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머리2007. 12. 12.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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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이었다. 내 대학 시절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교양수업. 지금은 정년퇴임하셨지만,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해양학 교양수업 교수님이셨을 이창복 선생님이 대뜸 "현장수업을 떠납니다"라고 하셨다. 대개의 인문대 교수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현장과 유리된 교육에 매우 익숙하다. 도서관에 진리가 있다고 믿는 그들은 문학을 다루면서도 삶과는 멀리 있었다. 그들과 4년을 보냈던지라, 서산 앞바다에서 수업을 하겠다는 공대 선생님의 제안은 몹시도 두근거렸다. 졸업 직전의 복학생이 오죽하면 야외수업을 간다는 말에 전날 밤잠까지 다 설쳤을까.

그날 그 수업 이후, 서산 앞바다가 달라 보였다. 아니, 이후 만나는 모든 바다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게들이 생존을 위해 모래 속의 아주 조그만 양분을 섭취하고는 다시 모래를 내뱉으며 만들어내는 조그만 모래공들, 천천히 형성되는 사구(dune)와 사구를 망가뜨리는 횟집 및 카페들, 자신들을 밀어낸 횟집과 카페가 싫어 이별이라도 하는 듯 뭍에서 멀어져만 가는 하얀 백사장. 달리기를 하듯 맹렬한 속도로 뻘 위에 서 있는 사람을 휩쓸어가기도 하는 격렬한 조수, 조수의 위협에도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뻘 깊숙히 박아놓은 장대... 무식하기 이루 말할 데 없던 나는 그 곳에서 처음 바다를 만났다. 필사적인 생명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곳.

지금, 그곳이 검게 덮여간다. 5년 전에는 그렇게도 아름다웠던 그곳이. 과연 우리에게 그 수많은 필사적인 삶을 "실수였다"며 한순간에 송두리째 앗아갈 권리라는 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걸까. 미안하다. 정말, 나라도, 대신,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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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는 정말 대단한 작물이었다. 그저 아무 곳에나 심어놓으면 혼자 알아서 자라줬다.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정성을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태풍이 몰려와 옥수수대를 모두 휩쓸어가지만 않도록 기도만 하면 됐다. 더욱이 자라기도 빨리 자랐다. 순식간에 키가 커져 먹을만해지는 이 작물은 2모작이 아니라 3모작, 4모작도 가능했다.

마야, 잉카, 아스텍 등 중남미의 어마어마한 고대 문명은 옥수수 덕분에 가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저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자라나는 옥수수 덕분에 먹고 살 걱정이 사라진 고대 왕국은 남는 시간을 어마어마한 피라밋을 건설하고, 시와 음악을 즐기는 데 사용했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옥수수는 여전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자라는 작물이다. 기후 조건을 심각하게 따지고, 농부의 노동에 비례해 성장해 주는 밀과 쌀 등의 고약한 작물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옥수수는 늘 값이 저렴했고, 흔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옥수수값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 나라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옥수수가 석유를 대신할 바이오연료의 원료로 각광받기 시작해서다. 미국 농지의 가격이 모처럼 폭등하고, 옥수수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바이오연료의 장점은 바이오연료의 원료인 식물이 재배되는 동안 대기중의 온실가스를 흡수함으로써 나중에 연료로 쓰일 때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미리 벌충한다는 데 있다. 화석연료야 꺼내쓴 만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늘릴 뿐이지만, 바이오연료는 자기가 배출할 만큼 또는 그 이상의 온실가스를 스스로의 일생 중에 먹어치운다. 또 하나의 장점은 값이 싸다는 것이었다. 바이오연료를 사용하면 돈도 아끼고, 환경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세계 각국은 수소연료나 태양열연료 등 신에너지 보급 이전 단계로 바이오연료 보급 계획을 앞다퉈 내놓았다.

문제는 그 계획들이었다. 정부가 바이오연료 사용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옥수수, 유채꽃, 사탕수수 등 바이오연료용 작물들의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각국 정부는 생산량과 예측 수요를 따져봤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예측은 틀렸다. 지금 현재의 낮은 가격은 공급이 수요를 훨씬 앞질러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요공급의 균형 상태까지 보급하겠다는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작물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각국 정부의 바이오연료 도입 계획은 수정 단계에 접어든다. 보급 속도를 늦추고, 바이오연료 사용비율을 줄이는 방식으로 수요 증대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때맞춰 경고도 나왔다. 지금처럼 바이오연료용 특화작물에 집중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바이오연료용 작물의 가격이 상승하면, 그 생산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운반비용 등이 또다른 온실가스 배출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성 기름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환경산업은 제3의 산업혁명"이라는 구호를 내놨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10년 이상 전부터 반복됐던 얘기다. 하지만 제3의 산업혁명의 진행 과정을 보면, 말이 자꾸 앞선다. 인센티브는 아직 불투명하고, 기업과 정부의 계획은 정교하지 못해서 실행단계에서 계속 비틀거린다. 그래도 이쪽이 변화의 방향이란 생각은 든다. 이 혁명은 언제쯤 양질전환을 일으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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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이란 말이 있다. '팡세'의 저자인 그 프랑스인 파스칼이 도대체 신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봐야 할까? 파스칼은 무조건 신을 믿(는 척 하)는 것이 올바른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런 거다.
1. 신의 존재를 믿은 사람은 신이 정말 존재할 때 천국에서 영생을 얻게 된다.
2. 신의 존재를 믿은 사람은 신이 정말 존재하지 않을 때 잃을 것이 없다.
3.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은 사람은 신이 정말 존재할 때 얻을 것이 없다.
4.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은 사람은 신이 정말 존재하지 않을 때 잃을 것이 없다.

이렇게 정리를 해놓으면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잭 그리고 수지 웰치 부부가 최근 비즈니스리뷰에 칼럼을 썼다. 파스칼의 도박에 관한 글이지만, 사실 진짜 주제는 기업들이 지구온난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친환경적인 경영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생산라인을 바꿔야 하고, 관리를 철저히 해야하며, 신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비용은 많이 드는데 효과는 미미하다. 환경문제라는 말만 꺼내면 "그거 돈도 안되잖느냐"며 고개를 내젓는 CEO가 세상에는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웰치 부부의 해답은 단순명료하다. 친환경 경영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중요한 문제라고 믿는 것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 이익이란 것이다. 불과 30년 전,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미국 기업의 화두로 떠올랐을 때 미국 공장들은 자신들보다 더 싸게 값을 부르는 멕시코와 아시아의 공장을 무시하고는 "우리 기술이 더 뛰어나니까"라는 근거없는 망상 속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일자리도 함께 사라졌다.

미국에 살고 있지 않아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웰치 부부는 그동안 환경론자들의 지구온난화 주장에 대해 '생각보다 과장돼 있을 수 있고,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견해를 보여왔던 모양이다. 환경론자들의 비난이 꽤 거셌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환경문제는 캠페인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전지구적으로 거대한 규모로 일어나야 효과를 볼텐데, 거기에 가장 어울리는 효율적인 시스템은 시장경제 아래에 있는 기업들이 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웰치 부부의 얘기는 꽤나 합리적이고 설득적이다.

비즈니스위크 원문은 유료회원이 아니라 그런지 못 구하겠고, 발췌문은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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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는 모두가 '쇼'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터미네이터'가 공화당 간판을 달고 2003년 민주당의 텃밭인 캘리포니아에서 정치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민주당의 위기와 캘리포니아의 자유주의 전통의 위기에 몸서리를 쳤다. 캘리포니아는 '기회의 땅 미국'의 상징과 같았다. 모두에게 기회가 평등하고, 쓸데없는 권위와 허례허식을 경멸하는 그 전통 말이다. 물론 아놀드는 이민자였고, 평등한 기회를 이용해 미국 사회 주류로 진입한 인물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보다는 그의 막대한 재산과 어눌한 액센트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던 그가 집권하자마자 친환경정책을 들고 나왔다. 역시 비웃음을 사기 딱 좋았다. 정치적 '쇼'로만 생각했다. 심지어 그는 2004년에는 GM이 만들어내는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비효율적이고 반환경적인 자동차'로 꼽히는 '허머 H2'(미군용 '험비' 트럭의 민간버전)를 수소자동차로 개량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남성적인 차를 타도 충분히 친환경적일 수 있다"면서. 영화배우 아놀드가 만들어낸 이벤트, 그때만 해도 그들은 그렇게 '터미네이터식 정치'를 비판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25% 이상 의무적으로 감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버렸다.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지만, 터미네이터는 이를 귓등으로 흘려 듣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고, 대신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와 기후변화 관련 정책 협의에 협력하기로 손을 잡았다. 그에게는 이념이란 게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공화당원들은 배신감마저 느껴야 했다.

환경 정책 이외에서도 이런 점은 많이 눈에 띄었다. 그는 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하는 공화당원인 동시에,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보건복지 예산에 주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공화당원이다. 이는 모두 전통적인 민주당의 가치들이다. "난 공화당을 대표해 주지사가 된 것이 아니다. 난 나를 뽑아준 유권자를 대표해 주지사가 됐다." 이런 말을 일삼는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의 골칫거리다. 하지만 동시에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겐 축복이다. 미래에서 날아와 존 코너를 지켜주는 터미네이터처럼, 아놀드의 행보는 동시대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결국 그는 '민주당의 텃밭'에서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더 많은 차를 만들고, 더 많이 차를 타도 좋다. 다만 친환경차를 타고, 기업은 연료효율적인 차를 만들어야 한다."

아놀드의 환경정책 이념에는 사실 문제가 좀 있다. 기술 발전에 대한 그의 맹신에 가까운, 어쩌면 표를 의식한 듯한 신념은 앨 고어같은 사람들의 '적게 쓰고 덜 편리하게 사는' 환경정책 이념과는 크게 어긋난다. 그리고 아놀드보다는 앨 고어의 정책이 사실 더 친환경적이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앨 고어의 환경다큐멘터리 영화)은 정말 불편하다. 정통 민주당원의 눈에 아놀드는 그저 무임승차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와이어드 매거진은 '2007 Rave Award' 수상자로 정치인 가운데 유일하게 그를 뽑았다. 말 그대로, 미국인들은 지금 터미네이터의 쇼에 열광(rave)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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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년 안에 지구가 망할 것처럼 과학자들과 환경론자들이 떠들어대도, 정작 그 환경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수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은 '녹색의 비즈니스'라는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 가운데 한 포스팅이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무심한 가장 큰 이유는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토마스 프리드먼의 논리처럼 환경 문제란 다음 와 현재 세대의 갈등이기 때문에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설명도 이유 가운데 하나지만, 이 글이 내세우는 논리는 더 끔찍하다. 그러니까, 지금 산업화가 잘 돼 온실가스도 가장 많이 내뿜으면서, 정작 선진국으로서의 과실은 다 따 먹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환경이 더 나아지는 걸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온대 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변해 가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곡물 수확량은 현재보다 계속 늘어날 것이고, 추운 북유럽도 더 긴 여름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나 중국, 서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수혜를 입게 될 예정이며, 자연스레 한국 또한 아열대 기후의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기후 증가로 인해 우리가 손해를 본 것은 말라리아 발병 정도였고, 이익을 본 것은 더 긴 여름과 그로 인해 가능해지는 난방비 절감, 곡물 수확량 증가, 관광산업에 대한 혜택 등이었다. 뚜렷한 4계절이 사라졌다고 불평할 수야 있겠지만, 추운 겨울이 많이 줄어든 것은 확실히 활동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한국은 황사 피해를 점점 더 보고 있긴 하지만, 황사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정작 끔찍한 건 피해를 보는 국가들 가운데 대부분은 산업화에도 뒤떨어졌고, 경제 수준도 몹시 낙후된 아프리카 국가들이라는 것. 이런 국가들은 사막화가 늘어나면서 기아가 더욱 심해지고,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생산해내는 나라들은 기후변화의 혜택을 (단기적으로) 보고, 온실가스를 적게 생산하는 지리적 약자들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가장 먼저 본다. 세상은 지나치게 불공평하다. 도대체 이런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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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graph by Dwight Eschliman for The New York Times ------------------- Carin Goldberg (a homage to Rachel Carson)

"일자리, 기온 그리고 테러. 오늘날 미국인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세가지 이슈."

이번주 뉴욕타임즈의 타임즈매거진 커버스토리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긴 칼럼, '녹색의 힘'이었다. 평소같으면야 긴 칼럼을 읽기가 골치아파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넘어가곤 하지만 이번 커버스토리에는 눈길이 가는 구절이 굉장히 많다.

우선 일자리. 이에 관해 얼마 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속가능경영에 관해 대화하던 중이었는데, 불현듯 함께 얘기를 나누던 분이 "지속가능경영 또는 환경경영이 제2의 산업혁명을 가져올지 모른다"라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별 뜻 없이 넘겼지만, 이 칼럼을 읽고 있자니 생그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9/11과 카트리나를 겪은 미국인들이 변하기 시작하면 산업 자체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프리드먼은 미국이 그동안 철도 대신 도로를 깔고,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의 휘발유를 팔아 온 국민에게 자동차와 쾌적한 교외 거주환경, 낮은 인구밀도를 선물했다고 말한다. 이런 미국의 모델은 전 세계가 선망한 모델이었다. 그러니 미국이 친환경적인 산업을 개발해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들어낸다면 세계는 그 또한 모델로 받아들이고 따라올 것이라는 얘기다.

기온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세계 곳곳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가 쏟아져 나온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정말로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반대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경고론자에게 돌을 던진다. "당신들의 지구 온난화 경고는 근거가 없다"면서.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란 건 있게 마련이다. 적어도, 더 이상 석유에 기반한 문명이 지속되기 힘들고, 더 이상 자원 착취적인 발전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게다가 세계가 칭송하는 중국이 미국식으로 산업화될 경우 생길 환경재앙이란 건 중국인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황사를 들이마시는 한국인들은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테러라는 이슈는 이런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미국이 저지르는 양면적인 행위에 관한 지적이다. 미국인들은 달러를 벌어서 군대를 유지하고, 테러와 전쟁을 벌이도록 위임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석유를 사들이면서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이슬람 종파 일부의 부를 축적해 그들에게 무장을 하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다. 한 때, 잠시나마 풍요롭고 행복했던 세계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름 때문에 분쟁을 벌이고, 에너지 쇄국에 나섰으며, 전쟁도 불사하기 시작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친환경산업에 투자하면 된다. 그런데 왜 하지 못하는 걸까? 프리드먼의 분석은 굉장히 간단하다. 계급갈등은 적이 명확하고 아군도 명확하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갈등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갈등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언젠가 태어날 테고,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문제는 그 때가 되면 이미 모든 게 늦어버린다는 데 있다.

좋은 칼럼에 감탄하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미국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대체에너지 개발과 에너지효율이 높은 상품 생산 등의 친환경산업은 이미 앞선 기업들의 트렌드가 됐다. 그런데 지금 한국기업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 일본의 도요타는 세계 1위 자동차회사가 아니었지만, 가장 먼저 하이브리드카를 상용화한 회사가 됐다. 그게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아닐까? 소니와 필립스와 인텔은 환경기준을 맞추지 못한 납품업체에게서는 부품을 공급받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그 연합체에 포함돼 있지 못하다. 과연 한국은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가진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갈등만 해결하면 된다고 순진하게 믿고 있는 건 아닐까?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