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갔었다. 죽기 전에 다시 못볼지도 모른다는 비장한 생각으로 최대한 무겁게 걸었다. 벨라스케스의 거대한 작품 앞에서 발을 떼기 어려웠다. 내가 이걸 또 언제 보겠냐. 진짜 크다. 아, 작품도 많아. 아직도 못본 게 산더미인데, 언제 다보지. 이 동네 사람들은 좋겠다. 아무때나 와서 봐도 되고. 아, 이 작가는 잘모르겠는데 공부 좀 하고 올걸.
그 와중에 카라바조의 작품이 있다길래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작품의 대부분은 이탈리아에 있지만, 프라도 미술관에 한점이 걸려 있었다. 마지막 작품으로 유명한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과 같은 모티브의 <다윗과 골리앗>이었다.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한참 쳐다보다가 돌아섰다. 드디어 봤다.
돌아와서 카라바조를 연구한 책을 한권 샀다. 유명한 몇몇 작품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부분이 궁금했다. <다윗과 골리앗>도 미술관에서 처음 보았다. 카라바조는 말년(이라기엔 너무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을 내내 사건사고와 함께 했기 때문에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지 않았는데도 내내 흥미진진하다.
책의 말미에 드디어 그 작품이 실렸다. 작품 밑에 괄호를 치고 이렇게 적혀있다. '카라바조의 진품인지는 불확실함'. 아아. 추종자들이 그림 모사품일 수도 있다니. 나의 뿌듯함은 어쩌란 말인가. 언젠가 이탈리아에 가서 잔뜩 보고 오리라.
다윗과 골리앗, 1598-99, 캔버스에 유채, 110*91cm, Museo del Prado, Madr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