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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21 Federer vs. Sampras 1
  2. 2007.02.21 공을 끝까지 본다는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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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이바니세비치에게는 불행이었다. 하필이면 그들 둘이라니. 테니스 선수라면 한 번 올라서기만 해도 영광일 윔블던 센터코트에서 그는 번번이 피트 샘프라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2001년, 30을 넘긴 나이에 와일드카드로 출전해서 깜짝 우승을 했을 때 사람들은 이바니세비치에게 '제2의 전성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2002년, 윔블던은 호주의 레이튼 휴잇에게 돌아갔고, 다음해부터는 '페더러의 시대'가 열렸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회 연속 우승. 페더러는 대기록을 세운다. 비욘 보그 이후 27년 만의 일이었다.

테니스의 영웅들은 많았다. 누군가는 서브의 달인이었고, 누군가는 세계 최고의 포핸드 스트로크를 자랑했으며, 공을 라켓에 붙이고 다니는 것 같다는 별명을 듣는 초특급 발리어도 존재했다. 하지만 피트 샘프라스와 같은 선수는 없었다. 안드레 애거시, 고란 이바니세비치, 보리스 베커... 샘프라스의 라이벌들은 단연 세계 최고였다. 그들과 함께 메이저 대회를 뛰어다니며 샘프라스는 윔블던 7회 우승, 메이저대회 14회 우승의 기록을 세웠다. 페더러도 못지 않다. 샘프라스를 우상처럼 여기며 그의 동작을 따라했다던 그는, 샘프라스조차 이루지 못한 윔블던 5연패를 벌써 이뤘고, 무엇보다 아직도 한창 나이다.

두 사람의 시합을 볼 수 있다는 건 마치 '로키 발보아'를 보는 것 같은 흥분과 긴장이었다. 물론, 로키처럼 샘프라스가 투지를 불태웠던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녹슬지 않은 서브와 위력적인 스트로크, 깊고 날카롭게 파고 드는 슬라이스는 한창의 페더러마저 쩔쩔매게 만들었다.

지난해 이맘 때 열린 현대카드 슈퍼매치에서는 세계 1, 2위인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이 맞붙었다. 지난해 경기는 일종의 '버라이어티 쇼'와 같았다. 경기 내내 두 라이벌은 유쾌했고, 재미있는 플레이를 보여줬으며, '진기명기 시합'같은 장면도 연출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이 시합은 일종의 '제의'였다. 페더러는 우상을 상대로 아무런 장난도 치지 않았고, 참혹하다 싶을만큼 몰아붙여 6-4, 6-3의 일방적 스코어로 승리를 가져갔다. 샘프라스는 페더러로부터 15개의 서비스 에이스를 뽑아냈다. 그도 최선을 다한 것이다.

p.s. 늘 페더러를 보면 '교과서'라는 생각이 든다. 군더더기 없이 강력한 서브, 파워풀한 포핸드 탑스핀, 칼날같은 슬라이스, 포핸드만큼 강력한 우아한 백핸드 스트로크, 거리를 줄자로 계산한 듯한 드롭 발리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코트를 손바닥에 올려놓은 듯한 움직임이다. 공이 언제 어떻게 흘러갈지를 계산하고 있는 듯한 동물적인 움직임은 늘 상대방의 허를 찌른다. 샘프라스는 자신의 전성기를 아마도 쏙 빼닮았을 이 괴물같은 후배 앞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Posted by 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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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페더러는 공이 라켓에 임팩트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공을 노려보는 선수다. 프로 선수끼리 스트로크 랠리를 벌일 때 공의 평균 속도는 대략 시속 160km. 야구 선수라면 공에 손을 뻗기도 힘들 정도의 스피드지만, 이들은 그 공을 치고 또 쳐댄다. '끝까지 보면서'

아침에 코치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오늘은 유난히 공이 네트를 넘지 못하시네요." 이유는 하나. 공을 끝까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켓에 임팩트되는 그 순간까지 공을 바라보기, 그걸 꾸준히 하기 위해 난 건너편 코치의 라켓 끝에서 공이 임팩트됨과 동시에 자세를 추스리고 테이크백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중얼거린다. "공을 끝까지 봐라, 끝까지 봐라..."

처음 할 때엔 잘 된다. 두세 번 정도는 잘 날아간다. 하지만 이내 코치의 다른 주문이 이어진다. "손목이 또 돌아갔잖아요", "공을 칠 때 무릎을 세우지 마세요", "또 헤드가 흔들리네. 헤드를 세워요." 해야 할 일이 많아질 때마다 끝까지 보라는 중얼거림도 사라지고 정신도 분산된다. 결국 또 공을 끝까지 보지 않고, 공은 네트에 처박히거나 하늘로 붕 뜨고 만다. 모든 것의 기본은 공을 끝까지 보는 것이었는데도.

인생이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건 많은 경우 공을 끝까지 보는 것과 같은 '사소한 습관'이다. 하지만 사실 그게 가장 힘들다는 것도 누구나 안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 생활을 바란다면 꾸준히 '아내와 서로 하루 1시간 이상 얘기하기' 등을 하면 된다. 새로운 거래를 성공시키고 싶다면 거래처 상대에게 꾸준히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좋은 조건을 제공하면 된다. 간단한 거다. 하지만 사실 그게 가장 힘들다. 꾸준함. 그건 공을 끝까지 보는 습관처럼 위대한 것이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