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lane/서재2007. 2. 21. 22:58

오랜만에 친구에게 책을 선물했다. 책을 선물하는 행위는 옷을 선물하는 행위만큼이나 무모한 짓이다. 사이즈가 같다고 주는대로 입게 되지 않듯이, 자신만이 아는 미묘함을 포착해내지 못한다면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과 다름없다. 내 옷장위에 있는 4개의 박스 중 2개는 엄마가 사다준 옷들이다. 내가 사입는 옷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달라서 도통 손이 가지 않는 것들이라 그렇게 몇년 빈둥빈둥 놀다가 재활용통에 들어가게될 것들이다.

하물며 엄마도 그러한데 가끔 책을 읽다가 이거라면 괜찮을 거라는 착각이 들어 덜컥 남의 손에 쥐어주는 짓을 하고야 마는 것이다. 한편으론 그만큼 읽으면서 사랑스러웠노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저자인 앤 페디먼처럼 독서광이라고 할 수는 없는 그냥 평범한 독자이다. 책을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그것이 집안에 들어오면 책을 읽는 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책꽂이에 꽂아두어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리고 그냥 목록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흐뭇해진다.

책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않을 애정을 가진 앤과 조지의 결혼은 함께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서재의 결혼이다. 그래도 그럭저럭 함께 산지 5년이 넘었고 아이도 태어났지만 감히 서재를 합치는 일을 하지 못했던 이 부부가 서재를 합치기로 하면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는다.

어수선하게 늘어놓고 사는 남편 조지는 3차원 물체들에게 전폭적 신뢰를 보내며 자신이 원하는 물건은 저절로 나타난다고 믿는 사람이다. (알만하다.) 반면 앤은 그것들이 방랑자라고 굳게 믿고 있어서 늘 같은 자리에 놓아두는 사람이다.

서재를 결혼 시키는 첫번째 난관은 영국문학을 연대 순으로, 미국문학을 저자 이름순으로 정리하기로 하면서 시작된다. 앤은 600여년의 영문학 책들은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문학의 흐름을 볼 수 있으나, 미국 문학을 시대순으로 꽂으려면 쪼잔하게 따져야한다는 논리이다.

내가 데굴데굴 굴렀던 대목은 여기다.
앤의 친구가 집을 비운 사이 한 실내 인테리어업자가 집에 있는 모든 책을 색깔과 크기순으로 재정리해놓았다는 것이다. 그 후 그 실내 인테리어업자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인과응보라고 입을 모았다.

아무리 양보하고 양보해도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몇몇 분들에게 서재를 결혼시키는 노하우를 물었는데, 대부분 '내' 책을 버리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같은 책이 두권 있더라도 (함께 살고 난후엔 이런 일이 거의 없겠지만) 일단 내 책을 살리기 위해 꽤 필사적이었다. 나도 가끔은 동생 방에서 슬쩍 자기 책인양 꽂아놓은 내 책 찾기를 하고, 가끔은 나도 동생 책을 슬쩍 내 책들 사이에 꽂아둔다(우리는 거의 자진해서 돌려주는 일이 없다).

<서재 결혼시키기>는 습관적으로 교정을 보시는 어머니(는 신문을 읽다가 틀린 부분을 모아 놓은 것만 350건정도가 되고)나, 긴 단어를 와구와구 먹어치우는 오빠나, 음식점 메뉴판에서 틀린 단어를 찾아 계산할 때 메모를 남겨주시는 아버지와 함께 자란 앤 페디먼의 갖가지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다. 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거나, 무서운 독서광의 이야기라기 보단 책을 좋아하고, 책을 가지고 놀줄 알고, 책에 얽힌 추억을 가진 사랑스러운 에세이이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