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lane/서재2007. 3. 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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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 정창 역 열린책들 2006.02.25

노인이 책을 읽는 방법은 독특하다. 문장을, 단어를, 음절을 천천히 음미한다.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는다.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다.

많은 책이 필요하지 않다. 치과의사가 6개월마다 전해주는 두 권이면 족하다. 그는 느리지만 섬세하다. 카누에 떠내려 온 금발의 시체를 보는 눈은 탐정 같으며, 목숨을 걸고 살쾡이와 마주 설 때는 호흡마저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슬프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연애 소설만을 고집하는 노인의 취향은 어쩐지 이상하다. 말라리아에 걸려 밀림으로 떠나온 지 2년 만에 죽은 연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 그의 애도는 너무 짧다.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간 밀림을 향해 분노하지만 이내 밀림은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정없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밀고 들어오는 양키들의 폭력성에 저항해도 결국 읍장을 도와 살쾡이를 잡으러 밀림으로 들어간다. 어쩔 수 없는 현실과의 타협. 노인은  공존할 수도 그렇다고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는 것들과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

밀림은 사랑하는 이를 앗아가기도 했으나 평생을 두고 적응해야 할 대상이며, 가족처럼 지냈던 수아르 족 인디오들 역시 그를 친구로 대했을 뿐이다. 노인은 양키에게 죽은 수아르 족 친구의 복수를 했으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게 했다는 이유로 부족을 떠나게 된다. 인디오들은 떠나가는 그가 멀어지자 발자국을 지운다. 어쩌면 딱 그만큼의 거리가 가장 행복한 삶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