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lane/극장대기실2007. 4. 11. 12:04

이번 주 영화 잡지가 배달되어 왔다. 일단 봉투를 뜯고 표지를 슬쩍 살핀 후 휘리릭 넘겨본다.
첫 광고는 박신양과 요즘 한국의 다코타 패닝이라고 불리는 서신애양의 영화 <눈부신 날에>. 나쁜 아빠와 이쁜 딸이라니 아빠가 속 좀 썩이는 모양이다. 날건달이란다. 아 식상해. 두 번째 광고는 <아들>. 이번엔 아버지와 아들이다. 이 아빠도 교도소에 있다가 하루 외출을 나왔단다. 15년 만에 아들을 만났으니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없다. 감독과 각본이 장진이지만 감동을 만들려는 게 광고 컨셉인지 영화 내용인지 아직 알 수 없다.

다음은 기다리던 대니 보일의 <선샤인>. 이건 봐야지. 그러나 지면 광고는 시뻘게서 촌스럽다. 감독 이름이 없었으면 0.5초만에 넘겼을 것이다. 몇 장 넘기니 또 아빠랑 동구가 나란히 턱을 괴고 있는 <날아라 허동구> 광고가 보인다. <말아톤>과 <아이엠샘>을 카피에 넣은 걸 보니 동구는 좀 모자란 녀석인가보다. 아버지가 고생이 많으시겠다.

바야흐로 따땃한 가족의 달이 코앞이다. "아빠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거침없이 외치는 철딱서니 없는 딸내미에게 아빠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보여주는 것 정도로는 모자란가. 그래도 <우아한 세계>의 인구네 가족은 황진미씨의 말마따나 이건 가정이 깨진 것도 아니고, 안 깨진 것도 아니다만 앞으로 나올 영화들엔 어디에도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골치아픈 남편들을 뒤로 하고 단체로 가출이라도 하셨나보다.

최근 한국 영화는 가정과 직장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열정을 쏟던 거대한 아버지가 소시민으로 전락하고, 가정에서도 자리를 찾지 못하는 소외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아버지들은 어느새 엄마도 밀어내고 가족의 중심에서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잘 될 리가 없다. 그들에게 가족은 조건이다. 이상향을 설정하고 열심히 앞으로 가지만 가족 외적인 질서는 여전히 마초적이고 아버지는 돌진하고 부딪히고 다시 깨진다.(조폭은 정말 그럴듯한 설정이다)

자기 연민에 빠진 남성성을 회복하겠다고 역경을 딛고 일어설 힘을 혈연에서 찾는 이야기가 지겹다.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무너져 가는 현대적 가족의 위기를 운운하며 우리 식구 오순도순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양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다가 최후의 방어선인양 혈연을 붙잡는 것도 불편하다. 언제까지 그 무력함을 받아주고 이해해 달라고 칭얼거릴 것인가.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