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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디 오브라이언이 죽었을 때 조문객들은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그의 관에 돈을 던졌다. 그날 장례식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했던 구두쇠도 참석했다. 그 또한 비통한 표정을 짓고 패디의 묘 앞에서 외쳤다. "난 패디 오브라이언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내 사랑을 보이겠어요. 여러분이 여기에 돈을 얼마를 던져 넣든지간에 난 그 돈의 두 배를 내겠습니다." 구두쇠는 약간 취한 것처럼 보였고, 마을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이 구두쇠에게 한 번 교훈을 얻게 해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조문객들은 가지고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지폐와 동전을 모두 관 속에 던져 넣었다. 이렇게 던져 넣은 돈은 3012달러. 이 마을에서 장례식이 벌어진 이래로 가장 많은 액수의 저승길 노잣돈이었다. 그러자 구두쇠는 관 속에서 그 돈을 긁어 모았다. 그리고 패디 오브라이언 앞으로 6024달러 짜리 수표를 한 장 쓴 뒤 관 속에 던져 넣었다.

아일랜드에도 동양과 비슷하게 저승길 가는데 노잣돈을 마련해 주는 풍습이 있는 모양이다. 아일랜드의 풍습이야 평소 알 길이 없었지만, 약삭빠른 구두쇠 영감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수완 만큼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이야 물론 저렇게 타락해서 살지는 말라는 얘기겠지만, 어쨌든 장례를 치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조문객들의 슬픔과 고인에 대한 경건한 추모를 이용해 그 뒤편으로 한 몫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발행하는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지난해 10월 첫주판에 보면 여기에 관한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지난해 사망자 수는 24만5511명(보건복지부 자료). 이 중 화장한 건수가 전체의 52.59%(통계청 자료)로 12만9138건이다. 따라서 지난해 화장 시 총 소요비용은 1조5470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매장 시 총 소요비용 1조9224억원을 더하면 지난해 장묘산업 규모는 3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한국의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가 아마 이 정도 됐던 것 같다.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1~2년 전만 해도 이 돈이면 NHN을 통째로 살 수도 있었다.

저승길에 노잣돈을 챙겨주는 풍습 자체야 별로 탓할 게 없다. 하지만 한번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병원 장례식장에 가면 정말 허접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베니어합판으로 된 관을 하나 두고는 그것보다 훨씬 비싼 관들을 같이 판다. 절대 강매하지는 않지만, 사랑하던 가족을 마지막 보내는데 베니어합판으로 된 관을 선뜻 선택할 유족은 없다. 얼마 안 가 썩어 없어질 수의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4000만 원 짜리 '명품 수의'까지 팔린다는데 그런 걸 보면 부자들은 죽어서 재산을 무덤까지 가져가려는 모양이란 생각도 들곤 한다.

그나마 많이 장례문화가 개선돼 이 정도다. 아직도 매장을 하려면 관을 묻고 무덤을 밟아주는 인부들에게 잘 밟아달라고 1만 원 짜리 지폐를 수십 차례 꺼내 찔러줘야 하고, 화장터에서도 잘 태워 달라고 돈을 찔러줘야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 모양이다.

기쁜 날, 합리적으로 축하하려는 사람들 덕분에 결혼식이나 돌잔치의 거품은 조금씩 줄어드는 모양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슬픈 날 합리적으로 슬퍼하자고 말하긴 힘들다. 최근에는 다행히 웨딩플래너처럼 장례지도사라는 직업도 등장한 모양이지만, 솔직히 주위에서 찾아본 적이 없다. 써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고. 훌륭한 장례지도사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