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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04 현대유니콘스와 팬택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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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구단은 공통점이 있다. 경영이 어려워져 주인이 사라진 회사가 구단주라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성적이 괜찮은데도 문을 닫게 생겼다는 것 등이다.

의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야구팬과 게임팬들은 이 때 '비난과 증오의 대상'을 찾는다. 마치 중세유럽의 마녀사냥과도 같은 분위기다. 여기에 스포츠 기자들까지 가세한다. 대개 화살을 한 몸에 받는 것은 협회다. 현대유니콘스 사태에서는 KBO의 무능함이 도마에 올랐고, 팬택EX사태에서는 한국e스포츠협회의 무능함이 도마에 올랐다. 협회 다음으로 욕을 먹는 것은 전임 구단주다. 현대유니콘스는 하이닉스반도체가 욕을 먹었고, 팬택EX는 팬택계열이 욕을 먹었다.

성적이 좋다는 것은 기업으로 보자면 장사를 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사를 잘한 기업이 문을 닫는다? 그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 망했다면, 상품이 불량이라 매출은 높아졌는데 대규모 리콜로 비용이 더 커져 적자가 났다거나, 또는 이익을 남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분식회계여서 투자자가 줄줄이 빠져나가 기업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경우다.

현대유니콘스가 바로 그런 기업이다. 우선 상품이 불량이지는 않았을 테다. 성적도 좋고, 팬도 많다. 야구시합에 대해 리콜을 요구하는 관객은 거의 없다.(간혹 병은 던지지만) 그보다는 둘째에 가깝다. 잘 나가는 줄 알고 덥석 투자를 했더니 엉망이 된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현대그룹이 현대유니콘스를 인수했던 가격은 470억 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그게 매각 때가 돼 살펴보니 80억 원인가로 줄어 있었다. 앉아서 돈이 까인 것이다. 그나마 매각가치를 높이겠다고 주수입원 가운데 하나인 선수 이적을 극단적으로 자제한 결과가 이것이다. 현대가 부실 덩어리 구단을 잘못 물었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투자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이런 기업은 결국 퇴출되게 마련이다.

냉정하게 말해보자. 일단 야구라는 시장은 죽어가는 시장이다. 경쟁자가 너무 많고, 또 강력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를 본다. 그래, 어쩔 수 없는 변화니 할 수 없다. 시장이 변했으면 기업이 변해야지, 시장에게 변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시장이 죽어가니 매출은 점점 줄어든다.

일반적인 기업은 여기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야구단은 그런 걸 안 한다. 아니 한국의 스포츠 구단이란 동네가 그런 걸 하지 않는다. 팬이 줄어들어 입장료와 광고가 줄어든다면 싸게 선수를 키워 비싸게 파는 시스템을 잘 써먹어도 된다. 현대는 이건 잘한다고들 한다.(그나마 발전이다.) 그런데 그걸로는 중과부적이다. 이건 단지 단기 영업기술일 뿐이니까.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잘 나갈때 순이익의 상당 부분을 새 시장을 선도할 제품을 만들기 위한 R&D에 쏟아붓는다. 야구단의 경우 그건 유소년 야구다. 하지만 한국 야구단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 야구에선 '빠따'를 때리고, 어린 선수들은 공부라곤 못한 채 운동 기계로 자라난다. 그러면서 R&D 없이 시장에 흘러나온 스타에만 매달렸다. 시청자는 수준이 높아졌는데 스타의 품질은 예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다. 미국 야구선수들은 책을 읽자는 캠페인에 나와서 '위대한 개츠비'같은 책을 읽으라고 추천한다. 그게 스타다. 음주운전, 폭행, 이혼을 사우나에 목욕가듯 하는 게 스타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건 기업이 아니라 구멍가게가 하는 장사가 된다. 어제는 치킨집이 인기라 치킨집을 차렸다가 내일은 불닭집이 인기라 인테리어 조금 바꿔 불닭집으로 업종전환하는.

그래도 성공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그 구멍가게 시장이다. 팬택EX는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신한은행이나 한화같은 큰 회사들이 눈독을 들인다고 한다. 비용이 적은데 마케팅에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둘 다 모두 젊은 층에게 인기가 없을 회사다. 10대 청소년들이 은행이나 화약회사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기업에게 젊은 층은 '기업의 미래'다. 직원으로 뽑기 위해 그렇고, 장기적으로 고객이라 그렇다. 현대유니콘스를 사서 젊은 층 가운데 100만 명을 '친 신한은행 파'로 만들려면 해마다 200억 원이 깨져야 한다. 하지만 팬택 EX를 사면 50만 명을 사로잡을 수 있는데 적자는 20억만 보면 된다. 게다가 이건 광고비 20억 원으로는 얻을 수 없는 효과다. 그렇다면 선택은 분명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팬택EX도 '지는 시장'의 플레이어라는 데 있다. 구멍가게 규모도 자꾸 줄어들면 장사가 안된다. 불닭집이 찜닭집으로 바뀌는 추세인데 계속 불닭만 고집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기업이 게임단에 뛰어드는 건 이 정도 손해는 감당할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겠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다. 이건 '뽑아먹을 때까지 뽑아먹자'는 비즈니스 논리이지, 시장을 키우려는 움직임은 아닐테니까. 팬택이 유소년 게임선수 육성에 나선 적이 있던가? 아니다. R&D를 하지 않는 것은 이들도 똑같고, 그렇다면 이들도 지속가능성은 없다.

옛날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명확했다. 다만 누구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충격이 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문을 닫을 곳은 문을 닫게 하는 것, 그것이 시장의 비정한 논리이지만, 공공선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