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머리'에 해당되는 글 127건

  1. 2007.03.13 전라도식 점심식사 7
  2. 2007.03.09 검투사의 패배
  3. 2007.03.07 빵 굽는 타자기
  4. 2007.02.27 프리즌 브레이크 2
  5. 2007.02.24 바니에르, 몬다비
  6. 2007.02.24 사비니 레 본
  7. 2007.02.22 살기 힘든 21세기
  8. 2007.02.21 스트로크에는 위닝샷이 없다
  9. 2007.02.21 16년 만의 서브
  10. 2007.02.21 공을 끝까지 본다는 것 2
토끼머리2007. 3. 1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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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웨이의 영향인지, 생떼밀리옹하면 '슈발 블랑'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슈발 블랑 못지않게 유명한 와인이 샤토 오종(Ausone)이다. 생산량이라거나 각종 평점 등은 슈발 블랑에 못하지만, 독특한 특징과 몇몇 빈티지의 개성 등은 그랑크뤼 1등급의 명성에 전혀 누를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다 오늘 들은 얘기다.)

샤토 퐁벨(Fonbel 2002)은 오종의 세컨드 와인. 점심 식사를 함께 했던 분이 식탁에 턱 퐁벨을 올려 놓으셨다. 점심 메뉴는 떡갈비와 연포탕. 전라도 음식과 생떼밀리옹의 메를로가 상당히 잘 어울렸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조금 아쉬웠던 건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시간을 천천히 두고 병을 좀 열어뒀다가 마셨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다는 것.

전라도 식당의 점심식사에서 생떼밀리옹을 열 줄 알았던 이 멋진 양반은, "거의 모든 음식마다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보곤 하는데, 아무리 잘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도 삭힌 홍어에는 맞는 놈을 못 찾았어요. 그건 그냥 소주가 최고로 잘 어울리죠"라고 말해줬다. 점심이라, 홍어를 먹기 이른 시간이었던 게 다행이었다. 이 식당 홍어가 무척 맛있기로 유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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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검투사와 같다. 지면 죽는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삼성증권 사장 시절, 스스로를 향해 다짐한 말이었다. 정말 지면 죽을 각오로 일을 해야했다. 그는 관행과 싸웠고, 조직 내부의 저항과 싸웠다. 악바리처럼 싸워댔다. 주위에 친구보다는 적이 많이 생겨났다고 해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테다. 그가 삼성증권을 떠나 우리금융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삼성증권 사람들 일부는 떠나는 그의 뒤에 대고 아쉬움의 눈물 대신 조소를 보냈다. "나 같으면 삼성증권 사장을 하겠다. 밀려나서 저기로 가는 것 아니냐"라면서. 하지만, 그는 삼성증권을 많이 바꿨고, 성과도 나름대로 올렸다. 무엇보다 황영기라는 이름을 널리 알렸다. 두려움의 대명사로.

그래서 우리금융으로 자리를 옮긴 그가 우리은행 행장을 겸임하면서 일선 지점장들에게 속에 칼이 담긴 지휘봉을 선물로 보냈을 때, 지점장들은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올해 실적이 안 나오면 날 잘라버리겠다는 뜻이로구나, 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황영기 체제의 우리은행과 우리금융그룹은 많이 변해야 했다. 복지부동하는 직원들에게는 거침없는 경고가 날아갔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는 직원들은 어김없이 회장에게서 직접 격려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그가 있을 때 주창했던 '토종은행'론은 경영학 교과서에 CEO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 인용될 법한 일이었다. 은행간 경쟁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던 한국 은행판에서 그는 외국계 주주 비율이 50%를 넘는 다른 거대은행들을 싸잡아 비판하며 한국의 은행은 우리은행 뿐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은행들은 발끈했지만, 이에 발끈해 대응할수록 '황영기 페이스'에 말려들어 우리은행을 띄워줄 뿐이었다. 그는 정부가 대주주라는 우리은행의 태생적 약점을 최고의 장점으로 양질전환시켜냈다. 세 치 혀 만으로.

그의 세 치 혀는 이곳저곳에 논란과 분쟁을 일으켰다. 그가 M&A를 언급하면 금융시장 전체가 뒤흔들렸고, 그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나서자 재계 전체가 들고 일어났다. 심지어 정부마저도 그의 독설에서 피해나가지 못했다. 황 회장은 우리금융그룹의 자유로운 성장전략을 통제하는 대주주(정부)의 간섭이 부당하다고 떠들어댄 것이다.

황의 임기가 끝나가자 모두들 과연 황이 어떤 카드를 보일지 궁금해했다. 주주가 싫어하는 CEO가 회사에 남아있을 가능성이란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 하지만 왠지 황은 다를 것 같았다. 칼보다도, 펜보다도 강했던 그의 세치 혀가 이번에는 어떤 마술을 부릴까 사람들은 기대했다. 그러나 황의 입은 독설 대신 자탄을 쏟아냈다. "대주주가 황이 떠드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하는데 어쩌겠느냐."

재경부 제1차관이었던 박병원 차관이 우리금융 회장 자리에 지원했을 때였다. 정부 고위관료가 일개 금융회사 회장으로 내려오겠다며 차관 자리를 박차다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이미 정부가 박 차관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했다는 사인이었다. 회장 공모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의 황금기는 이제 끝났다며 수군거렸고, 소액투자자들은 지분을 팔아치웠다. 그들이 믿었던 것은 '황영기의 우리금융'이었지 '관치 우리금융'이 아니었으니까.

황과 만나 인터뷰를 하던 때 사진기자가 찍었던 저 사진은, 슬픈 듯한 황의 표정을 나타내는 몇 안 되는 보도사진이다. 그만큼 황은 언제 어디서 어떤 앵글로 사진에 찍히든지 관계없이 늘 당당해 보였다. 모두가 그의 한 마디에 주목했고, 그는 은행가 답지않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사람들의 귓속에 메시지를 불어 넣었다. 하지만, 오늘 난 갑자기 슬픈 듯한 황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고 그래서 굳이 저 사진을 뒤적여 찾아냈다.

'님의 침묵'을 인용하며 마지막 월례조회를 하던 그의 모습 때문일 테다. 기룬 것은 다 님이라는 만해의 싯구를 인용해, 그는 자신에게 기룬 것이, 자신의 '님'이 바로 우리은행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보장받지 못한 채 우리금융을 떠나게 됐다. 물론 그는 앞으로 무슨무슨 회사의 사장이 될 수도 있고, 무슨무슨 회사의 고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자산규모 국내 2위였던 금융그룹의 우두머리가 고만고만한 회사 CEO로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고, 친정인 삼성그룹에도 황의 자리는 없을 것 같다. 과연 그가 향할 곳은 어디일까?

우리은행은 황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은행이 '관료의 것'이라고 봐도 좋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은행은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 살린 은행이지, 관료의 재산을 쏟아부어 살린 곳이 아니란 말이다. 당신들의 눈에는 민간의 은행이란 곳이 재경부 차관이 어느 날 휙 내려가 경영을 맡을 정도로 만만한 곳으로 보였던 것일까? 아니다. 두 눈 똑바로 치켜뜨고 감시해줄 테다. 과연 황을 쫓아낸 당신들이 얼마나 우리은행을 살려 놓을지, 얼마나 국민의 피같은 세금을 회수해 국고에 돌려 놓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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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머리2007. 3. 7. 14:40
1292+876+2214+1620+2634=9928

반올림해서 1만 자. 200자 원고지 50매 분량이다. 공백은 글자수 계산이 안 되니까, 사실 50매가 넘는 분량이다. 폴 오스터의 책 중에 'from hand to mouth'라고 한국에는 '빵 굽는 타자기'로 번역 출간된 책이 있다. 하루벌어 하루살기라는 뜻의 원제도 좋지만, 절묘하게 빵 굽는 타자기로 번역한 번역자(또는 편집자)의 센스도 훌륭하다.

무슨 말이냐면, 저 수치는 오늘 쓴 기사의 양이다. 물론, 오늘 하루에 다 쓸 수는 없고, 4시 전에 마감을 해야 하는 관계로 어제부터 미친 듯이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 써냈다는 사실이 정말 대견스러울 정도다. 이런 식으로 글을 써대면 일주일에 책 한 권씩 출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스스로가 훌륭할 수가.

한편으로는 비참하다. 이런 식의 노동은 사람이라기보다는 타자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스스로에 대해 창조적인 글을 쓰는 한 명의 글쟁이라는 생각을 갖기보다는 글 쓰는 노동을 하는 손가락 노동자가 된 기분이 느껴진다. 이렇게 비참할 수가.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07. 2. 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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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드라마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드라마는 영화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1을 보면서 속으로 빨리 결론이 나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곰 플레이어의 재생속도를 2~2.5배로 맞춰놓고 속성으로 보질 않나, 틈틈이 짬짬이 나오는 군더더기(로 생각되는) 장면들은 10초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며 보질 않나...

하지만 생각해보면 무조건 긴 드라마를 싫어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네멋대로 해라'같은 드라마는 시리즈가 빨리 끝날까봐 두려워했던 기억이 나고, 스타워즈 같은 영화는 몹시 길어 하나의 장편 영화라기보다는 일종의 드라마처럼 여겨졌을 정도인데, 영화만으로는 여전히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 '외전' 격인 드라마가 따로 제작되기를 바랠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무리봐도, 이 드라마에는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모두가 결여돼 있다. 공감도 되지 않고, 세계관이 탄탄하지도 않다. 시즌1 막바지에 미국 대통령 암살까지 등장하는 데 이르러서는 아예 웃음이 나오더라. 아직 시즌2를 못 보긴 했지만, 이러다간 탈옥수 몇 놈이 세계를 구하는 독수리5형제가 될 판이다.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07. 2. 24.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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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구하질 못해서 2003년 것을 올리지만, 사실 우리가 마셨던 것은 2002년 빈티지였다. 바니에르란 샤또의 이름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포도 품종 자체가 흔히 마시는 품종이 아니었다. 무르베드르(Mourvedre) 90%, 그르나슈 10%의 블렌딩. 무르베드르라는 포도가 가진 특징이란 게 아마도 몹시도 거칠고, 꽤나 스스로의 향을 강조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조금 더 기다렸어야 마땅했겠지만, 디캔터에 옮겨놓으면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억지로라도 마셔버리고 말겠다는 사람들이 가득한 모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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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바니에르가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후다닥 마셔버렸던 이 와인이 더 맘에 들었다. 그 유명한 로버트 몬다비. 소노마와 나파 밸리 남단의 카네로스 지역. 캘리포니아 와인은 딱 미국인 같다. 직설적이고, 근면하며, 성격이 쾌활해 쉽게 사귈 수 있다. 프랑스 와인처럼 복잡미묘하고 섬세한 맛은 없지만, 분명한 뭔가가 필요할 때엔 캘리포니아가 낫다.

업무로 만나는 분들과 함께 갔던 곳은 로마네 콩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 집은 뭐가 그리 대단한 것 같지도 않은데 값도 비싸고, 서비스도 그냥 그 타령이다. 그런데도 꼭 일행 중에 여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들 그러는 걸까. 이름 값이란 건 무섭다. 정말.

p.s. 지나고나서 알고보니, 카네로스의 자랑은 메를로가 아니라 '피노 느와'다. 그 까다로운 피노 느와를 자라게 할 수 있는 서늘한 바람이 특징이라고... 피노 느와만큼이나 유명한 다른 포도는 샤도네. 메를로는 그저 '재배되기는 하는' 정도의 품종이었구만. ㅜㅜ; 좋던데 말이지...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07. 2. 2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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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와인은 어려워서 다가서기 힘들 줄로만 알았다. 우리가 아는 부르고뉴 와인이라고 해봐야, 에세조, 리시부르 등 도저히 돈을 내고 먹을 수 없는 엄청나게 비싼 와인들이 대부분이니까. 게다가 피노 느와 하나로만 만드는 와인이란 건, 사람 기를 죽이기 십상이다. 부르고뉴의 피노 느와를 마시려면 내 혀가 더 섬세해야 하고, 내 자세도 더 느끼려고 노력해야 될 것만 같았다. 여러 종류의 포도를 섞어 만들어 마시다보면 자유롭고 화려하게 변화하는 보르도의 블렌딩 와인과는 사뭇 다를 것으로 생각한 거다.

사비니 레 본의 와인들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다. 대학 동창들과의 술자리, 선배가 호기롭게 "예산은 15만 원이니까 적당히 골라봐"라고 말했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냉큼 피노를 고르려고 했고, 서울와인스쿨에서는 사비니 레 본 레 라비에르와 뉘 생 조지를 추천했다. 선택은 사비니 레 본, 나쁘지 않았다.

선배가 추천한 가게는 서울와인스쿨. 얘기는 전에도 들어봤는데, 직접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도저히 와인샵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건물의 3층. 허름한 곳에 담배연기와 치즈향이 가득했고, 곳곳에서 와인병들이 부산스레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고, 비싸지도 않은 곳. 다만 집에서 너무 멀다는 게 흠이다.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07. 2. 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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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10년 전만 해도 분명히 '에반게리온' 정도만 봐주면 '취향이 괜찮은 사람' 취급을 받곤 했다. 당시에는 사실 별로 봐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적었기 때문에 TV 드라마 쯤은 무시해도 괜찮았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면서 요즘엔 툭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몰 취향'의 사람 취급을 당한다. 이 유명한 프리즌 브레이크도 이제서야 보기 시작했으니...

유재석이었나? 하여튼 그런 개그맨이 누군지 몰랐다는 이유로 "간첩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석호필'이 미국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어이없어 하다가 주위 사람들이 날 더 어이없이 쳐다봤다. 요샌 아예 '미드족'이란 것도 생겨서 '미'국 '드'라마를 열심히 본다던데, 알고보니 내 동생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다. 세상을 따라잡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나름 극장에서 영화는 열심히 보고 있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이미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를 모두 보고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아, 정말,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 인터넷으로 먼저 보고선 뭐가 자랑이라고,,, 라고 생각했으나, 나만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린 것이다.

최근엔 한국 드라마까지 날 가슴아프게 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이라거나 '궁'과 같은 걸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죄는 아닌데도 말이다. 분명히, 10년 전에는,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몇 편과, 선댄스 영화제 출신의 영화만 꾸준히 봐주면 '괜찮은 취향을 가진 사람'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그러고 있다가는 한물 간 30대 취급 받기 딱이다. 아니, 내가 이미 그렇게 돼 버린 것인지도 모르지. 21세기는 어렵다. 정말.

Posted by 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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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땀흘려 번 월급을 갖고 도박을 하는 사람은 없다. 티오프를 하면서 무조건 홀인원만 노리는 사람도 없다. 포커판에서 시작부터 말도 안 되는 레이스를 거는 사람도 없다.

보수적이라는 반증일 수도 있지만, 이런 건 사실 인생의 지혜와 같은 거다. 삶이라는 레이스에서 적어도 지지 않기 위한 지혜.

테니스의 스트로크 랠리가 그런 게 아닐까. 지지 않으려면 일단 공을 제대로 리턴해야 한다. 무조건 위닝샷만 노리는 사람은 안전한 리턴을 노리는 사람보다 실수가 잦게 마련이다. 테니스는 공격적인 스포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실수를 적게 하는 사람이 이기는 경우가 훨씬 많은 스포츠다. 우리는 그걸 '확률 테니스'라고 부른다.

'이기기 위한 시합'이라는 건 얼마나 재미없겠느냐마는, 적어도 크게 지지 않기 위해 월급의 100%를 레이스에 걸지 않는 지혜는 필요하다.

찬스가 왔을 때,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도 도박을 걸고, 티오프에서 홀인원을 노리며, 첫 판에서 레이스를 걸고, 패스트푸드 점에서 61년산 슈발 블랑을 따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찬스가 왔을 때의 얘기다. 말하자면, 지금은 리턴을 할 시기라는 거다. 지지 않기 위한.

스트로크에도 위닝샷이 있다. 하지만 매 순간 위닝샷만 때려댈 수는 없다.

이날의 게임 스코어는 6-3, 8-6. 불행히도 또 참패. 하지만 가능성이 보였다.

Posted by 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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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에이스. 그 말을 할 때면 혀끝에 울림이 느껴진다. 입 밖에 소리내어 발음하고 싶지만 정작 그 여섯 글자를 발음할 수 있는 자격을 따기란 네 번 중에 한 번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네 번 중에 한 번이라니, 쳇,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물론 열에 하나도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는 거다. 말하자면.

그래서 서브에서 중요한 건 에이스가 아니다. 오히려 포인트는 에이스를 노린 퍼스트 서브가 폴트 됐을 때 시도하는 세컨 서브다. 세컨 서브는 상대방의 리턴을 다시 공격 찬스로 노리기 위한 '바둑의 첫 수'다. 서브를 두고 있을 때, 나는 흑돌을 든 기사의 심정처럼 비장하다.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맞서 첫 수로 승부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기사의 비장함.

하지만,
역시,
에이스가 들어갔을 때가 가장 기쁘다.

그동안 나는 서브를 잊었다. 에이스를 넣었던 순간을 잊었고, 세컨을 성공시키는 노련함도 잊었다. 처음 서브를 배웠던 중학교 1학년 까까머리 시절의 그 서브를 나는 잊었다.

그 후 다시는 서브를 넣지 못했다. 몇 년 뒤 코트를 찾으면 다시 포핸드 스트로크-백핸드 스트로크-포핸드 발리의 정해진 순서를 답습하곤 했다. 누구도 '시합을 위한 테니스'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박제된 곰 머리마냥 미련하게 포핸드 스트로크를 반복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서브를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클레이코트에서였다. 낙엽이 바닥에 톡, 소리를 내며 떨어졌을 때, 갑자기 공을 왼 팔이 뻗어가는 왼 발 앞 머리 위로 높이 던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라갔다 떨어지려는 공을 톡, 하고 때렸다. 공은 제 자리에 꽂혔다. 아주 약하게. 에이스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내게는 에이스의 기쁨 못지 않은 '서브의 귀환'에 따른 기쁨의 엔돌핀이 샘솟았다.

몸에 힘을 뺐다. 갑자기 찾아온 16년 전의 기억에 허리와 어깨와 팔과 라켓 헤드를 내맡겼다. 이날 시합에서 나는 몇 차례 발리를 노리고 네트로 다가온 상대방의 머리 위로 높이 뜨는 로브를 성공시켰고, 스트로크 랠리에서는 상대방을 뒤로 주춤거리게 만들 정도의 멋진 톱 스핀 드라이브도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16년 전의 서브가 되돌아온 뒤 상대방에게 퍼스트 서브를 실패한 직후에 찾아왔다. 에이스를 노렸는데 공은 무심히 서브 라인 뒤편으로 떨어졌고, 상대방은 내 세컨 서브를 톡, 하는 서브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 때 나는 모험을 걸었고, 세컨 서브에 힘을 실었으며 에이스를 잡을 수 있었다.

늘, 모험과 도전에 따른 보상이 가장 달콤하다. 다시는 빌빌거리는 서브를 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날의 게임 스코어는 6-3, 6-0. 불행히도 참패.

Posted by 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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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을 끝까지 본다는 것'은 그릇된 미신과도 같은 논리다. 테니스 선수의 서비스 스피드는 평균 150km. 랭킹에 들어가는 남자 선수들의 서비스는 200km가 넘는다. 앤디 로딕같은 경우에는 230km 이상도 자주 때려대는 걸로 아는데, 그걸 끝까지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스스로의 실력이 엄청나게 대단하다는 뜻이다.

선수가 아니더라도 일반인이 쳐대는 공의 스피드도 엄청나다. 100km 정도는 훌쩍 넘기게 마련인데 그걸 끝까지 본다는 것도 나같은 범인의 기준에서야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앞에서 날아오는 공이야 볼 수 있다고 쳐도 '끝까지'라고 말할 때 '끝'은 라켓면에 공이 부딪히는 임팩트의 순간인데 그 순간은 공이 몸의 옆에 위치한다. 내 옆구리 방향으로 시속 100km가 넘게 빠져나가는 공을 끝까지 볼 수 있으려면 지금 정도의 훈련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공을 끝까지 본다고 말하는 건 대부분 실제로 그렇게 한다기보다, '공을 끝까지 봤다는 환상'을 갖는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런 환상이 중요하다. 공을 끝까지 본다는 환상 따위에 사로잡히지 않겠다며 공을 끝까지 보지 않는 현실적인 사람은 결국 게임에서 지고 만다.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 '성실한 사람이 보상을 받는 직장', '착한 사람은 언젠가 인정을 받게 마련'이라는 환상 따위에 사로잡히지 않겠다며 대충 실용적으로 살다 보면 결국 불행해지게 마련이다. 그 환상이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게 비록 환상일지라도.

Posted by 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