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lane/길모퉁이2007. 3. 28. 19:14
춥다. 학교에서 난방을 틀어주고, 연구실에서는 개인 난로를 다리 밑에 갖다 두었는데도 계속 춥다. 뭐 하루종일 연구실에만 있을 수 있나. 밖에 나가면 또 춥다. 근데 애들은 어떻게 그렇게 얇은 블라우스하나, 짧은 반바지 하나, 스타킹도 아닌 맨살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까.

나는 지난 주까지도 아침마다 겨울에 입던 코트를 만지작 거렸다. 티쪼가리에 미니스커트 입고 다니는 애들 사이에 코트를 휘날리며 다니기가 민망해서 결국 한번도 못입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대체 나만 추운거야!를 마음 속으로 외쳤다.

목요일을 즈음하여 학과 사무실에서 만난 비슷한 또래의 동지들에게 나의 심정을 토로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도 그렇다는 위로와 더불어 삼십줄에 들어섰다는 증거라는 등의 좌절 섞인 공감이 쏟아졌다. 그래서 오늘 비록 잠바를 입었지만 목도리를 했다거나, 사실은 이 속에 티셔츠가 하나 더 있다는 고백들 사이로 내복도 한명 있었다. 아. 다들 추웠구나? 이런.

그리고 금요일엔 도서관 앞에서 긴 코트의 여성을 발견했다. 아,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손이라도 잡고 인사하고 싶었다. 역시 얼굴을 보니 내 또래쯤 된 것같다. 역쉬.. 이 학교를 활보하고 다니는 아해들은 우리보다 무려 10살쯤 어리다는 것을 다시 상기했다.

어제도 정신 못차리고 니트하나 입고 나왔다가 저녁무렵에 미열이 있었다. 집에 가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오렌지 주스와 쌍화차를 잔뜩 마시고 배불러서 잤다. 오늘아침에는 그 위에 옷을 하나 더 껴입고 나왔다. 그런데 이게 왠 우박섞인 비가 내리는 것이냐. 약속한게 있어서 점심을 먹고 리움으로 향했으나, 여전히 춥다.

초대해주신 선생님께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리니 회의를 하다 말고 도록을 챙겨서 내려오신다. 나는 나만 연락을 받은 줄도 모르고 동네방네 워홀전도 보고 도록도 주신다더라고 말했다가 다행히 3명만 같이 가게 되어 그나마 몇부 남지 않은 도록을 잘 챙겨왔다.

전시를 보고 카페에 앉아서 오랜만에 여유있는 오후를 보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나이 얘기가 나왔다. 십년만에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무지하게 어색하다. 게다가 겨우 3개월밖에 안되지 않았나. 이젠 추운것도 나이탓이고, 푸석푸석한 피부도 나이탓이고, 숙취도 나이탓이고, 나쁜 머리도 나이탓이 되는 모양이다.

보기보다 나이가 많으시네요가 작년까지는 '동안이시네요'로 들렸는데, 이제는 '나이가 많으시네요'로 들리니 그것도 나이탓인가.. 그러고보니 나이가지고 구시렁거리는 것도 나이탓이다. 아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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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