캐비닛>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상피에르의 루저 실바리스처럼 유일한 생존자이며 서술자지만 그래서 진실을 검증할 수 없는 사람이 등장한다. 독자가 진짜 같지만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능청스러운 거짓말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더 풍요로워진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나는 책을 덮고 반성했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