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07.12.25 ISTJ
  2. 2007.09.16 Spanish Weekends #4 1
  3. 2007.09.13 Spanish Weekends #0 4
  4. 2007.09.12 Spanish Weekends #3 1
  5. 2007.09.08 Spanish Weekends #2 1
  6. 2007.09.08 Spanish Weekends #1 1
  7. 2007.09.08 Spanish Weekends #0
  8. 2007.03.05 바다
  9. 2007.03.04 설악산 등반
  10. 2007.02.23 This is Purslane 1
동상이몽2007. 12. 25. 10:43

토끼머리의 검사를 보고 2003년 겨울에 했던 MBTI검사결과가 생각나서 옮겨왔다.
그 당시 내 결과에 대한 감상은 '따분해'였다. 10-20년이 지난후에 다시 하면 검사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위안을 삼았다. 나는 검사결과중에서도 수치가 아주 높거나 낮은 경우가 많았던 것같다.

MBTI검사로 몰랐던 내 성격을 알게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약 40여명이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가 나온 후 16가지 유형별로 그룹을 지어 몇가지 주제로 발표를 했었다. 성격의 특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제각각 다른 발표방식은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 '비상식'이라고 생각했던 타인의 행동이 성격에서 묻어나온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습관적으로 약속시간, 강의시간에 늦는 사람들. 그리고 전혀 미안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묶인 그룹이 있었는데, 그 그룹역시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종종 있음을 고백하면서 진심으로 안 미안한데 미안해야할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 다음부터 나는 그런 일을 겪으면 부르르하고 화를 내는 대신 조금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를 제외한 15가지 성격유형을 보는게 더 흥미로웠던 검사로 기억한다.
-------------------------------------------------------

  「나는 ISTJ
  "사실적인, 철저한, 체계적인, 신뢰할 수 있는, 확고부동한, 실제적인, 조직화된, 의무적인, 분별있는, 근면한, 믿을만한, 성실한."이 나를 설명해주는 단어들이다.

  나는 신중하고 조용하며 집중력이 강하고 매사에 철저하며 사리분별력이 뛰어나다.

  실제 사실에 대하여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기억하며 일처리에 있어서도 신중하며 책임감이 강하다. 집중력이 강한 현실감각을 지녔으며 조직적이고 침착하다. 보수적인 경향이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과거의 경험을 잘 적용하며,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에 대한 인내력이 강하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과 기분을 배려하며, 전체적이고 타협적 방안을 고려하는 노력이 때로 필요하다. 정확성과 조직력을 발휘하는 분야의 일을 선호한다. 즉 회계, 법률, 생산, 건축, 의료, 사무직, 관리직 등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위기상황에서도 안정되어 있다.」


Posted by Purslane
동상이몽2007. 9. 16. 08:37

일주일 내내 점심과 저녁 시간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다닌 것이 바로 맥주였다. 몹시도 건조하고 더운 스페인에서 맥주는 술이라기보다는 물의 대용품 같았다. 온 나라의 광장마다 식당 주인들은 바깥에 의자를 내다놓았고 사람들은 그 곳에서 작은 맥주 한 잔(까냐)을 홀짝이곤 했다. 북부의 부르고스와 빌바오에선 리오하가 가깝기 때문인지 몰라도 맥주보다는 와인을 홀짝이는 사람들이 더 쉽게 눈에 띄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말 '스페인적'인 술은 맥주가 아닐까.

공간적인 개념으로도, 시간적인 개념으로도 모두 '틈'만 나면 맥주를 부어대기 시작했던 스페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 틈에 섞여서 함께 잔을 채웠던 늦여름. 시간이 그냥 멈춰버렸으면 싶었던 몇 안 되던 시간들.

Posted by 흰솔
동상이몽2007. 9. 13. 19:17

01

이상하게도 돌아오던 날로부터 하루하루 멀어질 때마다 더 많은 순간들이 떠오른다. 더위를 유난히 못견뎌서 걱정하며 떠나긴 했지만 역시 스페인 남부의 햇빛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그런 나를 데리고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북부로 마지막 일정을 수정했다.

빌바오의 오래된 거리에서 여행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다. 마드리드를 출발할 때 아득하게 느껴졌던 휴가가  끝나고 있었다.

일정 내내 애독(!)한 Lonely Planet은 빌바오에서 좋은 숙소와 근사한 식당을 추천해 주었다. 거리의 시원한 공기 탓이었지, 유난히 맛있는 음식 때문이었는지, 훌륭한 와인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여행의 마지막이 아쉽지 않았다. 와인의 술기운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거웠다. 어쩌면 여행이 끝나도 다시 이렇게 마주보고 있을수 있다는 생각에 든든했는지도 모른다.

    늘 음식만 나오면 정신없이 먹다가 배가 부른 후에야 카메라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이건 여행의 후반부라 식전에 긴장하고 찍은 사진.


 

Posted by Purslane
동상이몽2007. 9. 12. 20:27
푸에르타 비에하. ‘오래된 문’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와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프랑스를 떠올린다. 이외에도 프랑스에서도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곳은 한두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나, 독일이나 이탈리아도 와인 재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란 것 정도야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독 스페인을 선택하는 사람은 적다. 스페인은 이들에게 와인의 나라라기보다는 투우와 플라멩고의 나라일 뿐이다.

하지만 오해다. 그라나다에서의 저녁식사. 우리는 알바이신과 알람브라 사이의 거리에서 빠에야와 와인을 주문했다. 스페인에는 리오하 강 유역이라는 훌륭한 와인 산지가 있다. 스페인 와인을 잘 모르니 추천을 부탁한다고 묻자 종업원은 “15유로(약 2만원)정도 하는 정말 좋은 와인이 있다”며 이 와인을 내왔다. 조금 미안하지만 이보다 더 높은 등급인 한국에서도 나름 유명한 스페인 와인 ‘마스 라 플라나’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관광지 레스토랑에서 그 가격이라니!

하루종일 더위와 미로같은 골목길에 시달려 짜증을 내기 직전이던 purslane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술의 신 바쿠스는 행복도 아마 함께 관장하는 게 아닐까.

Posted by 흰솔
동상이몽2007. 9. 8. 17:10

도스밀싱코시엔토!

무려 2500km를 우리와 함께 달려줬다. 푸조에 대한 선입견(프랑스가 무슨 차를 만들겠냐는)이 있었지만 이번 여행으로 그 선입견은 사라졌다.좋은 연비와 합리적인 가격, 푸조야말로 유럽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처음에 기대한 것은 개성없는 회색 푸조. 하지만 유로카는 예쁜 빨간색 외관과 최강 연비, 훌륭한 코너웍을 갖춘 딱 맞는 차를 골라줬다. 고마워 푸조207.

Posted by 흰솔
동상이몽2007. 9. 8. 06:43
지금 있는 곳은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까지 돌아보고난 purslane이 드디어 뻗어버렸다. 렌트한 차의 주행기록을 봤더니 오늘 낮 기준으로 2100km. 이 정도 강행군에 멀쩡한 게 더 이상한 일이지 싶어 혼자 호스텔 로비에서 블로깅중.

빌바오에는 8년 전 잠깐 들렀지만 기차역에서 200m쯤 걸어나갔다가 다시 다음 행선지로 떠나버렸다. 성수기라 숙소가 없었는데 노숙을 하기엔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 '지나치게 시원한' 날씨가 도움이 됐다. 더위에 진절머리를 내던 그녀가 '너무 좋아~!'라며 웃는다. 오늘이 마지막 밤. 카스코 비에호(old town)의 멋진 저녁식사가 기대된다. 두근두근.

Posted by 흰솔
동상이몽2007. 9. 8. 00:25

톨레도의 저녁. 레알 마드리드와 비야레알의 경기가 있었다. 결과는 마드리드의 4대0 승리. 톨레도 아저씨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고 purslane은 저녁먹으려는데 담배를 피우며 시끄럽게 떠드는 아저씨들과 한 한국남자에게 살짝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하지만 오징어 튀김 타파와 맥주 두 잔에 짜증은 사라졌고(내 생각엔 아마도) 저녁식사후 봤던 톨레도의 야경은 동화 속 거리만큼이나 팬시했다.

Posted by 흰솔
동상이몽2007. 3. 5. 14:18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벽 6시. 아직 어두운 새벽. 창밖너머 해안선 가득히 밝은 불빛을 단 배들이 늘어서 있었다. 누군가에겐 일상의 공간일 그곳이 이방인의 눈엔 그저 낭만적으로 보인다. 풍경을 배회하고 산책하는 것은 이방인의 몫이다.

낯선 공간에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감탄한다. 어린아이처럼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어디쯤인가 생각한다.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르고, 잘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거나 멀쭘하게 마주 설 일도 없다.

늘 들리는 파도 소리도, 매섭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3월 초의 미묘한 바람도, 비릿한 내음도 그저 근사하다.
Posted by Purslane
동상이몽2007. 3. 4. 15:37
0
한 걸음씩 내딛을수록 하늘과 가까워졌다.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다가왔고, 앞은 점점 흐릿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을 돌무더기들이 모여 있는 공터가 나타났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메아리로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 같기도 했고, 비명 소리처럼도 들렸다.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는 온 몸의 구석구석에 차갑고 끈끈하게 엉겨 붙었고, 안경마저 뿌옇게 변해 한치 앞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바위를 밟으면 발이 미끄러졌고, 흙을 밟으면 발이 진흙에 휘감겨 바닥에 붙잡힌 듯 했다. 옷은 젖어서 무거워졌고, 온도는 점점 내려갔다. 구름은 부슬비를 뿌렸다. 조금씩 지쳐왔다. 우리의 말 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얼굴 표정도 가면이라도 쓴 것처럼 굳어만 갔다.
설악산의 봄이었다.
Posted by 흰솔
동상이몽2007. 2. 23. 00:31

사용자 삽입 이미지

A Love Song For Bobby Long, 2004 Directed by Shainee Gabel


He'd make a lovely corpse. - Charles Dickens <Martin Chuzzlewit>

사랑했던 사람을 추억하는 눈빛. 하얗게 센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는 차에서 내리며 여기서 인도India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바비. 그러나 우리는 첫 장면에서 바비 롱의 푸르스름한 엄지발가락과 거기에 붙어서 그냥 생채기정도라는 듯 귀엽게 씽긋 웃는 노란 밴드를 보았다. 그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다니면서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이 정도는 아직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으며 그래서 노쇠한 모습에 연민이 느껴진다.

그는 친구 로레인의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이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로레인의 딸 퍼슬레인에게 전화로 연락을 하지만 그녀는 너무 늦게 도착한다. 그렇다. 딸은 늘 어머니를 추억하며 살았지만 한번도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래도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가 살던 뉴올리언즈의 집에 머물면서 로레인을 기억하는 흔적들로 인해 잊고있던 어린시절과 만난다. 모든 사람들이 로레인을 추억하지만 정작 사진 한장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름답게 불렀다는 목소리도 한번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남겼던 애정과 악보가 남아있다.

아, 로레인. 그녀를 떠올리는 친구들의 눈빛에서 나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본다. 도시를 동경하며 바에서 노래를 부르던 시골 소녀. 늙고 주름진 얼굴이지만 애정이 담긴 표정. 퍼슬레인을 보며 어머니를 꼭 닮았구나 라고 말하는 친구들의 표정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퍼슬레인이 어머니의 낡은 집에서 바비와 살게 되면서 막 이사라도 온 것처럼 지저분하던 곳이 조금씩 바뀐다. 그녀는 페인트 칠을 새로 하고, 음식다운 음식을 만들고, 간이 침대 대신 가구를 들여놓고, 블라인드를 올려 집안에 빛이 들게 한다. 그렇다. 로레인의 사진은  나올 필요가 없었다. 퍼슬레인의 모습에 상냥하면서 영리했을 로레인이 보이기 때문이다.

퍼슬레인은 다른 꽃 옆에서 자라는 잡초이다. 민들레같은 잡초이다. 그리고 태양이 지면 함께 진다. 들판에 피었있는 꽃처럼 거칠고 불안해보였던 그녀는 바비 롱을 만나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그리고 바비 롱으로 하여금 자식에게 못다한 애정을 쏟도록 만들어 준다.

오프닝에서 바비가 걸었던 길을 똑같이 퍼슬레인이 다시 걷는다. 장례식에 가던 지친 모습의 바비와 달리 퍼시의 발걸음은 가볍고 힘차다. 로레인의 무덤가에 바비 롱을 위한 연가와, 어머니의 악보와 퍼슬레인 꽃을 내려놓는다.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있는 바비 롱의 비석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묘하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

"I just want to breathe in every day. "Happiness makes up in height what it lacks in length." - Robert Frost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