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머리2008. 2. 11. 18:48

찌개를 끓였다.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차가워진 나물을 꺼내 갓 데운 밥과 함께 비볐다. 숟가락을 집어 넣고 휘적휘적. 고추장을 좀 넣고 휘적휘적. 그리고는 입에 밥을 집어넣고 삼켰다. 찌개를 한 숟가락 떠서 또 다시 삼켰다. 그렇게 한 10여 분. 탁탁, 빈 그릇을 모으고, 턱턱, 반찬그릇에 뚜껑을 덮어 냉장고에 넣었다. 쩔그럭대며 빈 그릇을 씻었고, 쏴 흐르는 물줄기에 비누거품 가득한 접시들을 닦았다.

TV를 켜고, 뉴스를 보고, 조폭마누라3편을 틀어놓고, 맥주를 한 캔 꺼냈다. 아차. 일요일 저녁. 한 주 동안 모아 놓은 재활용 쓰레기를 꺼내 들고는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아래쪽 화살표를 눌렀다. 문을 열고 나가 찬 공기 사이로 입김을 하얗게 그어대며 전진. 그리고 분리수거. 캔은 캔 자리에, 비닐봉지는 비닐봉지 자리에, 종이는 종이 자리에. 늘 고민되는 순간은, 비닐과 플라스틱의 경계가 모호한 제품들이다. 또는 플라스틱과 종이의 경계가 모호한 제품들이다. 어찌됐든 대충 정리한 뒤 다시 올라가는 쪽 화살표.

아주 오랫동안 읽고 있는 700쪽짜리 두꺼운 소설책을 또다시 꺼내든다. 잠이 오지 않는다. 11시30분, 40분, 50분, 59분, 59분 30초, 59분 59초...자정이 넘어서 버렸다. 하루가 지나갔다. 잠은 여전히 오지 않는다.

우리가 결혼한지 100일. 그녀는 출장을 떠났고, 그녀가 없는 퀸사이즈 침대는 무척이나 넓다. 단지 이틀밤 뿐인데, 휴대전화 통화조차 할 수가 없어 몹시도 허전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익숙해짐을 넘어 그녀는 내 일부가 됐다. 혼자 보낸 100일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더 그녀를 그리워했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