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lane/길모퉁이2007. 4. 12. 14:51

8시 55분 학교앞 전철역.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택시들이 보인다. 이미 5-6대의 택시가 아슬아슬하게 1교시 수업에 뛰어가는 학생들을 내려주고 돌아가는 길이다. 책을 껴안고 종종 걸음을  하는 학생들 무리가 지나간다. 나는 천천히 도서관을 향해 걷는다. 경영대 앞 물소리도 들리고, 잔디도 제법 파래졌다. 도서관 로비는 아직 한산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주섬주섬 열쇠꾸러미를 꺼낸다. 내 방은 4J. 4J라고 쓰인 열쇠를 미리 집어둔다. 캐럴 입구에서 부스럭거리기 미안해서 늘 장전을 하듯 준비해둔다.

4층에 도착하면 3열람실로 들어간다. 작은 파티션이 쳐진 널찍한 열람실이다. 일찍 온 학생들은 이미 구석자리를 선점했다. 대부분 영어책과 두툼한 각종 고시책이 놓여있다. 열람실 제일 안쪽이 캐럴 입구다. 손잡이를 돌려보니 잠겨있다. 10명의 이용자중 내가 제일 처음 왔다는 의미다. 통합키로 바꿔쥐고 얼른 문을 연다. 입구의 문은 육중하다. 손을 밀어도 얼른 닫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만히 두면 마지막 순간에 '철컥'하며 큰 소리를 내기 때문에 힘들어도 꾸욱 밀어서 가능하면 소리가 나지 않게 한다.

문 바로 앞이 내 방이다.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공간이지만 일단 문을 닫고 들어가면 매우 아늑하다. 상의를 의자에 걸고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살살 넣는다. 텀블러를 가지고 다시 밖으로 나와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서 다시 들어간다. 일단 컵에 물은 붓고, 쿠션을 등에 놓고 무릎담요를 치마 위에 얹는다. 이제 한 세시간은 안움직여도 된다. 의자는 적당히 편안하고, 열람실보다 환기도 잘 되는 편이다.

노트를 들여다보면서 해야 할 분량을 정하고, 수첩을 보며 일정을 확인한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은 잠시 읽다만 소설책이나 잡지를 뒤적거린다. 이렇게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공부를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니 사실 행복하다. (공부의 진행정도와는 관계없이;;)

이제는 밖에서 힘든일이 있을 때도 캐럴이 생각난다. 아무게도 방해 받지 않고, 조용히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란게 살면서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 학교에 오고 싶어서 아침일찍 움직였던 적이 없었다. 운동이고 뭐고 그냥 콕 박혀 있고 싶어서 아무데도 못가겠다. 이젠 학교에서도 한가하게 누구를 만나서 낮시간을 보내는 일이 별로 없다. 9시에 도착해서 밤 11시를 꽉 채우고 나가도 마음이 편하다. 배도 별로 안고프고, 책은 너무너무 잘 읽힌다. 덩달아 시간도 금방 간다. 실은 잠도 너무 잘 온다.

7월까지라는 한정적인 시간 때문인지도 모른다. 직장은 물론이고 집에서조차 자기 공간을 갖는 것은 매우 힘들다. 누구 하나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이 마음편히 방해받지 않는 자기 공간이라니. 캐럴을 쓰기 전엔 이 정도로 좋을 줄 몰랐다. 두달만에 나는 캐럴 예찬론자가 되었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