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7.06.03 [밀양] 고마워요 살아줘서 (4)
  2. 2007.05.07 V.R. Space (4)
  3. 2007.05.02 [굿 셰퍼드]의 애국심 (2)
  4. 2007.04.11 엄마는 어디에 (3)
  5. 2007.03.26 <Little Miss Sunshine>불완전한 가족의 재발견 (2)
  6. 2007.03.23 <300>을 위한 변명 (3)
  7. 2007.02.23 This is Purslane (1)
  8. 2007.02.22 영화볼 자유
  9. 2007.02.21 사랑해?
  10. 2007.02.21 This is Bobby Long
Purslane/극장대기실2007. 6. 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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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 구성이 지나치게 친절할 때부터 좀 이상했다. 숨바꼭질하는 아들을 찾던 흔들리는 카메라나 범행이 일어나기도 전에 범인을 알려주는 상황들은 이 영화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없음을 보여준다.

<밀양>은 신애의 영화이지만 늘 카메라 포커스 한 발짝 옆에 서 있는 종찬의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어째서일까. 우리는 처음에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이해하려 노력했다. 남편을 잃고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동네에 내려와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그녀의 고단함에 공감하려 했다.

그러나 나도 교회에서 아픈 자매님의 손을 잡아주고, 절규하는 울음이 안타까워 머리에 손을 얹어주던 지인들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된다. 누가 그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강가에 버려진 아들의 시신을 앞에서 충격에 다리를 휘청거리고 남편과 자식을 죽인 며느리라고 손가락질 받던 당신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을 어떻게 감히 할 수 있겠는가.

신애는 유난히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은 채 혼자 서 있는 장면이 많다. 유일하게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이 사라지고 그녀는 누구의 손도 잡으려 하지 않는다. 가녀린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위태위태하게 서서 어떻게든 혼자 이겨보려는 모습이 애처롭다.

절망의 끝에서 그녀가 손을 내민 곳은 신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하고 하나님을 만남으로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활짝 웃으며 ‘저 이제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싱크대에 서서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목이 메인다. 신은 자신이 한 것처럼 죄인을 용서하라 하셨지만 왜 남편과 아들을 처참하게 데려가셨는지는 설명해 주지 않으신다.

대신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곳에 서있는 종찬이 서 있는다. 신애가 죽던 원작 소설의 결말과 달리 영화에 나타나는 그의 존재는 기대가 막연한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신애가 유괴범의 전화를 받고 손 뻗을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나 결정적 순간에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사건을 제외하면 밀양에 들어설 때부터 내내 신애를 돕는 사람이다.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신애 앞에 거울을 들고 서 있던 그 남자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살아줘서 고맙다고.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바라지 않던 그녀가 살려달라고 말하고, 거울을 들어주겠다며 다가오는 종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는 그녀가 변했다고 믿었다. 어설픈 희망을 품지 말라고 영화 내내 누누이 보았건만 먹먹한 마음에 희망이라도 가지지 않는다면 나조차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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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밀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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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낮에 영화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에서
    밀양을 잠깐 보았는데요, 그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눈물이 많은 편이라 극장에서 혼자 울까봐 선뜻 못나서고 있습니다.
    비스토리님도 우셨나요? 우는 사람은 많은지요?

    2007.06.03 19:17 [ ADDR : EDIT/ DEL : REPLY ]
  2. 카메라 앞에서 우는 사람을 두고 무덤덤하기는 쉽지않잖아요. 그런데도 감히 아픔을 공감한다고 하기 힘들어요. 눈물이 난다기 보다는 다른 휴유증이 있을지 몰라요. ^^

    2007.06.04 08: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유난히 이 영화를 보고서는 '슬프다' '인생이 뭔지 생각하게 됐다' 이런 평이 많네... 전도연에 대한 얘기는 의외로 적고... 따지고 보면 그래서 훌륭한 연기였던 것 같다. 배우의 영화가 아니라, 좋은 영화에 잘 어울리는 배우였던 거지.

    2007.06.05 09: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전체 구조가 훌륭하다는 생각은 안드는 대신 장면을 묘사하는 세세한 면이 가슴을 후비던데.. 기억이 떠오른달까..

    2007.06.05 16: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Purslane/극장대기실2007. 5. 7. 21:57
012

요즘 학술정보관에 있는 V.R. Space에 매일 출근(?)중이다. DVD를 꽂고 볼 수 있는 컴퓨터가 설치된 곳은 많지만 이렇게 제대로 TV를 갖추고 편안하게 앉아서 볼수 있는 곳은 여기 뿐이다. 4개의 좌석이 설치되어 있고 파티션으로 살짝 가려진다. 쇼파에는 2명씩 앉아서 헤드폰을 끼고 영화를 볼 수 있다.

가져온 DVD가 있다면 좌석만 예약하고, 아니면 학교에 있는 DVD도 대여가 가능하다. 아침 일찍 가면 사람이 거의 없어서 조용한데다가 대체로 나처럼 혼자 와서 보는 경우가 많다. 12시쯤 영화가 끝나고 일어날때가 되면 가끔 커플도 보인다.

조용하고 쾌적한 시설도 마음에 들지만 처음에는 무엇보다 의자에 감동받았다. 우퍼가 내장된 매트리스여서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을 볼때는 배에 탄 것처럼 멀미 할 뻔했다. 파도가 칠때마다 엉덩이와 등을 쉴새없이 둥둥둥둥 두드려주는 바람에 나중에는 안마의자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즐기게 된다. 쩝.

이제 졸업하면 이런 즐거움도 사라질까 싶어 부지런히 조조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출근 중이다. 영화가 많이 구비되어 있지 않아서 아쉽지만 어차피 못본 영화만 골라서 보아도 다 못볼 것같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보면 또 멀미가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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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DV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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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흐흐 자랑쟁이야 자랑쟁이. 부럽다...

    2007.05.08 10: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너무 좋아. 졸업하기 아까워.ㅋㅋ

    2007.05.09 08: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 논문은 다 쓴 겨?
    얼굴 함 뵈줘봐봐, 논문 쓰느라 얼마나 삭았나 확인하게.^^

    2007.05.09 08:09 [ ADDR : EDIT/ DEL : REPLY ]
  4. ㅋㅋ V.R.Space가 아무리 좋아도 졸업은 해야죠. 배부른 소리 함 해봤어요. 삭기도 하고 붓기도 했어요. 저도 좋은 소식 들고 찾아뵐게요~

    2007.05.09 20: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Purslane/극장대기실2007. 5. 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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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국심이 늘 신기하다. 종교적 믿음과 애국심이 동격이 되는 사람들. God 앞에 the를 붙이지 않는 것처럼 CIA 앞에도 the를 붙이지 않는다는 말은 얼핏 오만함으로 보인다. 그들에겐 그것 자체가 이념이다.

윌슨은 늘 정직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어린 윌슨에게 신뢰를 쌓지 못하면 친구들을 얻을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절대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한다.

엘리트 학생이었던 윌슨은 미국 최고의 비밀결사단체 해골단 가입하게 된다. 모임의 연대감은 대단하다. 해골단의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정기 집회를 하는 모습은 따뜻한 파티를 연상시킨다. 단체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결속력을 가진 선후배와 동료들의 믿음을 가지기 충분하다.

그러나 윌슨의 부인 클로버는 늘 해골단이 신보다 먼저 호명된다고 빈정거린다. 그들은 충성을 맹세한 후에 신에게 기도한다. 미국인의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은 미국의 국가 정체성에 중요한 요소이다. 그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은 아일랜드와 폴란드인들만큼이나 높다. 미국인은 압도적으로 하나님과 국가 모두에 헌신한다. 하나님과 CIA, 해골단을 그렇게 연결된다.

믿음과 신뢰로 유지되는 비밀결사단체는 CIA와 유사하다. CIA에서 일하라는 제의를 하러온 로버트 드 니로는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유태인과 흑인, 일부 가톨릭은 제외된다는 농담을 덧붙인다. 진짜 미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은 앵글로-개신교도뿐이기 때문이다. 애국심은 아무에게서나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

영화의 중간쯤 팔미의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윌슨에게 "이탈리아인에겐 가족과 신앙, 아일랜드 인에겐 고국, 유태인에겐 전통, 심지어 흑인에게도 음악이 있다. 우리에겐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 있다. 나머지는 그저 방문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CIA와 해골단이 부르짓던 애국심 고취는 우파적이고 군사적이며 남성, 백인, 앵글로 그리고 압제적인 것이다. 군사적 특성을 가지는 애국심은 적이 사라지면서 대상을 잃었다. 미국인들은 신기하게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국가적 자부심을 높게 가지고 있다. 그들이 표현하는 자부심은 온건하게 보이는 유럽인들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이다.

미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타자가 사라지자 자유적이고 민주적인 미국의 신조가 흔들렸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들은 콩고에서 결혼할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흑인이다. 아버지는 당황한다. 그녀가 얼마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윌슨은 혼란스럽다. 그리고 이내 그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정리한다.

절규하는 아들 앞에서 더 이상 그런 식의 정리는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 아들은 초국가적 정체성을 가지는 세대이다. 윌슨으로 대변되는 미국에게 이상적인 적은 이념적으로 적대적으로 인종적, 민족적으로 달랐다. 그들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제기하는 대상이었다. 이제 그런 정체성은 모호해졌다. 그러므로 에드워드 주니어가 흑인 여성과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윌슨이 근무하는 CIA는 007처럼 멋지지 않다. 정부의 권력이 응축된 집단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냥 소시민에 가깝다. 집을 나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양옆에 서 있는 다른 남자들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시를 쓰던 소년은 평생 무뚝뚝한 표정으로 살아왔지만 어디에서부턴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CIA 건물을 빠져나가는 윌슨의 뒷모습은 친구도 조국도 없이 혼자가 되는 최대의 두려움을 현실로 맞닥뜨리기 직전이다. 어떤 애국심이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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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발표회가 끝나고 영화를 장장 세시간 정도 보고 있자니 쪼끔만 본드처럼 멋졌으면 머리가 덜 피곤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가끔 총이라도 쏴줬으면 무표정한 맷데이먼을 원망하지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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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논문 발표는 물론(!) 성황리에 무사히 끝났겠지요? 그런데 영화 선택은 참...무슨 자학 증세도 아니고, 논문발표 뒷풀이로 볼만한 영화는 아니었던 것같은데 말입니다.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윌슨에게 유일하게 비교적 신뢰할만한 거래를 할 수 있는 상대로 부각되는 것이 다름 아닌 냉전 시대의 '적'이라는 것도 특기할만한 포인트였던 듯. ^^

    2007.05.03 16:58 [ ADDR : EDIT/ DEL : REPLY ]
  2. 자학맞아요. ㅠㅠ 더블타겟이 일주일만 빨리 개봉했었어도 좋았을 것을.. 걱정해주신 덕에 성황리(?)에 잘 끝났습니다. 어제 laopassna님과 점심먹으면서 언제 술들고 찾아뵐까 고민했죠. 서울대에서 좋은 소식이 들리더군요.ㅎㅎ

    2007.05.03 23: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Purslane/극장대기실2007. 4. 11. 12:04

이번 주 영화 잡지가 배달되어 왔다. 일단 봉투를 뜯고 표지를 슬쩍 살핀 후 휘리릭 넘겨본다.
첫 광고는 박신양과 요즘 한국의 다코타 패닝이라고 불리는 서신애양의 영화 <눈부신 날에>. 나쁜 아빠와 이쁜 딸이라니 아빠가 속 좀 썩이는 모양이다. 날건달이란다. 아 식상해. 두 번째 광고는 <아들>. 이번엔 아버지와 아들이다. 이 아빠도 교도소에 있다가 하루 외출을 나왔단다. 15년 만에 아들을 만났으니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없다. 감독과 각본이 장진이지만 감동을 만들려는 게 광고 컨셉인지 영화 내용인지 아직 알 수 없다.

다음은 기다리던 대니 보일의 <선샤인>. 이건 봐야지. 그러나 지면 광고는 시뻘게서 촌스럽다. 감독 이름이 없었으면 0.5초만에 넘겼을 것이다. 몇 장 넘기니 또 아빠랑 동구가 나란히 턱을 괴고 있는 <날아라 허동구> 광고가 보인다. <말아톤>과 <아이엠샘>을 카피에 넣은 걸 보니 동구는 좀 모자란 녀석인가보다. 아버지가 고생이 많으시겠다.

바야흐로 따땃한 가족의 달이 코앞이다. "아빠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거침없이 외치는 철딱서니 없는 딸내미에게 아빠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보여주는 것 정도로는 모자란가. 그래도 <우아한 세계>의 인구네 가족은 황진미씨의 말마따나 이건 가정이 깨진 것도 아니고, 안 깨진 것도 아니다만 앞으로 나올 영화들엔 어디에도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골치아픈 남편들을 뒤로 하고 단체로 가출이라도 하셨나보다.

최근 한국 영화는 가정과 직장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열정을 쏟던 거대한 아버지가 소시민으로 전락하고, 가정에서도 자리를 찾지 못하는 소외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아버지들은 어느새 엄마도 밀어내고 가족의 중심에서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잘 될 리가 없다. 그들에게 가족은 조건이다. 이상향을 설정하고 열심히 앞으로 가지만 가족 외적인 질서는 여전히 마초적이고 아버지는 돌진하고 부딪히고 다시 깨진다.(조폭은 정말 그럴듯한 설정이다)

자기 연민에 빠진 남성성을 회복하겠다고 역경을 딛고 일어설 힘을 혈연에서 찾는 이야기가 지겹다.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무너져 가는 현대적 가족의 위기를 운운하며 우리 식구 오순도순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양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다가 최후의 방어선인양 혈연을 붙잡는 것도 불편하다. 언제까지 그 무력함을 받아주고 이해해 달라고 칭얼거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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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마련인 것이 맞는 게, 난 이런 걸 보면서 '엄마는 어디에'같은 생각은 못 하게 되더라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일세.

    2007.04.11 14: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왜 영화에 엄마가 없나 생각해봤는데, 엄마는 늘 '거기 있는 존재'로서 가정을 유지하는 핵심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깰 준비가 안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예 처음부터 없으면 모르겠는데, 멀쩡하게 생겨먹은,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정말 힘들어서 엄마 노릇 못 해먹겠다, 나 안 할란다'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여주기를 정말 싫어한다는 거. 엄마는 아예 없거나, 있으면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거나, 둘 중의 하나. 엄마 노릇 제대로 하는 엄마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면 남자들이 할 일이 별로 없지요. 엄마의 부재로 인해 남자들이 가정을 어떻게 좀 꾸려보겠다고 좌충우돌하는 걸로 이야기 꾸려내는 모양새...생각해보니 좀 딱하네.^^;

    2007.04.12 00:05 [ ADDR : EDIT/ DEL : REPLY ]
  3. 윗 분들은 '엄마'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나는 생물학적 성별이 그래서 그런지, "그들에게 가족은 조건이다."는 말이 와 닿는구먼... 왜 아빠들이 가족을 원래부터 있는 '당연한 조건'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겠어.

    2007.04.12 12:04 [ ADDR : EDIT/ DEL : REPLY ]

Purslane/극장대기실2007. 3. 2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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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미스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 2006)은 코르셋처럼 강력한 규범들의 틈새를 보여준다. 완전한 실패자들의 모임처럼 보이는 이 가족의 여행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어정쩡하게 느껴지는 간극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며 서 있는 모습 때문이다. 이 어설퍼보이는 사람들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는 동안 그들은 대견하게도 견고해보이던 사회의 규범들의 틈새에 잘 자리를 잡는다.

이들은 정상적인 가족관계가 무엇인지 까먹은 모양이다. 모양은 그럴 듯 했다. 아빠, 엄마, 비행기조종사가 되고 싶은 오빠 드웨인, 어린이 미인대회 준우승을 한 귀여운 딸 올리브. 여기에 헤로인을 하다가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고, 자살 미수로 막 퇴원한 프랭크 삼촌이 합류하면서 어쩐지 이상한 가족에 실패자 기운의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이들을 보면 따뜻하게 보듬으며 서로 기운을 북돋워주는 관계가 실제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항공학교에 보내달라며 묵언수행으로 시위 중인 드웨인은 프랭크에게 ‘Welcome to Hell'이란 말로 환영한다.

그러나 그들을 걱정하는 것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관객이다. 우리는 따뜻한 가족이라는 허구의 실체를 그리고 어떻게 저런 가족이 유지될 수 있을까 우려한다. 아버지는 실패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고, 엄마는 피로에 젖어있고, 자동차 뿐만 아니라 이 가족에게는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없어 보인다. 정작 이 독립적인 가족 구성원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과 그것을 향한 노력은 각자 대단하다. 어느 누구도 서로를 놓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개인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공동체에 대한 동경을 만들어간다. 현대의 가족은 계속 존속하지만 점점 허약해지고 있으며, 이 ‘허약성의 정상화’가 가족의 미래이다. <리틀 미스 선샤인>의 구성원들은 이것을 정확히 드러낸다. 가족은 의존과 독립의 단계를 반복해서 거치면서 자란다. 전통적 가족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면서 이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끝까지 어설픈 화해를 시도하지 않는 올리브 가족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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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약하지만 위기상황엔 또 뭉치게 되는게 가족아닐까요.
    리틀 미스 선샤인 참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2007.04.11 00: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귀여운 영화죠. ^^

    2007.04.11 13: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Purslane/극장대기실2007. 3. 2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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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는 객관적 현실의 증거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대신 전쟁시詩의 역할을 하는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쟁 사진은 전사들이 지속해야만 하는 일들을 독려하는 사명, 그런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최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버지의 깃발>의 모티브가 된 조 로젠탈의 사진 역시 그런 지점이 있었다. 전쟁의 위해 의도된 사진들은 역할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극도로 아름답게 만든 전쟁 영화 한편을 보고 열광했으며, 그 바르지 못한 묘사의 불편함을 애써 잊고 즐기려 했다. 마음 한편에서는 창피했지만 그것이 영화 <300>이 가진 미덕이다. 이 영화는 수세기동안 많은 예술작품을 통해 비난 받으면서도 재생산되어온 잔인한 전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것을 그동안 보아왔던 아름다우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 한편으로 보아야 한다. 프랭크 밀러가 묘사하고 싶었던 숭고함을 담은 한편의 그림. 거기서 과장된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나 역사적 올바름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것을 전쟁에 대한 미화로 여기고 끈질기게 감독을 따라다니며 현재 미국과 비교하며 질문을 던지는 것은 기대했던 대답을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300>을 즐겁게 감상하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를 애써 무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300>을 재밌게 본 변명이다.

<300>은 레오니다스 왕의 수련으로 시작된다. 어린 레오니다스는 가녀린 몸을 지녔지만 눈빛은 야수의 그것이다. 그는 자기 몸집보다 큰 방패를 어루만지며 전사로 자란다. 이 의젓한 소년은 강인한 왕으로 성장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용맹하지만, 자상한 남편이기도 하다. 이 완벽한 남자의 패기가 페르시아 대사를 구덩이로 기세좋게 처넣으면서 전쟁을 선포한다.

아, 전쟁을 시작 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에도 아시아 놈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레오니다스 왕의 결단은 용감하기는 하나, 온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300명의 전사 역시 모두 역사에 남을 만한 전투를 벌인 후 전사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고 머리대신 몸을 쓰겠다는 선언에 그것에 기꺼이 동참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길을 떠난 300명의 전사들은 페르시아 군을 향해 가던 중 죽어가는 소년을 만난다. 이미 쑥대밭이 된 마을은 불타고 있고, 주민들은 커다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스파르타인들은 ‘신에겐 자비심도 없는가’라는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며 더욱 비장한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후광이 비치는 나무에 끔찍하게 사람을 매단 이모탈과 돌과 페르시아인 시체를 적당히 반죽해 벽을 만드는 스파르타군과 무엇이 다른가. 라고 말하면 안된다.

그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로 훈련받은 스파르타군이다. 초콜릿 바같은 복근을 자랑하며 단단한 방패와 새빨간 망토를 휘날리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파르타군이다. 후에 스파르타군과 맞붙는 이모탈의 가면이 벗겨지면 레오니다스가 돌려보낸 곱사등이 에피알테스보다도 추한 얼굴을 하고 있다. 괴물처럼 생긴 에피알테스가 군에 합류하겠다고 따라온 것을 돌려보내고, 그가 크세노크세스에게 뒷길을 알려주는 첩자 노릇을 하는 모습을 보며 못생기고 탐욕스러운 놈이라고 욕해도 안된다.

300명의 완벽한 대열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균열이 필요하고 그런 역할을 해줄 괴물같이 생긴. 그래서 사람인지 괴물인지 잘 모르겠는 인물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레오니다스 왕이 초콜릿 바는커녕 크런치 바 같이 생겨서 대열에 합류할 수는 없지 않냐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는데 못알아 들은 것뿐이다. 그는 애초에 스타르타군이 될 수 없는 외모를 타고 났다. 그러니까 여기서 추한 외모에 탐욕스럽기까지 하다고 이분하거나, 스파르타군이 자기들끼리 뭉쳐서 잘난척한다고 해도 안된다.

그들의 용맹스러움은 똑같은 짓을 해도 페르시아군의 잔인함과는 다르다.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는 페르시아인들을 떨어진 감 줍듯이서 창으로 푹푹 찔러서 죽이고, 동시에 사과를 우적우적 먹으며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들에겐 일상이다. 전사로 자란 그들에게 페르시아인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전투가 시작될 뜨거운 문에 도착하자마자 수만의 페르시아인을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웃는 것은 두려움은 커녕 제대로 싸울 상대가 기다리고 있음을 기뻐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한편의 서사시이다. 고대의 구술 서사시이다. 실제로 <300>은 누군가의 목소리로 진행되며, 그것이 마지막에 떠난 댈리오스인지는 그 보다 후대의 떠돌이 시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조들이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는지를 적당한 과장을 섞어서 모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호메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스파르타인들의 전투엔 제우스가 폭풍으로 도와줬다고 말하면서 눈앞에서 전투가 펼쳐지는 것처럼 묘사해주는 것이다. 일리아스같은 서사시를 구술로 들으면 지루할 정도로 상세히 묘사되는 친척에 친구에 형제의 전투 장면들로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죽어갔는지 듣느라 며칠 밤을 새고도 남는다. 그래도 우리네 조상이야기이니 흥미진진할 것이다. 눈먼 장님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지팡이를 치면서 일리아스를 읊어주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뭐, 호메로스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는지는 정확히 밝혀진바 없다)

구술로 전해지는 서사시의 형식을 취하면서 <300>은 역사적 사실성을 보증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난다. 증거나 기록의 역할에서 발을 뺀다. 이는 어떤 과장된 묘사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로서 훌륭하게 작동한다. 일당 백으로 싸우는 첫 번째 전투씬에서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되는 움직임은 진짜 서사시를 그리는 듯하다. 철저하게 스파르타인의 편에 서서 우리네 조상들이 얼마나 멋진 전사들이었는가를 생생하게 묘사해주는 역할에 충실하였고 그것은 성공했다. 당신이 스파르타의 후예가 아니라면 불편해도 참아라. 이것은 철저히 그들의 영웅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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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데말야, 스파르타인의 후손은 그리스인들이잖아. 레오니다스를 '리오나이더스'라고 읽는 미국인들이 아니라고. '자유'를 위해 싸우는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면 아무리봐도 의도가 명백해 보인다니까.
    그리고, 레오니다스에 대해 찾아봤는데, "Come and take it!", "Eat hearty breakfast, tonight we dine in hell!" 이런 대사는 헤로도투스 역사서나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실제로 실려 있는 말이더군. 그리고, 역사에 보면 마지막 전투에는 300명의 스파르타군 외에도 400명의 테베군, 700명의 테스피아군 등이 남아 있었더라.
    그리고, 레오니다스가 300명을 이끌고 죽으러 떠난 이유는 델파이의 신탁이 "헤라클레스의 피를 이어받은 스파르타 왕의 희생이 나라를 구하리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래. 레오니다스는 헤라클레스의 피를 이어받은 왕가의 후손이라는구만.(영화에선 스파르타인 전체가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고 소개되지.)
    멋졌던 것은 레오니다스가 "어떻게 당신을 도울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왕비 고르고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좋은 애를 낳아 기르고, 잘 살면 되는 거야"라고. 미국인들은 이런 정서를 잘 이해 못하니까 대사에서 빼버렸던 게 아닐까?

    2007.03.24 13: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신미남

    뭐 하나 내세울게 없었던 영화!-_-; 이명세한테 한 수 지도 받아야 됨!

    2007.04.23 20:03 [ ADDR : EDIT/ DEL : REPLY ]
  3. 멋진 CG처리 안되는 복근이 있잖아. 다 용서해줘야지. ㅋ

    2007.04.23 22: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동상이몽2007. 2. 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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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ove Song For Bobby Long, 2004 Directed by Shainee Gabel


He'd make a lovely corpse. - Charles Dickens <Martin Chuzzlewit>

사랑했던 사람을 추억하는 눈빛. 하얗게 센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는 차에서 내리며 여기서 인도India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바비. 그러나 우리는 첫 장면에서 바비 롱의 푸르스름한 엄지발가락과 거기에 붙어서 그냥 생채기정도라는 듯 귀엽게 씽긋 웃는 노란 밴드를 보았다. 그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다니면서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이 정도는 아직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으며 그래서 노쇠한 모습에 연민이 느껴진다.

그는 친구 로레인의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이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로레인의 딸 퍼슬레인에게 전화로 연락을 하지만 그녀는 너무 늦게 도착한다. 그렇다. 딸은 늘 어머니를 추억하며 살았지만 한번도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래도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가 살던 뉴올리언즈의 집에 머물면서 로레인을 기억하는 흔적들로 인해 잊고있던 어린시절과 만난다. 모든 사람들이 로레인을 추억하지만 정작 사진 한장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름답게 불렀다는 목소리도 한번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남겼던 애정과 악보가 남아있다.

아, 로레인. 그녀를 떠올리는 친구들의 눈빛에서 나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본다. 도시를 동경하며 바에서 노래를 부르던 시골 소녀. 늙고 주름진 얼굴이지만 애정이 담긴 표정. 퍼슬레인을 보며 어머니를 꼭 닮았구나 라고 말하는 친구들의 표정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퍼슬레인이 어머니의 낡은 집에서 바비와 살게 되면서 막 이사라도 온 것처럼 지저분하던 곳이 조금씩 바뀐다. 그녀는 페인트 칠을 새로 하고, 음식다운 음식을 만들고, 간이 침대 대신 가구를 들여놓고, 블라인드를 올려 집안에 빛이 들게 한다. 그렇다. 로레인의 사진은  나올 필요가 없었다. 퍼슬레인의 모습에 상냥하면서 영리했을 로레인이 보이기 때문이다.

퍼슬레인은 다른 꽃 옆에서 자라는 잡초이다. 민들레같은 잡초이다. 그리고 태양이 지면 함께 진다. 들판에 피었있는 꽃처럼 거칠고 불안해보였던 그녀는 바비 롱을 만나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그리고 바비 롱으로 하여금 자식에게 못다한 애정을 쏟도록 만들어 준다.

오프닝에서 바비가 걸었던 길을 똑같이 퍼슬레인이 다시 걷는다. 장례식에 가던 지친 모습의 바비와 달리 퍼시의 발걸음은 가볍고 힘차다. 로레인의 무덤가에 바비 롱을 위한 연가와, 어머니의 악보와 퍼슬레인 꽃을 내려놓는다.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있는 바비 롱의 비석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묘하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

"I just want to breathe in every day. "Happiness makes up in height what it lacks in length." - Robert Fr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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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존 트라볼타가 바비 롱 같은 역할을 연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너무나 잘 어울려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

    2007.02.24 02: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Purslane/극장대기실2007. 2. 2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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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강남구 신사동에 <클래식시네마 오즈>가 개관했다. 고전영화만을 상영하겠다는 취지로 도로시관과 토토관 각각 200여석정도의 소규모 상영관으로 시작했다. 고전영화중에는 미개봉작들도 많았으므로 판권과 자막작업등의 초기비용의 문제로 연회비 4만원정도에 회원을 모집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여의도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꿀단지라도 만난 것처럼 얼른 회원에 가입했다. 극장은 여의도에서 가깝지 않았고, 집에서도 가깝지 않았지만 10~11시에 영화가 끝나더라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이지 라이더>나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보고 돌아가는 길은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즈는 채 일년도 지나기 전 경영에 어려움을 보였고,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일반 상영관으로 전환해야 했다. 더 이상 클래식영화는 볼 수 없게 되었고, 이후로 지금까지 상영은 계속되고 있다. 판권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은 물론이고, (그놈의) 스크린쿼터가 예외없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2003년부터 영화진흥위원회는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11개 예술영화 전용관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예술 영화 상영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영진위는 1년에 7천7백만원을 보조하는 대신 연간 상영일수의 5분의 3(219일) 이상을 예술 영화 상영에 할애할 것을 의무화했다. 더불어 스크린쿼터제에 따라 국내 예술영화 의무상영일수(106일)도 지키도록 했다.

실질적으로 국내 예술 영화가 106일을 상영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지도 의문이거니와 예술 영화의 기준도 사실상 매우 모호하다. 지속적으로 제기된 이와 같은 문제는 최근 국내 예술 영화 상영일수는 70일로 줄이고, 예술영화의 범주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작지원하고 배급을 지원하는 작품, 국내 에니메이션, 서울지역 시장점유율 1%이내인 국가의 작품 등이 해당하는 영화를 포함하기로 결정되었다.

코아아트홀은 결국 경영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폐관했으며, 서울아트시네마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필름포럼과 함께 허리우드 극장의 한 개관을 대여했다. 종로 주위의 극장들은 멀티플랙스로 전환하여 최근 속속 재개관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위탁 운영하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 지난해 지원한 금액은 3억 4천 4백만원이다. 여기에는 전용관 임대료와 번역 자막지원 등 프로그램 기획 지원금만 포함 되어있기 때문에 필름을 수급하고 상영하는 데 드는 모든 운영비는 자체 사업을 통해 마련해야 하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처럼 거대배급사가 멀티플렉스 극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한 상영관 독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개 상영관에서 10개 영화를 볼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꿈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CGV에서는 CJ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메가박스에서는 쇼박스 영화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폭력에 관객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영화를 보고있다.

고전영화, 예술영화는 늘 어렵고 따분하지 않다. 소수 시네필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단관 장기상영으로 새로운 상영방식을 모색했던 김기덕 감독의 <활>은 극장측의 변심으로 2주만에 내려왔으며,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은 좋은 관객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 불가능해보인다. 대안을 찾던 두 영화의 참패는 씁쓸하다. ‘오즈’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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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극장대기실2007. 2. 21. 23:54

멜로 영화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이야기는 이야기라는 것을 지어서 만들어낸 태초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되어오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같이살다 쫒겨났지만 그래서 헤어졌단 얘기는 없다. 쫒겨나긴 했지만 애도 낳고 잘살았으니 우리가 이렇게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다니지 않는가.

누가 누구를 만나고 헤어지는 남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일종의 안도감을 얻기도 하고 맞아 나도 저랬어하면서 공감하기도 한다. 더이상 변조될 것이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등장했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을 기둥으로 친구의 애인을 만나는 것은 사건도 아니고, 불륜이나 동성적 만남에 친족과의 조합도 모자라 이젠 장인어른과 사위만 남은 것 아니냐는 말도있다. 뭐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멜로영화를 마주하기 위해 기꺼이 의자에 앉으며 때로는 아낌없는 눈물을, 때로는 가슴이 먹먹한 기분이 느껴지기를 마다않는 것이다.

사람마다, 시기마다(연애중이거나, 지겹거나, 막 헤어졌거나, 연애사가 복잡한 중이거나, 아무라도 좋으니 만나고 싶거나) 보고싶은 영화가 다르기도 하겠으나 몇가지 타입을 나눠보자. 분류상 여기에도 속하고, 저기에도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대충 나눴다. 내 맘대로.


1. Fantasy

i.현대판 왕족

많은 여성들이 환호하는 몇몇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달리는 남성, 혹은 여성만이 재현할 수 있는 영역이다. 휴그랜트, 줄리아 로버츠가 자주 등장하는 영화들이다. <러브 액츄얼리>의 영국수상과 비서의 연애라던가, <노팅힐>의 헐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와 구멍 서점의 주인이 사랑에 빠지는 설정등이다. 산드라 블록과 휴그랜트가 재벌로 등장한 <투 윅스 노티스>나 메이드로 등장하는 제니퍼 로페즈와 유력한 상원의원후보 랄프 파인즈의 <러브 인 맨하탄>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최소한 한쪽은 현대판 왕족으로서 현실에서는 거의 연애하기 불가능한 설정으로 가진건 많은데 유독 사랑에 어설프다. 과도한 좌충우돌에 우스꽝스러운 분장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래봐야 재들도 우리랑 비슷하네 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식이다.

ii.변신은 무죄

못생긴 소년, 소녀가 어느날 짠 하고 변신해서 나타난다. 변신의 원인은 사랑의 힘이거나 돈의 힘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잘보이려고 대충 입던 옷도 근사한 수트로, 끼고다니던 뿔테안경도(필수) 렌즈로, 헤어스타일도 바뀐다. 혹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숨겨진 공주나 왕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는데 평소에 하고다니는 모습은 형편없었지만 대체로 똑똑거나 공부는 잘하는 부류들이다. 중간에 스타일을 바꿔주는 조력자가 반드시 등장한다.

<타이타닉>에서 레오가 계단위에 서있던 장면을 떠올리시면 되겠다. 변신하고 나타나면 다들 일정비율로 동공을 확대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프린세스 다이어리>나 <쉬즈 올댓>, 혹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자주보이는 전형적인 설정되시겠다. <신입사원>의 한가인의 변신도 역시 많은 남성들에게 무죄선고를 받았다.

iii. 신파성 멜로

왕족보다는 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이 역시 보기 힘든 유형의 종족이다. 이른바 순정파. 과거엔 남자 바지자락에 매달리는 장면을 연상시키며 많은 여성들이 투신하였으나 최근에는 남성에게 많은 배역이다.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씨가 연기한 석중이가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첫눈에 반해 당신의 과거는 묻지 않겠으며, 무슨일이 있어도 평생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고백은 핫초코에 설탕 들이붓는 식이다. 게다가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대도 정말 그렇게 하지 않는가. 가끔은 사랑해서 떠나기도 한다.

지고지순하면서도 이룰수 없는 사랑으로 불치병, 집안의 반대등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으며 로미오군과 줄리엣양을 시작으로 <내 머릿속의 지우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늑대의 유혹>등이 있겠다. '이게 진짜 사랑이지'라고 도도하게 팔짱끼고 있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좋아하지 않는 유형이라 떠오르는 영화가 별로 없다.
 

2. 그래 맞아!

i. 예쁘지만 어설픈 그녀

현대판 왕족보다는 조금 덜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영화들이다. 한때 로맨틱하면 대명사였던 맥 라이언류의 영화들을 떠올리시면 되겠다. 아련한 추억이 된 <프랜치 키스>, <유브갓메일>,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에 등장하는 좌충우돌 귀여운 모습이었으나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떠났다. 맥라이언이 기획한 <웨딩 플레너>의 제니퍼 로페즈도 이에 질세라 <러브 인 맨하탄><저지걸>등을 연작중이다.

평범하면서 당당한 여성 캐릭터와 잘생기고 능력좋은 오빠들이 대부분이며, 조력자로 친구들이나 쿨한 부모님들이 필요하다. <윔블던>류의 영국 워킹 타이틀 시리즈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처럼 미워할 수 없는 여주인공들이 등장한다.

ii. 나이 좀 들면 어때

지난해 삼순언니가 대 활약을 한 분야이다. 그러나 겨우 서른살에 노처녀 노릇을 하는 바람에 원성아닌 원성을 사기도 했다. <섹스 앤더 시티>의 언니들 정도는 되어줘야 나이 먹었다고 명함을 내밀지 않겠는가. <내 남자의 로맨스>처럼 과도한 비굴함으로 신파도 로맨틱도 못건드리는 부작용도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르네 젤위거의 육중한 몸매와 아줌마 빤스의 공로는 전세계적으로 인정되는 바이다. <뮤리엘의 웨딩>이나 <웨딩 싱어>의 그녀들도 놓칠수 없다.

그러나 역시 뭐니뭐니해도 <파니 핑크>의 마리아 슈레이더 언니가 본좌. 서른 넘은 여자가 시집가기는 원자폭탄 맞을 확률 보다 낮다는 말을 남겼으며 삼순이가 극중 초반에 <파니핑크> 비됴를 들고있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iii. 이게 진짜 연애지

어느정도 환상적인 연애는 스크린 속에서 볼만큼 봤다. 선남선녀의 연애에 대리만족도 느꼈고, 남들은 맨날 만나면 뭐하나 궁금하던 찰나에 저러고 노는구나하고 배우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은 이게 진짜 연애라고 알려주는 영화들이 있다. 이 부류의 관건은 얼마나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느냐이다.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주인공들과 한번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게 만들어주는 사건들이 등장해야만 웰메이드라 할 수 있다. 나도 그랬으나 잊고 있던 일들이 담담하게 나열됨으로써 영화가 끝나고서도 잔상을 남긴다.

<봄날은 간다>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친구들과 삼일 밤낮을 떠들게 만들었으며, <와니와 준하>처럼 담담하게 일상을 구석구석 여러번 보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을 놓치다>처럼 살아있는 대사도 필수.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처럼 꼭 젊고 탱탱한 언니 오빠들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으며, <비포 선라이즈>처럼 닿을 듯말듯 아쉬운 스킨쉽만 있어도 상관없다. 홀라당 벗고 나오는 몸매좋은 언니오빠들도 없고, 시끄러운 사건도 없어서 종종 지나치게 건조해질 위험이 있으나 그것이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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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ting Hill / 1999 / Directed by Roger Michell
· Love Actually / 2003 / Directed by Richard Curtis
· Two Weeks Notice / 2002 / Directed by Marc Lawrence
· Maid In Manhattan / 2002 / Directed by Wayne Wang
· Titanic / 1997 / Directed by James Cameron
· The Princess Diaries / 2001 / Directed by Garry Marshall
· She's All That / 1999 / Directed by Robert Iscove
· 너는 내 운명 / 2005 / 감독 박진표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2004 / 감독 이재한
·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 2004 / 감독 곽재용
· 늑대의 유혹  / 2004 / 감독 김태균
· French Kiss / 1995 /  Directed by Lawrence Kasdan
· You've Got Mail, 1998 / Directed by Nora Ephron
· Sleepless In Seattle / 1993 / Directed by Nora Ephron
· The Wedding Planner / 2001 / Directed by Adam Shankman
· Jersey Girl / 2004 / Directed by Kevin Smith
· Wimbledon / 2004 / Directed by Richard Loncraine
· My Best Friend's Wedding / 1997 / Directed by P.J. Hogan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 2002 / 감독 모지은
· 내 남자의 로맨스 / 2004 / 감독 박제현
· Bridget Jones's Diary / 2001 / Directed by Sharon Maguire
· Muriel's Wedding / 1994 / Directed by P.J. Hogan
· The Wedding Singer / 1998 / Directed by  Frank Coraci
· Keiner Liebt Mich, Nobody Loves Me / 1994 / Directed by Doris Dorrie
· 봄날은 간다 / 2001 / 감독 허진호
· 와니와 준하 / 2001 / 김독 김용균
· 사랑을 놓치다 / 2006 / 감독 추창민
· Something's Gotta Give / 2003 / Directed by Nancy Meyers
· Before Sunrise / 1995 / Directed by Richard Link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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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2007. 2. 2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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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롱을 위한 연가(A Love Song for Bobby Long)라는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난 어딘가로 날아가던 중이었다. 아마도 2만피트 쯤 상공에서, 5인치 정도의 스크린으로 난 바비 롱을 만났다.

그곳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전의 뉴올리언즈. 철부지 여대생은 바비 롱을 찾아가고, 주정뱅이 영문학자 바비 롱은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지독하게 춥거나, 끔찍하게 더운 곳. 때로는 호수가에서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보드카에 취해 욕지거리가 난무하는 작은 시골마을.

대사로 말을 하는 영화가 있다. "나 너 사랑해.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날 버려. 난 정말 슬퍼." 주인공은 슬프다. 하지만 관객은 슬프지 않다. 이런 영화는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해져 버린 사진과 같다.

상황으로 말을 하는 영화가 있다. 남자 주인공은 떠나 버렸다. 여자 주인공은 조용히 핸드백 속에서 다이어리를 꺼낸다. 그 곳엔 남자 주인공과 그동안 계속 함께 봤던 영화표가 수십장 모아져 있다. 한 장 씩, 한 장 씩 반으로 찢는다. 그리고 눈물은 보이지 않지만 손끝이 떨리기 시작한다. 주인공도 슬프다. 관객도 슬프다. 적당한 조명에 훌륭한 테크닉, 이 사진은 훌륭하다.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데 진정 하고자 하는 말이 쏙쏙 전달되는 영화가 있다. 이건 마술이다. 재미가 없는 것 같은데 재미가 있고, T.S.엘리엇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랑 고백처럼 들린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는 죽음이 찾아오고, 슬플 것 같은 장면은 영화에서 몽땅 들어냈는데도 보고나면 눈물이 쏟아진다. 주인공은 슬프지 않다. 하지만 관객은 몹시 슬프다. 이런 영화는 인생의 영화가 된다.

손에 펜이라는 것을 쥔 이후로, 펜은 데스크탑을 거쳐 노트북 컴퓨터로 바뀌었지만, 설명조의 내 글은 단 한 순간도 변한 적이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 이름은 바비 롱. 과연 언젠간 설명하지 않아도 설명이 될 수 있을까.
Posted by 토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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