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2007. 2. 2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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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롱을 위한 연가(A Love Song for Bobby Long)라는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난 어딘가로 날아가던 중이었다. 아마도 2만피트 쯤 상공에서, 5인치 정도의 스크린으로 난 바비 롱을 만났다.

그곳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전의 뉴올리언즈. 철부지 여대생은 바비 롱을 찾아가고, 주정뱅이 영문학자 바비 롱은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지독하게 춥거나, 끔찍하게 더운 곳. 때로는 호수가에서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보드카에 취해 욕지거리가 난무하는 작은 시골마을.

대사로 말을 하는 영화가 있다. "나 너 사랑해.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날 버려. 난 정말 슬퍼." 주인공은 슬프다. 하지만 관객은 슬프지 않다. 이런 영화는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해져 버린 사진과 같다.

상황으로 말을 하는 영화가 있다. 남자 주인공은 떠나 버렸다. 여자 주인공은 조용히 핸드백 속에서 다이어리를 꺼낸다. 그 곳엔 남자 주인공과 그동안 계속 함께 봤던 영화표가 수십장 모아져 있다. 한 장 씩, 한 장 씩 반으로 찢는다. 그리고 눈물은 보이지 않지만 손끝이 떨리기 시작한다. 주인공도 슬프다. 관객도 슬프다. 적당한 조명에 훌륭한 테크닉, 이 사진은 훌륭하다.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데 진정 하고자 하는 말이 쏙쏙 전달되는 영화가 있다. 이건 마술이다. 재미가 없는 것 같은데 재미가 있고, T.S.엘리엇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랑 고백처럼 들린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는 죽음이 찾아오고, 슬플 것 같은 장면은 영화에서 몽땅 들어냈는데도 보고나면 눈물이 쏟아진다. 주인공은 슬프지 않다. 하지만 관객은 몹시 슬프다. 이런 영화는 인생의 영화가 된다.

손에 펜이라는 것을 쥔 이후로, 펜은 데스크탑을 거쳐 노트북 컴퓨터로 바뀌었지만, 설명조의 내 글은 단 한 순간도 변한 적이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 이름은 바비 롱. 과연 언젠간 설명하지 않아도 설명이 될 수 있을까.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