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lane/길모퉁이2007. 10. 24. 11:07

주말을 기해 감기 몸살에 시달렸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진다고 했던가. 이틀을 누워있으면서도 쉬는게 아니었다. 허니문 플래너와 마지막 미팅 일정을 잡아야 했고(잠결에 엉뚱한 날짜로 잡는 바람에 연기됐다), 일주일 후에 배송되기로 한 가구도 확인해야 했다. 잠들만하면 오는 전화를 받느라 짜증이 났지만 어쩌랴.

금요일에 감기약을 먹고 누웠으나, 토요일 아침에 전혀 차도가 없었다.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오라는 엄마의 말에 끙끙 앓느니 그게 나을 것 같아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병원에 갔다. 아파트 문을 나서자마자 콧속으로 들어가는 찬바람에 몸 속까지 차가워지는 것 같아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고 걸었다.

상가에 있는 유내과는 여의사와 간호원 한명이 있는 작은 병원이다. 이곳 의사는 의사 선생님이라기보다 의사 언니가 어울린다. ‘여기가 아파요, 저기가 아파요’ 라고 말을 하면 ‘아, 그러시군요’라는 감탄사와 함께 조곤조곤하게 설명해주어서 어쩐지 진찰만 받고 나오기 아쉽다.

일년에 한두번이지만 감기가 오는 것은 긴장하거나 과도한 스트레스가 동반된 탓이다. 그냥 춥기만 하다고 몸살이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늘 그맘 때면 이런저런 고민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진찰을 받다보면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막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자주 봐야 친해지는 법. 일년에 고작 한두번 최악의 컨디션에 부스스한 몰골로 병원에 찾아가는데다 삼일치 약한번 먹고 똑 떨어지는 감기로 의사 언니와 친해지기는 글렀다. 이번엔 진찰을 하다가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내가 4년째 늘 같은 시기에 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아온다며 웃었다. 스트레스고 뭐고 찬바람에 약하긴 약한 모양이다.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말했다. 내년 이맘땐 아파도 이 병원까지 못 올텐데... 의외의 장소에서 이사가는 것이 실감났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