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머리'에 해당되는 글 127건

  1. 2011.05.10 샌프란시스코의 봄 1
  2. 2011.03.21 고마워요 할아버지. 4
  3. 2011.02.26 상하이의 봄
  4. 2011.01.02 덴마크의 혹독한 겨울 1
  5. 2010.12.14 암스테르담의 겨울 2
  6. 2010.12.01 하이델베르크의 가을 1
  7. 2010.11.19 뮌헨의 가을 1
  8. 2010.11.15 오스트리아 산적
  9. 2010.11.12 취리히의 가을
  10. 2010.10.04 제주도의 가을 1
토끼머리2011. 5. 10. 17:30

6년 만. 하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다. 미국 도시들은 참 개성이 강하다. 뉴욕은 세계의 중심이고, 압도적이면서도, 맨해튼이라는 독특한 공간 덕분에 개성있는 예술가와 지식인의 도시 같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누가 뭐래도 첨단의 도시다. 실리콘밸리는 넓게 흩어져 있지만 그걸 하나로 묶는 건 샌프란시스코니까.


출장 목적은 사실 이 행사 때문. 귀여운 안드로이드 인형 하나 안 주느냐, 팔진 않느냐 물었더니 모두에게 주는 것도,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받는 사람도 따로 있다고...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11. 3. 21. 17:04

"야, 그것 참 용하구나."

저는 늘 똑똑한 학생이었습니다. 시험도 잘 치뤘고, 점수도 잘 받았습니다. 그래서 반장도 하고 상장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시험을 봤는지, 몇 점을 받았는지, 반장을 할 때 부반장하던 친구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개근상 빼고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상장을 받았던 건지 등등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건 다 일종의 스트레스였습니다. 해야만 해서 잘 했던 일이었죠. 하지만 아직도 명심보감의 첫 구절은 기억이 납니다.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이 복으로 이를 갚아주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면 화로 보답받는다는 내용. 제가 처음으로 사전을 찾아 뜻을 외웠던 영어단어도 기억납니다. 그것은 선물을 뜻하는 'Gift'였지만, 이 단어는 또한 '재능'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제 재능이 배우고 익히고 외우고 다시 말하는 것이었다면, 그 재능을 가르쳐 주고 북돋아준 건 할아버지였던 모양입니다. 책에서 본 이야기를 기억한 뒤 조르르 달려가 자랑을 늘어놓을 때 할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야, 그것 참 용하구나." 그 얘기가 계속 듣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만 이 말에 용기를 얻었던 건 아닌 모양입니다. 할아버지의 자식들인 제 어머니와 이모, 삼촌은 유난히 책 한 권을 다 외웠다거나, 세계 수백개 국가의 수도 따위를 탈탈 외워냈다는 식의 자랑 레퍼토리를 잔뜩 갖고 있습니다. 퀴즈쇼만 나오면 이 집안 자손들은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TV 앞에 달려들어 경쟁을 벌입니다. 그럴 때에도 할아버지는 뒤에서 말씀하셨을 겁니다. "너희들, 그것 참 용하구나"라고요.

할아버지는 여행작가였습니다. 늘 글을 쓰셨죠. 먼 곳을 다니시고,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하시고, 겪어보지 않은 일을 겪어보자 하셨습니다. 그 덕에 평안북도 산골에서 시작된 삶은 서울을 지나 군산까지 이어졌고, 할아버지의 후손들은 이 땅에 갇히지 않고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갑니다. 할아버지의 서가에 꽂혀 있던 낡은 고전들로 밤을 지새던 후손들은 교사가 됐고, 변호사가 됐으며, 기자가 되어 세상을 누빕니다.

할아버지는 또 의사였습니다. 용한 기술로 환자들을 감탄시키는 의사가 아니라 그냥 의사였습니다. 한 때는 시청앞 번화가였던 거리에서 잘 나가는 병원의 원장이었던 할아버지는 시청이 이사가고 동네가 쇠락해도 계속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불과 몇년전까지도 진료를 계속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환자들은 더 이상 눈이 아파 눈이 보이지 않는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왔던 그 분들은 그저 나이 때문에 눈이 점점 어두워지던 분들이셨죠. 하지만 할아버지의 환자들은 그냥 할아버지가 눈을 봐 주고, 형식적인 안약을 넣어주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던 모양입니다.  그건 약도, 메스도 아닌 믿음의 치료였으니까요. 병원 문을 닫기 직전까지도 그 병원에는 날마다 수십 명의 환자가 몰려들었습니다. 정년을 훨씬 넘겼을 아흔의 노의사에게 환자들이 눈을 맡긴다는 건, 서울에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낚시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낚시라는 건 저 같은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취미였습니다. 고기를 낚아채는 순간의 수백, 수천 배의 시간을 그저 앉아서 기다리는데 쓰다니요. 하지만 주말이면 낚시배낭을 챙겨 저수지로 향하던 할아버지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면 고기는 오게 마련이었죠. 투덜대는 제게 할아버지는 '멍텅구리'라는 바늘이 달린 낚싯대를 주셨습니다. 바늘이 바보처럼 많이 달려 온갖 잡고기를 꾀어 아무렇게나 잡아올리는 낚싯대였죠. 기다리는 시간 없이도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지만, 큰 고기는 멍텅구리에 걸리지 않는 법이었습니다. 하루밤이 흐르면 알 굵은 고기로 가득찬 할아버지의 바구니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피라미로 가득찬 제 바구니의 차이는 계속 두드러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고맙습니다. 참을성없는 우리에게 할아버지는 자신의 길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멍텅구리를 달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물고기와 같은 자식들을 한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자식들이 좋은 선택을 할 때면 그 옆에서 "그것 참 용하구나"라며 우리의 결정을 지지하고 후원해 주셨죠. 그리고 더 넓은 세계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여행작가의 시선으로 펼쳐내 보여주셨습니다. 멀고 험한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다치고 아파할 때면 할아버지는 용한 기술 대신 믿음과 신뢰만으로 우리의 마음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할아버지와의 시간들에 이렇게 많은 추억을 전해주고 가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11. 2. 26. 11:33
처음에는 우와, 이렇게 많이 변하다니, 이렇게 초현대식이 됐다니! 하면서 감탄만 했다. 상하이의 발전은 정말 놀라운 것이니까. 그런데 며칠 지나고나니 지겹다. 새로운 문물, 낯선 언어 앞에서 왜 지겨울까 싶었더니 이런 모습 너무 많이 봐 왔던 거다. 세계 유수의 도시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인프라와 능력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푸동같은 공간이 도대체 이게 한 나라인가 싶은 무질서하고 낙후된 공간과 공존하는 도시. 서울하고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여길 보고 나면 정말 중요한 건 무분별한 발전이 아니라 조화롭게 사는 거란 생각이 새삼 든다. 상하이는 좋은 도시이긴한데, 과연 살고 싶은 도시인 걸까. 아직까지 내 답은 아니라는 것.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11. 1. 2. 22:09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할 때만 해도 괜찮아 보였다. 공항은 깨끗하고,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보다 뭔가 고급스러워 보였는데(덴마크는 디자인의 나라) 문제는 나가면서였다. 걸어도, 걸어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디자인 가게들이 주머니를 털어가려고 유혹하는데 출구까지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25분. 이땐 몰랐다. 이 긴 공항이 나를 어떻게 괴롭히게 될지.
업무를 마치고 저녁에 들른 티볼리 공원. 처음에는 정말 공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테마파크. 덴마크인들은 월트 디즈니가 티볼리 공원에 감명을 받아 돌아가서 미국에 디즈니랜드를 지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 스페인의 세고비아 사람들도 월트 디즈니가 세고비아성을 본따 디즈니랜드를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북유럽부터 남유럽까지 훑으며 디즈니랜드를 만들었다고 하면 너무 당연한 소리가 돼 대충 자기 편한대로 기억하는 모양. 아,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고 정말 추웠다는 것. 공원을 걸어 '관광' 비슷한 걸 해보려다 얼어죽는 줄 알았다. 이땐 몰랐다. 이 추위가 나중에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는지.
척 보기에도 불안한 프로펠러기. 이게 덴마크 출장의 목표지인 본홈 섬으로 향하는 비행기였다. 다소 불안했어도 프로펠러기를 처음 타는 게 아니기에 그냥 탔다. 그런데...

이해가 쉽지 않은 장면이겠지만 이게 좀 전의 그 비행기의 착륙 장면. 저 뒤로 보이는 회색선이 활주로다. 보다시피 비행기는 활주로와 직각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고, 이 비행장에는 활주로가 하나 밖에 없다. 코펜하겐을 이륙한지 30분 만에 본홈에 도착한 이 비행기는 착륙하면서 균형을 잃고 잘못 활주로에 내려서 브레이크를 밟다가 활주로에서 90도로 미끄러져 눈밭에 쳐박혔다. 트럭과 지휘차가 달려오는 모습이다.
비행기가 탑승장 근처까지 미끄러져 가는 시스템이라 당연히 승객 호송용 버스 따위는 없다. 내가 지금 탄 이 차량은 화물칸에서 짐을 실어나르는 짐차. 의자도 없는 짐차에 앉아 활주로를 달려 공항으로 들어갔다. 하나밖에 없는 활주로는 눈밭에 쳐박힌 우리 비행기 때문에 그대로 기능이 정지됐고, 공항은 폐쇄됐으며, 이 사고는 지역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본홈 인구는 4만5000명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이런 게 가장 큰 뉴스다.
먹을 게 없는 덴마크. 안 그래도 부실하기로 유명한 북유럽의 식사. 게다가 물가는 살 떨리게 비싸고. 결국 점심은 피시앤칩스+다크에일. 영국에라도 온 기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바깥에는 블리자드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눈발이 너무 가늘어서 카메라에는 찍히지 않는데 엄청난 강풍과 함께 얼굴을 찢어버릴 듯한 작은 싸락눈이 몰아친다. 그대로 정면으로 얼굴을 들이밀면 피부가 따가워 견딜 수가 없을 정도.
결국 어찌어찌 페리를 탔다. 내가 탄 페리도 창으로 보이는 저 페리 크기. 조금 컸던 것도 같다. 공항이 막혔으니 바다로 돌아가는 수밖에. 그런데 그게 잘못이었다. 애초에 비행기가 잘못 내렸던 것도 강풍 때문에 착륙 고도를 제대로 못 잡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바다가 잠잠할 리가 없지. 집채만한 파도가 바다를 휘감고, 8층 높이의 대형 페리도 좌우로 엄청나게 기우뚱거리는 탓에 식당의 접시가 모조리 쏟아져 깨지는 소리를 내곤 했다. 비행기는 30분 안전하게 비행하고, 착륙하는 3분 정도만 긴장되지만, 배는 2시간 30분을 계속 전복될 것처럼 삐그덕대며 움직여 계속 못살게 굴었다.
저 건너편에 보이는 게 내가 타고 온 페리. 버스를 타고 스웨덴을 지나 해저터널로 코펜하겐에 가야 했는데, 이런 황량한 벌판에 세워놓더라. 여기는 버스정류장. 버스는 눈보라 때문에 한시간 연착, 사람들은 정류장에 옹기종기 모여 추위를 피하고. 덴마크의 추위는 정말 괴롭다. 티볼리에서는 걸어다니기라도 했지, 한시간을 서있으려니 이것 참.
기껏 돌아온 코펜하겐 중앙역. 티볼리가 다시 보인다. 그리고 거리는 여기도 눈에 덮였다. 
드디어 집에 가는 길.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이 너무 기뻤다. 그런데... 공항에 뜬 'Cancelled'표시. 암스테르담 공항이 폭설로 폐쇄된 것이다. KLM은 결국 나를 핀에어로 몰아 넣고 인천으로 돌아가게 했다. 핀에어의 이륙 시간은 1시 15분. 보안수속도 밟지 않았던 내가 보딩패스를 받은 시간은 1시 정각. 나올 때 25분이 걸렸던 그 터미널을 되돌아 뛰어야 했다. 코펜하겐, 끊임없이 마지막 그 순간까지 나를 괴롭혔다.
이 곳은 헬싱키 국제공항. 다시는 KLM도 타지 않고, 덴마크에도 가고 싶지 않다. 다시는.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10. 12. 14. 21:56


자전거 출퇴근이 40%로 세계 최고라기에 따라했더니 눈 내리고...


거리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


이번엔 시간이 좀 있어서 하이네켄 본사도 가보고


하지만 아들은 아빠 전화도 안 받고 아내는 앓고... ㅠㅠ 집에 가고 싶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10. 12. 1. 15:06
이번 출장에서 참 드물게 낮에 찍은 관광지 사진. 귀국하기 위해 공항가던 길에 들른 도시라서 가능했음. 이놈의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한 탓에, 출장을 와도 나를 찾는 전화는 어김없이 울려대고, 기사는 아무데서나 써야 하고, 아우 참.

정말 바람 엄청 불고 몹시 추웠음에도 사진을 보고 있으니 대충 따뜻해 보이는 이 마술같은 상황. 일부러 앙상한 나무를 찍었지만, 그래도 별로 추워보이지는 않네. 하이델베르크는 아름답다는 시내 구경은 거의 못하고 성만 찍고 휘리릭 이동.

그나마 유럽의 겨울은 관광객이 급감하는 탓에 '개보수의 계절'이라 하이델베르크도 곳곳에 '못 들어감', '수리중' 푯말만 가득. 이 사진 속 풍경은 개보수 광경은 아니고 그냥 이렇게 보존된 것.
 
이번 출장에서도 일주일만에 1300km를 달리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를 넘나든 빡센 출장이었으니...  확실히 독일인들은 사람의 옷차림보다는 그 사람이 타는 차를 더 알아주는 듯. 신형 BMW X5를 주차하고 들어가면 어느 음식점에서든 잘 해준다. 한국에 돌아와 이 차 시승기를 읽어보니 "디젤 SUV인데 160km까지는 별 저항없이 부드럽게 순간적으로 가속됨"이라고 써놨는데, 직접 몰아보니 180km까지는 별 무리 없었음. 그런데도 아우토반에서는 나를 추월하는 차들이 수두룩. 독일에선 택시도 BMW고 벤츠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10. 11. 19. 21:23
햇살은 좋고, 건물도 좋은데 이 사진을 찍은 내 호텔방은 좁아터지고 인터넷도 안 되는 괴로운 곳. ㅠㅠ

마리엔플라츠의 고풍스러운 시청 건물은 참 멋지지만 나는 이걸 밤에 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도 즐거운 건 뮌헨의 중심, 호프브로이하우스의 시끌시끌 와글와글 흥겨운 맥주집 분위기. 아줌마 아저씨들은 술 한 잔 하시고 밴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시고.

1000cc 맥주도 참 맘에 들고. 부족함이 없고.

하지만 호프브로이하우스의 학센은 생각보다 별로라서 나온 뒤 만난 다른 가게의 학센이 훨씬 맛있어 보일 뿐이고... ㅠㅠ

그렇게 뮌헨의 가을은 일과, 나쁜 숙소와, 별로인 음식과, 커보이는 남의 떡으로 끝이 납니다. 이런.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10. 11. 15. 18:03
이렇게 평화로운 오스트리아 국경의 시골마을에 감탄했지만,

국경을 지나며 인상을 구기다.

오스트리아 고속도로를 단 20분 달렸는데, 고속도로 통행료를 안 냈다며 벌금 120유로를 내란다. 우리는 고속도로 톨게이트조차 보지 못했지만 경찰들은 "엄청 큰 표지판이 스위스에서 넘어오는 국경에 수없이 붙어있다"고 우긴다. 같이 돌아가보자고 했으나 벌금부터 내라고 압박. 통행료를 내겠다는데도 벌금을 내라고 강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차들은 다들 무사통과하는데 걸린 차들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독일과 프랑스 번호판 차량들. 다들 우리같은 어리버리들이었다. 자기 나라 통과하는 외국인들 등쳐먹는 오스트리아의 도둑놈들. 길 막고 통행료 내라는 옛 산적들과 다를 게 하나 없다. 나쁜 놈들. 평생 독일에 빌붙어 먹고 살아라!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10. 11. 12. 17:55




우연히 들어갔다 기대외로 괜찮았던 음식과 착하고 상냥한 스위스 사람들에게 감동. 스위스에 대한 안좋던 선입견을 교정하다. 물가는 좀 비싸지만...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10. 10. 4. 18:19








아 멋진 제주도의 가을... 그런데 감기만 걸려 왔네. ㅠㅠ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