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 로울링의 해리포터를 이해해야 지구적 불평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이 블로그에 링크돼 있기도 한, Marginal Revolution의 Alex Tabarrok이 최근에 올린 포스팅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진행되면서, 유명 작가의 책이 전 세계 각국의 말로 번역돼 나가고, 그에 따라 사상 첫 억만장자(Billionaire) 작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리아드, 오딧세이를 지은 호머도,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도, 심지어 반지의 제왕을 지은 톨킨조차도 억만장자의 위업은 달성하지 못했다.

호머가 돈을 벌지 못한 건 책을 인쇄하질 못하니 말로 얘기를 들려줘야 했기 때문에 시장 자체가 협소해서였다. 셰익스피어도 시장을 늘려보려고 희곡을 써서 관객을 모아봤지만, 그래봐야 하룻밤에 수천명 수준일 뿐이다. 진정한 '베스트 셀러' 문필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톨킨 이후의 세대 정도다. 이들은 책을 대량으로 찍어 팔고, 영화와 만화 등에 판권을 팔아 넘기면서 백만장자가 됐다. 그런데, 롤링 앞에서는 우스울 따름이다. 롤링은 중국 어린이들에게 해리 포터 대신 '하리 보테'의 마법을 팔아 치우고, 한국 어린이들에게 허마이오니 대신 '헤르미온느'의 영특함을 가르친다. 그것도 출간과 거의 동시에.

문제는 톨킨은 시장을 만들어내면서 성공했지만, 롤링은 시장을 빼앗으면서 성공했다는 데 있다. 아이들이 책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란 건 한정돼 있게 마련이다. 특히나 비디오 게임과 TV 등과 함께 경쟁해야 하는 요즘 세상에선 책이 갖고 있는 유한한 시간이란 건 제한적인 시장을 만드는 가장 큰 요소다. 그런데 예전같으면 찾아볼 일도 없었을 영국 작가의 책이 중국과 한국 어린이들의 독서 시간을 빼앗는다. 롤링은 그만그만한 각국 작가들의 시장을 빼앗아 자신이 독식하면서 억만장자의 위업을 이룬 것이다.

이런 불평등함이 과연 도서 시장만의 일일까? 요즘 싸이월드가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네티즌들이 할 일이 많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냥 디카로 사진을 찍어 싸이에 올리면 됐는데, 요새는 블로깅을 위해 꾸준히 포스팅도 해야 하고, 태깅도 해야 한다. 단순히 사진만 찍어 올리던 시기도 지나서 요새는 동영상을 찍어서 유튜브나 판도라TV에 올려야 하는 시대가 됐다. 글도 대충 쓰면 안 된다. 자기만의 주제가 있어야 스타 블로거가 된다. 전에는 싸이의 친구들이 내 고객이었지만, 요새는 불특정 블로거들이 내 고객의 범주에 포함됐다.

미니홈피에서 인기를 누리는 과거의 '싸이월드 투멤(오늘의 멤버; today's member)'들은 방문자가 수백명에서 많으면 수천명 수준에 이르곤 했다. 사람들은 투멤들의 미니홈피에 끝없이 달린 댓글에 감탄했고, 너도나도 투멤이 되고 싶어했다. 요즘엔 다르다. 투멤 따위는 우스울 따름이다. 인기 블로거의 블로그에는 아무 포스팅이 없어도 하루 수천명이 찾아든다. 1일 방문자가 수만명에 이르는 포스팅도 불가능한 게 아니다. 하루 2명의 투멤들이 겹치기 없이 나눠갖던 사이좋은 방문자들이 최근에는 '인기 블로거' 몇 명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블로그가 활성화될수록 이런 경향은 더 늘어날 게 뻔하다.

싸이월드와 블로그만의 일일까? 불평등은 도처에 있다. 그것의 원인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이든, 웹2.0이든 관계없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경쟁이란 건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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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년 안에 지구가 망할 것처럼 과학자들과 환경론자들이 떠들어대도, 정작 그 환경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수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은 '녹색의 비즈니스'라는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 가운데 한 포스팅이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무심한 가장 큰 이유는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토마스 프리드먼의 논리처럼 환경 문제란 다음 와 현재 세대의 갈등이기 때문에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설명도 이유 가운데 하나지만, 이 글이 내세우는 논리는 더 끔찍하다. 그러니까, 지금 산업화가 잘 돼 온실가스도 가장 많이 내뿜으면서, 정작 선진국으로서의 과실은 다 따 먹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환경이 더 나아지는 걸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온대 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변해 가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곡물 수확량은 현재보다 계속 늘어날 것이고, 추운 북유럽도 더 긴 여름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나 중국, 서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수혜를 입게 될 예정이며, 자연스레 한국 또한 아열대 기후의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기후 증가로 인해 우리가 손해를 본 것은 말라리아 발병 정도였고, 이익을 본 것은 더 긴 여름과 그로 인해 가능해지는 난방비 절감, 곡물 수확량 증가, 관광산업에 대한 혜택 등이었다. 뚜렷한 4계절이 사라졌다고 불평할 수야 있겠지만, 추운 겨울이 많이 줄어든 것은 확실히 활동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한국은 황사 피해를 점점 더 보고 있긴 하지만, 황사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정작 끔찍한 건 피해를 보는 국가들 가운데 대부분은 산업화에도 뒤떨어졌고, 경제 수준도 몹시 낙후된 아프리카 국가들이라는 것. 이런 국가들은 사막화가 늘어나면서 기아가 더욱 심해지고,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생산해내는 나라들은 기후변화의 혜택을 (단기적으로) 보고, 온실가스를 적게 생산하는 지리적 약자들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가장 먼저 본다. 세상은 지나치게 불공평하다. 도대체 이런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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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graph by Dwight Eschliman for The New York Times ------------------- Carin Goldberg (a homage to Rachel Carson)

"일자리, 기온 그리고 테러. 오늘날 미국인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세가지 이슈."

이번주 뉴욕타임즈의 타임즈매거진 커버스토리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긴 칼럼, '녹색의 힘'이었다. 평소같으면야 긴 칼럼을 읽기가 골치아파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넘어가곤 하지만 이번 커버스토리에는 눈길이 가는 구절이 굉장히 많다.

우선 일자리. 이에 관해 얼마 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속가능경영에 관해 대화하던 중이었는데, 불현듯 함께 얘기를 나누던 분이 "지속가능경영 또는 환경경영이 제2의 산업혁명을 가져올지 모른다"라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별 뜻 없이 넘겼지만, 이 칼럼을 읽고 있자니 생그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9/11과 카트리나를 겪은 미국인들이 변하기 시작하면 산업 자체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프리드먼은 미국이 그동안 철도 대신 도로를 깔고,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의 휘발유를 팔아 온 국민에게 자동차와 쾌적한 교외 거주환경, 낮은 인구밀도를 선물했다고 말한다. 이런 미국의 모델은 전 세계가 선망한 모델이었다. 그러니 미국이 친환경적인 산업을 개발해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들어낸다면 세계는 그 또한 모델로 받아들이고 따라올 것이라는 얘기다.

기온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세계 곳곳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가 쏟아져 나온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정말로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반대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경고론자에게 돌을 던진다. "당신들의 지구 온난화 경고는 근거가 없다"면서.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란 건 있게 마련이다. 적어도, 더 이상 석유에 기반한 문명이 지속되기 힘들고, 더 이상 자원 착취적인 발전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게다가 세계가 칭송하는 중국이 미국식으로 산업화될 경우 생길 환경재앙이란 건 중국인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황사를 들이마시는 한국인들은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테러라는 이슈는 이런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미국이 저지르는 양면적인 행위에 관한 지적이다. 미국인들은 달러를 벌어서 군대를 유지하고, 테러와 전쟁을 벌이도록 위임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석유를 사들이면서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이슬람 종파 일부의 부를 축적해 그들에게 무장을 하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다. 한 때, 잠시나마 풍요롭고 행복했던 세계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름 때문에 분쟁을 벌이고, 에너지 쇄국에 나섰으며, 전쟁도 불사하기 시작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친환경산업에 투자하면 된다. 그런데 왜 하지 못하는 걸까? 프리드먼의 분석은 굉장히 간단하다. 계급갈등은 적이 명확하고 아군도 명확하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갈등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갈등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언젠가 태어날 테고,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문제는 그 때가 되면 이미 모든 게 늦어버린다는 데 있다.

좋은 칼럼에 감탄하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미국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대체에너지 개발과 에너지효율이 높은 상품 생산 등의 친환경산업은 이미 앞선 기업들의 트렌드가 됐다. 그런데 지금 한국기업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 일본의 도요타는 세계 1위 자동차회사가 아니었지만, 가장 먼저 하이브리드카를 상용화한 회사가 됐다. 그게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아닐까? 소니와 필립스와 인텔은 환경기준을 맞추지 못한 납품업체에게서는 부품을 공급받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그 연합체에 포함돼 있지 못하다. 과연 한국은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가진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갈등만 해결하면 된다고 순진하게 믿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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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구단은 공통점이 있다. 경영이 어려워져 주인이 사라진 회사가 구단주라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성적이 괜찮은데도 문을 닫게 생겼다는 것 등이다.

의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야구팬과 게임팬들은 이 때 '비난과 증오의 대상'을 찾는다. 마치 중세유럽의 마녀사냥과도 같은 분위기다. 여기에 스포츠 기자들까지 가세한다. 대개 화살을 한 몸에 받는 것은 협회다. 현대유니콘스 사태에서는 KBO의 무능함이 도마에 올랐고, 팬택EX사태에서는 한국e스포츠협회의 무능함이 도마에 올랐다. 협회 다음으로 욕을 먹는 것은 전임 구단주다. 현대유니콘스는 하이닉스반도체가 욕을 먹었고, 팬택EX는 팬택계열이 욕을 먹었다.

성적이 좋다는 것은 기업으로 보자면 장사를 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사를 잘한 기업이 문을 닫는다? 그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 망했다면, 상품이 불량이라 매출은 높아졌는데 대규모 리콜로 비용이 더 커져 적자가 났다거나, 또는 이익을 남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분식회계여서 투자자가 줄줄이 빠져나가 기업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경우다.

현대유니콘스가 바로 그런 기업이다. 우선 상품이 불량이지는 않았을 테다. 성적도 좋고, 팬도 많다. 야구시합에 대해 리콜을 요구하는 관객은 거의 없다.(간혹 병은 던지지만) 그보다는 둘째에 가깝다. 잘 나가는 줄 알고 덥석 투자를 했더니 엉망이 된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현대그룹이 현대유니콘스를 인수했던 가격은 470억 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그게 매각 때가 돼 살펴보니 80억 원인가로 줄어 있었다. 앉아서 돈이 까인 것이다. 그나마 매각가치를 높이겠다고 주수입원 가운데 하나인 선수 이적을 극단적으로 자제한 결과가 이것이다. 현대가 부실 덩어리 구단을 잘못 물었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투자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이런 기업은 결국 퇴출되게 마련이다.

냉정하게 말해보자. 일단 야구라는 시장은 죽어가는 시장이다. 경쟁자가 너무 많고, 또 강력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를 본다. 그래, 어쩔 수 없는 변화니 할 수 없다. 시장이 변했으면 기업이 변해야지, 시장에게 변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시장이 죽어가니 매출은 점점 줄어든다.

일반적인 기업은 여기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야구단은 그런 걸 안 한다. 아니 한국의 스포츠 구단이란 동네가 그런 걸 하지 않는다. 팬이 줄어들어 입장료와 광고가 줄어든다면 싸게 선수를 키워 비싸게 파는 시스템을 잘 써먹어도 된다. 현대는 이건 잘한다고들 한다.(그나마 발전이다.) 그런데 그걸로는 중과부적이다. 이건 단지 단기 영업기술일 뿐이니까.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잘 나갈때 순이익의 상당 부분을 새 시장을 선도할 제품을 만들기 위한 R&D에 쏟아붓는다. 야구단의 경우 그건 유소년 야구다. 하지만 한국 야구단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 야구에선 '빠따'를 때리고, 어린 선수들은 공부라곤 못한 채 운동 기계로 자라난다. 그러면서 R&D 없이 시장에 흘러나온 스타에만 매달렸다. 시청자는 수준이 높아졌는데 스타의 품질은 예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다. 미국 야구선수들은 책을 읽자는 캠페인에 나와서 '위대한 개츠비'같은 책을 읽으라고 추천한다. 그게 스타다. 음주운전, 폭행, 이혼을 사우나에 목욕가듯 하는 게 스타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건 기업이 아니라 구멍가게가 하는 장사가 된다. 어제는 치킨집이 인기라 치킨집을 차렸다가 내일은 불닭집이 인기라 인테리어 조금 바꿔 불닭집으로 업종전환하는.

그래도 성공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그 구멍가게 시장이다. 팬택EX는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신한은행이나 한화같은 큰 회사들이 눈독을 들인다고 한다. 비용이 적은데 마케팅에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둘 다 모두 젊은 층에게 인기가 없을 회사다. 10대 청소년들이 은행이나 화약회사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기업에게 젊은 층은 '기업의 미래'다. 직원으로 뽑기 위해 그렇고, 장기적으로 고객이라 그렇다. 현대유니콘스를 사서 젊은 층 가운데 100만 명을 '친 신한은행 파'로 만들려면 해마다 200억 원이 깨져야 한다. 하지만 팬택 EX를 사면 50만 명을 사로잡을 수 있는데 적자는 20억만 보면 된다. 게다가 이건 광고비 20억 원으로는 얻을 수 없는 효과다. 그렇다면 선택은 분명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팬택EX도 '지는 시장'의 플레이어라는 데 있다. 구멍가게 규모도 자꾸 줄어들면 장사가 안된다. 불닭집이 찜닭집으로 바뀌는 추세인데 계속 불닭만 고집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기업이 게임단에 뛰어드는 건 이 정도 손해는 감당할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겠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다. 이건 '뽑아먹을 때까지 뽑아먹자'는 비즈니스 논리이지, 시장을 키우려는 움직임은 아닐테니까. 팬택이 유소년 게임선수 육성에 나선 적이 있던가? 아니다. R&D를 하지 않는 것은 이들도 똑같고, 그렇다면 이들도 지속가능성은 없다.

옛날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명확했다. 다만 누구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충격이 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문을 닫을 곳은 문을 닫게 하는 것, 그것이 시장의 비정한 논리이지만, 공공선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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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이끌어가는 기본 동력은 '인센티브'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물질적 인센티브가 근면한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기업이 사회를 위해 환경보호에 힘쓰고 불우이웃을 도우면 사회는 기업을 존경하게 된다'는 정신적 인센티브가 기업으로 하여금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한다. 적절한 인센티브는 활발한 생산과 합리적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유독 이런 적절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분야가 있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는 합리적인 생산과 분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바로 장기기증 분야 얘기다. 장기를 기증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말 자체는 뭔가 음험하게 들린다. 실제로 최근 외신을 보면 파키스탄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신장이 하나밖에 없는 주민이 마을 전제 인구의 40~50%에 이른다고 한다. 장기를 제공했을 때 물질적 인센티브(미화 2500달러)를 주는 브로커들의 장사속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장기 거래는 불법이며, 장기 기증에 대한 물질적 보상도 역시 법으로 금지돼 있다. 그래서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장기를 기증하면 돈을 주는 대신 박수를 쳐 준다. 정신적 인센티브를 줘서 장기기증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센티브는 2500달러라는 물질적 인센티브보다 훨씬 적은 모양이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늘 장기 기증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들이 제한적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공급은 매우 제한적인데도 불구하고, 그 수요는 전혀 제한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선진국 사람들은 후진국 사람들의 장기를 기증받고, 장기를 기증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얌체같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동의한 이타적인 사람들의 장기를 기증받는다. 전혀 공정하지 않은 세상이다.

다행스럽게도 상황을 해결할 혁신적인 방법이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라이프 셰어러즈(http://www.lifesharers.org/)는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킨다. 물질적 인센티브는 장기 밀매를 유발시키기 때문에 가입비는 없다. 대신 회원들은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 이 경우 회원의 인센티브는 유사시 다른 회원으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을 수 있는 우선권을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뇌사 회원의 장기를 필요로 하는 다른 회원이 없다면 장기는 비회원에게 기증된다.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이 먼저 장기를 이식받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리자는 간단한 방법이다. 궁극적으로는 라이프 셰어러즈의 회원이 늘면 늘수록 장기 이식을 받을 확률이 늘어난다는 사회적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암웨이의 창업자 리차드 디보스의 방법도 파워풀하다. 물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때의 부작용이 개인간 이뤄지는 불법적인 장기 밀매라면, 물질적 인센티브를 개인이 제공할 수 없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돈은 개인 대신 보험사가 내고, 그 수혜는 장기 기증자가 받으면 된다는 얘기다. 디보스는 뇌사자가 장기를 제공하면 보험사로 하여금 장기 기증자가 생전에 지명한 사람에게 1만 달러씩을 주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러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장기 기증자가 자신이 지명한 후손에게 적절한 경제적 유산을 남길 수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장기를 사고 팔 수 없기 때문에 밀매의 부작용도 최소화된다. 또 이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보험사로서도 이익이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병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보험사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보험비는 1만 달러의 수십 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인센티브를 준다면 장기기증자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장기기증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건 아마도 이 분야 행정관료들에게 경제 마인드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얀거탑이란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 마지막회에 장기기증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때마침 이 덕분에 장기기증에 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는데, 이런 때일수록 한번쯤 장기기증에 관한 인센티브를 생각해 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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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자는 늘 거기에 있었다.

그 상자의 이름은 FTA. 그 상자를 발견했을 때 옆에는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왼쪽 편에 서 있던 사람은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상자를 열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그 상자를 열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른쪽 편에 서 있던 사람은 상자를 열라고 유혹했다. 그 안에는 보물이 담겨 있을 것이며, 그 상자를 여는 순간 우리의 삶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일 오후 1시. 결국 상자는 열렸다.

미국은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고,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가진 무역대국이다. 이 정도 규모의 두 나라가 관세와 비관세 분야의 시장을 대규모로 개방하는 FTA는 일찌감치 없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의 규모가 한미 FTA보다 크지만, 이건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3개국 사이에 체결된 협정이다. EU도 관세가 없는 경제동맹체긴 하지만 유럽 지역 수십개국이 참여했으니 한미 FTA와는 다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미국도 모른다.

충격이 온다면 그건 한국 경제에 올 가능성이 크다. 경제규모가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판도라의 상자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미국은 한미 FTA 타결로 앞으로 언젠가 가능할 수 있는 시나리오인 일본이나 중국과의 FTA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어차피 지금 미국 경제구조로는 제조업으로 승부를 볼 수는 없다. 자동차는 일본이나 한국이 만드는 게 낫고, TV도 마찬가지다. 옷을 만들려고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그런 건 싸게 잘 만드는 나라에서 수입하면 된다. 미국은 대신 서비스업과 농업에서 승부를 걸었다. 법률 및 의료, 교육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고, 농업분야에서도 한국으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 머리는 미국이 쓸테니 몸은 한국이 열심히 놀리라는 투다. 1인당 경작면적이 한국과 비교도 되지 않게 광활하게 넓은 미국의 농업 기업은 한국의 영세 농업과는 상당히 다르다. 미국 농업은 최소 투자로 최대한의 생산을 얻어내는 첨단 산업이다. 농민의 땀방울 88알을 생각하며 쌀 한톨을 고맙게 먹는 한국인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다. 한국 농가에게 한미 FTA가 재앙으로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국은 또 환경과 노동,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성과를 얻어냈다. 한국이 미국 수준의 환경 및 노동 관련 제도를 갖추려면 지불해야 할 비용이 만만찮다. 지적재산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명분'에서 뒤져 반대를 할 수 없었지만 이런 식의 명분을 강조하는 게 바로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대표적인 비관세장벽이다. 키가 180cm인 성인이 150cm인 중학생에게 똑같은 출발선에서 달리자고 한다면, 그게 '기회의 평등'이라고 주장한다면, 명분은 동의하지만 불평등한 것은 당연하니까. 그래도 한국은 미국에게 이 부분을 양보했다. 미국은 앞으로 이어질 아시아 국가와의 FTA에서 한국의 전례를 당당히 들이밀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도 지식산업 중심으로 변해가야 한다. 이 나라는 자원도 없는 작은 땅의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지식산업밖에 없다고 수십년을 외쳐왔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세계 최고의 미국 서비스산업과 경쟁한다면 한국 서비스 산업의 수준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충격 없이 변화는 없으니까. 농업은 사실상 패배다. 하지만 협상이란 원래 주고받는 것이다. 식탁을 내주고 다른 것을 얻어내는 방식에 대한 반대는 많지만, 아직도 농가천하지대본만 외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은 대신 자동차 분야에서 긍정적인 양보를 얻어냈다. 섬유 협상도 진전을 이뤘다. 모두 한국이 당장 과실을 따낼 수 있는 분야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던 그 때처럼 수없는 질병과 고통이 한국 경제의 앞날에 잔뜩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상자를 열지 말아야 했다고 후회하던 판도라는 아직 남아있는 한 가지를 보고 안도한다. 희망이었다. 상자가 열린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희망은 과연 어떤 것일까. 혹시, 우리는 지금 질병과 고통에는 애써 눈감고 희망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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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프리코노믹스 블로그의 글을 읽다가, 스티븐 더브너의 '그러면 지금 내 친구들은 앞으로 모두 인도로 이사를 가게 되는 것일까?'(Will All My Friends Be Moving to India Now?)가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영국 런던이 국제 금융의 중심지가 되면서 더브너의 금융 관련 분야 친구들이 미국 뉴욕을 떠나 영국 런던으로 대거 이사를 떠났다는 것이다. 돈이 몰리는 곳에 비즈니스맨이 모이게 마련이니까. 문제는 런던 못지않게 최근에는 인도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지금(우리나라라고 다르겠냐마는) 인터넷의 영향으로 신문, 영화, TV 등 전통적인 올드 미디어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올드 미디어가 새 살 길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미국에서 이 상황이 개선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그런데, 경제성장 붐이 일어나는 인도에서는 희한하게도(또는 자연스럽게도) 신문이 무진장 잘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돈에는 국적이 없다. 자본이 런던으로 몰리든, 뉴욕으로 몰리든 돈만 있으면 뱅커들은 그 곳으로 자리를 옮길 준비가 돼 있다. 마찬가지로 글에도 국적이 없다. 영어만 쓴다면 그곳이 미국이든, 영국이든, 인도든 상관없다. 게다가 인도의 영어 사용 인구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야말로 황금시장인 셈이다. 더브너의 저널리스트 친구들이 기회의 땅 인도로 자리를 옮기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미 '보그'도, '월스트리트 저널'도 인도 시장을 노크하는 중이니까.

그렇다면 한국의 저널리스트들은 어떻게 될까. 한글 시장이 결국 관건이다. 우리에겐 지금 북한이란 기회의 땅이 있지만, 아직 시장이 열리질 않았다. 그렇다면 연변은 어떨까. 그곳에는 정보에 목마른 한국어 사용인구가 존재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조선말을 배우려는 연변의 젊은 세대는 영어를 배우려는 일본의 젊은 세대보다 훨씬 적은 모양이다.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럴 게 아니라 차라리 복거일 씨의 말마따나 우리도 영어 공용화를 추진하는 게 나은 일일까?
Posted by 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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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검투사와 같다. 지면 죽는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삼성증권 사장 시절, 스스로를 향해 다짐한 말이었다. 정말 지면 죽을 각오로 일을 해야했다. 그는 관행과 싸웠고, 조직 내부의 저항과 싸웠다. 악바리처럼 싸워댔다. 주위에 친구보다는 적이 많이 생겨났다고 해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테다. 그가 삼성증권을 떠나 우리금융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삼성증권 사람들 일부는 떠나는 그의 뒤에 대고 아쉬움의 눈물 대신 조소를 보냈다. "나 같으면 삼성증권 사장을 하겠다. 밀려나서 저기로 가는 것 아니냐"라면서. 하지만, 그는 삼성증권을 많이 바꿨고, 성과도 나름대로 올렸다. 무엇보다 황영기라는 이름을 널리 알렸다. 두려움의 대명사로.

그래서 우리금융으로 자리를 옮긴 그가 우리은행 행장을 겸임하면서 일선 지점장들에게 속에 칼이 담긴 지휘봉을 선물로 보냈을 때, 지점장들은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올해 실적이 안 나오면 날 잘라버리겠다는 뜻이로구나, 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황영기 체제의 우리은행과 우리금융그룹은 많이 변해야 했다. 복지부동하는 직원들에게는 거침없는 경고가 날아갔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는 직원들은 어김없이 회장에게서 직접 격려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그가 있을 때 주창했던 '토종은행'론은 경영학 교과서에 CEO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 인용될 법한 일이었다. 은행간 경쟁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던 한국 은행판에서 그는 외국계 주주 비율이 50%를 넘는 다른 거대은행들을 싸잡아 비판하며 한국의 은행은 우리은행 뿐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은행들은 발끈했지만, 이에 발끈해 대응할수록 '황영기 페이스'에 말려들어 우리은행을 띄워줄 뿐이었다. 그는 정부가 대주주라는 우리은행의 태생적 약점을 최고의 장점으로 양질전환시켜냈다. 세 치 혀 만으로.

그의 세 치 혀는 이곳저곳에 논란과 분쟁을 일으켰다. 그가 M&A를 언급하면 금융시장 전체가 뒤흔들렸고, 그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나서자 재계 전체가 들고 일어났다. 심지어 정부마저도 그의 독설에서 피해나가지 못했다. 황 회장은 우리금융그룹의 자유로운 성장전략을 통제하는 대주주(정부)의 간섭이 부당하다고 떠들어댄 것이다.

황의 임기가 끝나가자 모두들 과연 황이 어떤 카드를 보일지 궁금해했다. 주주가 싫어하는 CEO가 회사에 남아있을 가능성이란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 하지만 왠지 황은 다를 것 같았다. 칼보다도, 펜보다도 강했던 그의 세치 혀가 이번에는 어떤 마술을 부릴까 사람들은 기대했다. 그러나 황의 입은 독설 대신 자탄을 쏟아냈다. "대주주가 황이 떠드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하는데 어쩌겠느냐."

재경부 제1차관이었던 박병원 차관이 우리금융 회장 자리에 지원했을 때였다. 정부 고위관료가 일개 금융회사 회장으로 내려오겠다며 차관 자리를 박차다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이미 정부가 박 차관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했다는 사인이었다. 회장 공모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의 황금기는 이제 끝났다며 수군거렸고, 소액투자자들은 지분을 팔아치웠다. 그들이 믿었던 것은 '황영기의 우리금융'이었지 '관치 우리금융'이 아니었으니까.

황과 만나 인터뷰를 하던 때 사진기자가 찍었던 저 사진은, 슬픈 듯한 황의 표정을 나타내는 몇 안 되는 보도사진이다. 그만큼 황은 언제 어디서 어떤 앵글로 사진에 찍히든지 관계없이 늘 당당해 보였다. 모두가 그의 한 마디에 주목했고, 그는 은행가 답지않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사람들의 귓속에 메시지를 불어 넣었다. 하지만, 오늘 난 갑자기 슬픈 듯한 황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고 그래서 굳이 저 사진을 뒤적여 찾아냈다.

'님의 침묵'을 인용하며 마지막 월례조회를 하던 그의 모습 때문일 테다. 기룬 것은 다 님이라는 만해의 싯구를 인용해, 그는 자신에게 기룬 것이, 자신의 '님'이 바로 우리은행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보장받지 못한 채 우리금융을 떠나게 됐다. 물론 그는 앞으로 무슨무슨 회사의 사장이 될 수도 있고, 무슨무슨 회사의 고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자산규모 국내 2위였던 금융그룹의 우두머리가 고만고만한 회사 CEO로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고, 친정인 삼성그룹에도 황의 자리는 없을 것 같다. 과연 그가 향할 곳은 어디일까?

우리은행은 황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은행이 '관료의 것'이라고 봐도 좋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은행은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 살린 은행이지, 관료의 재산을 쏟아부어 살린 곳이 아니란 말이다. 당신들의 눈에는 민간의 은행이란 곳이 재경부 차관이 어느 날 휙 내려가 경영을 맡을 정도로 만만한 곳으로 보였던 것일까? 아니다. 두 눈 똑바로 치켜뜨고 감시해줄 테다. 과연 황을 쫓아낸 당신들이 얼마나 우리은행을 살려 놓을지, 얼마나 국민의 피같은 세금을 회수해 국고에 돌려 놓을지 말이다.
Posted by 흰솔

AP가 2006년 4월 "미국 경제에 끼치는 벌레의 경제 파급효과가 570억 달러(약 57조 원)"라고 보도했습니다.

57조 원이면 외환은행을 8개 정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롯데그룹 전체의 1년 매출도 그쯤 되겠군요.

AP는 "이것도 보수적으로 낮춰 추산한 것"이라며 "꿀과 비단 등 곤충이 만들어내는 직접 상품은 포함시키지 않았고 야생 곤충의 효과만 추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도 내용을 약간 옮겨보죠. 어떻게 계산했는지.

1. 야생동물의 영양공급원: 야생동물을 관찰하거나 사냥하는데 드는 비용 가운데 이 야생동물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먹이로서의 곤충의 값 500조 원.
2. 해충컨트롤: 해충 피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익충이 사라졌을 경우 늘어날 예상 피해로 추산한 결과 약 4조5000억 원 이익.
3. 식물 꽃가루 운반: 야생 곤충이 짝을 맺어주는 곡물(양봉 벌 제외)의 경제적 가치 약 3000억 원.
4. 거름: 분뇨를 치워주는 곤충이 없다면 농가에서 파리와 기생충이 크게 늘어날 것. 또 곤충은 분뇨를 땅에 거름으로 되돌려주는데 이런 곤충이 없다면 농가의 거름값도 크게 늘 것. 경제적 가치 약 3800억 원.

뭐 이렇다는 겁니다. 물론 꿀과 비단 외에도 해충들 덕분에 고용이 창출되는 '세스코'같은 회사의 경제적 가치도 판단하지 않았을테고, 화학회사의 살충제 판매 이익도 생각하지 않았겠죠.

그러니까 요점은 우리가 "벌레만도 못한 놈"이라고 누군가를 부르려면 벌레들이 얼마나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누가 이런 식으로 정치인들의 가치도 따져줬으면 좋겠어요. 벌레와 정치인 사이에 더 가치있는 게 뭔지 좀 알 수 있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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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포스팅을 이사시키는 중.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