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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1 홍콩 3
토끼머리2008. 4. 1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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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이번이 두번째다. 그리고, 처음 찾았을 때나, 두번째 찾았을 때나, 변함없이 이 도시에서 가장 매력적인 건, 아마도 무질서다. 홍콩 사람들은 그 속에 질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나같은 국외자의 경우에야 도저히 질서라는 걸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작은 섬(그리고 반도의 약간)에는 무수히 많은 거미줄같은 골목길이 있고, 꼬불꼬불 굽어진 도로가 이중 삼중으로 서로의 허리를 끊고 교차하며, 제멋대로 들어선 것 같은 제멋대로의 건물들이 제멋대로 크기인 간판을 달고 제멋대로의 광채를 뿜어낸다. 심지어, 이들이 발 딛고 선 시내 중심가의 상당 부분은 큰 계획 없이 제멋대로 바다를 메워 만들어진 간척지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곳에선 모든 것이 약간씩 과장돼 있다. 간판은 지나치게 크고, 지나치게 화려하며, 지나치게 밝아서 두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고, 백년은 된 것처럼 낡아서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건물의 바로 옆에 천연덕스럽게도 초현대적인 철골 구조의 마천루가 들어서 있기도 하다. 동네 구석구석에서 찾을 수 있는 사원 인근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술집이 즐비하고, 도박을 금지하는 지역이면서도 주말만 되면 700만 시민의 아마도 대부분이 경마 뉴스를 보기 위해 신문을 집어들고 TV를 켠다. 평생 동안 자기 소유의 집 한 칸 얻지 못하는 시민들이 대부분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산해내는 공산물이나 농산물은 거의 없으면서도, 홍콩 사람들은 루이비통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 날마다 장사진을 이루며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하는 줄을 서고, 이 작은 섬에서 타기 위해 페라리와 포르셰를 거침없이 구입한다. 내 공간, 내 가게, 내 건물을 위한 이기적인 개인들의 백년간의 자기과시, 아마도 그런 것들이 쌓이고 모이면 질서가 생겨나고 전체적인 아름다움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세상은 굳이 자를 대고 재단하려고 들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