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lane'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07.03.23 <300>을 위한 변명 3
  2. 2007.03.20 연금술사
  3. 2007.03.18 정답
  4. 2007.03.13 아이스크림 2
  5. 2007.03.11 SHOW 2
  6. 2007.03.05 연애 소설 읽는 노인
  7. 2007.02.22 영화볼 자유
  8. 2007.02.22 아치와 씨팍
  9. 2007.02.21 사랑해?
  10. 2007.02.21 [블러디선데이]그 피의 일요일을 기억하라
Purslane/극장대기실2007. 3. 2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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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는 객관적 현실의 증거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대신 전쟁시詩의 역할을 하는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쟁 사진은 전사들이 지속해야만 하는 일들을 독려하는 사명, 그런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최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버지의 깃발>의 모티브가 된 조 로젠탈의 사진 역시 그런 지점이 있었다. 전쟁의 위해 의도된 사진들은 역할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극도로 아름답게 만든 전쟁 영화 한편을 보고 열광했으며, 그 바르지 못한 묘사의 불편함을 애써 잊고 즐기려 했다. 마음 한편에서는 창피했지만 그것이 영화 <300>이 가진 미덕이다. 이 영화는 수세기동안 많은 예술작품을 통해 비난 받으면서도 재생산되어온 잔인한 전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것을 그동안 보아왔던 아름다우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 한편으로 보아야 한다. 프랭크 밀러가 묘사하고 싶었던 숭고함을 담은 한편의 그림. 거기서 과장된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나 역사적 올바름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것을 전쟁에 대한 미화로 여기고 끈질기게 감독을 따라다니며 현재 미국과 비교하며 질문을 던지는 것은 기대했던 대답을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300>을 즐겁게 감상하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를 애써 무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300>을 재밌게 본 변명이다.

<300>은 레오니다스 왕의 수련으로 시작된다. 어린 레오니다스는 가녀린 몸을 지녔지만 눈빛은 야수의 그것이다. 그는 자기 몸집보다 큰 방패를 어루만지며 전사로 자란다. 이 의젓한 소년은 강인한 왕으로 성장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용맹하지만, 자상한 남편이기도 하다. 이 완벽한 남자의 패기가 페르시아 대사를 구덩이로 기세좋게 처넣으면서 전쟁을 선포한다.

아, 전쟁을 시작 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에도 아시아 놈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레오니다스 왕의 결단은 용감하기는 하나, 온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300명의 전사 역시 모두 역사에 남을 만한 전투를 벌인 후 전사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고 머리대신 몸을 쓰겠다는 선언에 그것에 기꺼이 동참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길을 떠난 300명의 전사들은 페르시아 군을 향해 가던 중 죽어가는 소년을 만난다. 이미 쑥대밭이 된 마을은 불타고 있고, 주민들은 커다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스파르타인들은 ‘신에겐 자비심도 없는가’라는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며 더욱 비장한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후광이 비치는 나무에 끔찍하게 사람을 매단 이모탈과 돌과 페르시아인 시체를 적당히 반죽해 벽을 만드는 스파르타군과 무엇이 다른가. 라고 말하면 안된다.

그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로 훈련받은 스파르타군이다. 초콜릿 바같은 복근을 자랑하며 단단한 방패와 새빨간 망토를 휘날리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파르타군이다. 후에 스파르타군과 맞붙는 이모탈의 가면이 벗겨지면 레오니다스가 돌려보낸 곱사등이 에피알테스보다도 추한 얼굴을 하고 있다. 괴물처럼 생긴 에피알테스가 군에 합류하겠다고 따라온 것을 돌려보내고, 그가 크세노크세스에게 뒷길을 알려주는 첩자 노릇을 하는 모습을 보며 못생기고 탐욕스러운 놈이라고 욕해도 안된다.

300명의 완벽한 대열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균열이 필요하고 그런 역할을 해줄 괴물같이 생긴. 그래서 사람인지 괴물인지 잘 모르겠는 인물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레오니다스 왕이 초콜릿 바는커녕 크런치 바 같이 생겨서 대열에 합류할 수는 없지 않냐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는데 못알아 들은 것뿐이다. 그는 애초에 스타르타군이 될 수 없는 외모를 타고 났다. 그러니까 여기서 추한 외모에 탐욕스럽기까지 하다고 이분하거나, 스파르타군이 자기들끼리 뭉쳐서 잘난척한다고 해도 안된다.

그들의 용맹스러움은 똑같은 짓을 해도 페르시아군의 잔인함과는 다르다.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는 페르시아인들을 떨어진 감 줍듯이서 창으로 푹푹 찔러서 죽이고, 동시에 사과를 우적우적 먹으며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들에겐 일상이다. 전사로 자란 그들에게 페르시아인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전투가 시작될 뜨거운 문에 도착하자마자 수만의 페르시아인을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웃는 것은 두려움은 커녕 제대로 싸울 상대가 기다리고 있음을 기뻐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한편의 서사시이다. 고대의 구술 서사시이다. 실제로 <300>은 누군가의 목소리로 진행되며, 그것이 마지막에 떠난 댈리오스인지는 그 보다 후대의 떠돌이 시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조들이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는지를 적당한 과장을 섞어서 모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호메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스파르타인들의 전투엔 제우스가 폭풍으로 도와줬다고 말하면서 눈앞에서 전투가 펼쳐지는 것처럼 묘사해주는 것이다. 일리아스같은 서사시를 구술로 들으면 지루할 정도로 상세히 묘사되는 친척에 친구에 형제의 전투 장면들로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죽어갔는지 듣느라 며칠 밤을 새고도 남는다. 그래도 우리네 조상이야기이니 흥미진진할 것이다. 눈먼 장님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지팡이를 치면서 일리아스를 읊어주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뭐, 호메로스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는지는 정확히 밝혀진바 없다)

구술로 전해지는 서사시의 형식을 취하면서 <300>은 역사적 사실성을 보증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난다. 증거나 기록의 역할에서 발을 뺀다. 이는 어떤 과장된 묘사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로서 훌륭하게 작동한다. 일당 백으로 싸우는 첫 번째 전투씬에서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되는 움직임은 진짜 서사시를 그리는 듯하다. 철저하게 스파르타인의 편에 서서 우리네 조상들이 얼마나 멋진 전사들이었는가를 생생하게 묘사해주는 역할에 충실하였고 그것은 성공했다. 당신이 스파르타의 후예가 아니라면 불편해도 참아라. 이것은 철저히 그들의 영웅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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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서재2007. 3. 20. 11:37

  연금술사는 나르키소스의 전설을 알고 있었다.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를 찾았다는 나르키소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결국 호수에 빠져 죽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수선화(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오스카와일드의 이야기는 결말이 달랐다.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의 요정 오레이아스들이 호숫가에왔고, 그들은 호수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왜 울고 있나요?"
  오레이아스들이 물었다.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어요."
  호수가 대답했다.
  "하긴 그렇겠네요. 우리는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에 반해 숲에서 그를 쫓아다녔지만, 사실 그대야말로 그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숲의 요정들이 말했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호수가 물었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놀란 요정들이 반문했다.
  호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게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연금술사는 감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도 소리내어 감탄했다. 상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렇게 서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나가 아닌 두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나르키소스가 호수를 보았더라면 슬프게 애도할 일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이 인상적인 시작의 세페이지만으로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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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길모퉁이2007. 3. 18. 16:26

무슨 논술학습지였는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논술 광고였다. 선생님이 학생의 글을 보면서 '글은 있는데 생각이 없네'라고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뜨끔했다. 주구장창 길게 늘어뜨리긴 했는데,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고 질책하는 것 같다. 긴 글쓰기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생각을 만드는 일은 더 어렵다.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고 생각하는 척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나보다도 어려보이는 예쁜 논술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창피했다.

써야할 글이 세개다. 어느 하나도 치열한 고민없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이렇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뭐가 더 급한 건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하려니 마음만 급해진다. 정답이 없는 선택은 늘 힘들다.

요즘처럼 내가  한심해보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나 자신에게 창피했던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우울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상황을 바꾸는 것.

지레 겁먹고 뒤로 물러서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분명히 또 포기해 버렸다고 자책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라고 위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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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길모퉁이2007. 3. 13. 11:23
점심먹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말했다.
넌 아이스크림에 약한 것같애.
뭐라고?
아이스크림에 약하다고. 아이스크림 들고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쳐다보잖아.
아. 그렇지..
뺏어먹고 싶은 눈빛이야.
응. 먹고싶어.

거참 이상하다. 집에선 냉동실에 가득 채워져 있는 아이스크림은 나만 못먹고 없어지기 일쑤이고, 그렇다고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는 경우도 거의 없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가끔 사먹긴 하는데 그땐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같은 단맛이 땡기는 경우다. 점심을 먹고 나도 커피를 마시지 아이스크림을 떠올리지 않는다. 평소에는 정말 까맣게 잊고 지낸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는 사람만 보면 그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딱히 각성을 하는데는 종목을 가리지 않지만 특히 콘에 약하다. 길에서 누군가가 들고다니는 걸 보면 참을수 없이 먹고싶어진다. 그래서 소프트한 콘이 어울리지 않는 여름이 되기 전에 여러번 사먹게 된다.  

슬슬 아이스콘을 먹을만한 날씨가 되어간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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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길모퉁이2007. 3. 1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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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시험삼아 WCDMA 폰을 사용하게 되었다. 여행간 여자친구를 대신해 불어로 음식을 주문해주던 남자친구의 그 쇼. 요즘 SHOW는 다양한 활용법을 알려주느라 한창이다. 세상에 나를 중계방송하라거나, 세상에 없던 SHOW를 하란다.

컴퓨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화상통신를 사용하게 된지 벌써 몇년되었지만 사실 집에서 화상전화를 사용하는 일은 별로 없다. 비용이 비싼 것도 아니고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도 않은데 왜 안쓰는 걸까.

쓰려고 해본 적도 없지만 우연히 화상전화를 사용하게 되니 그 이유를 알 것같다. 화면에는 내 얼굴 뿐만 아니라 주위의 환경도 함께 등장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상 개입도의 정도가 상당하다. 부시시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받아야 하고, 엘리베이터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사실은 뻘쭘하고 당황해서 그냥 끊긴 했지만. 상대와 나 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내가 누구와 통화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니 그 역시 민망하다.

대신 SHOW를 할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같다. 몇가지 쑈도 떠올랐는데, 뭐, 일단 나중을 위해 보류. 위치추적 기능이 나오고, 나도 모르게 내 위치를 추적당하는 끔찍한 상상을 하곤 하는데 이제보니 영상통화도 만만치 않다. 범죄상황에 빠졌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언제 어디서고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최첨단 기능이 별로 반갑지만은 않다.
 
그러니까 화상전화는 분명히 재미는 있는데 일상생활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기는 불편하다. 친구들이랑 놀면서 수업중이라고 거짓말도 못하고, 오전 11시쯤까지 늦잠자다가 잠옷입고 딩굴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민망하고, 약속에 늦었는데 거의 다 왔다는 말도 못할 것 아닌가.. 그래도 조만간 이 기능이 보편화되면 여러가지 버전으로 자신의 모습을 예쁘게 꾸며서 대체영상도 만들게 될 거고, 봉태규가 도서관 배경을 들고다니던 것처럼 깜찍한 거짓말 기능이 생길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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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서재2007. 3. 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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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 정창 역 열린책들 2006.02.25

노인이 책을 읽는 방법은 독특하다. 문장을, 단어를, 음절을 천천히 음미한다.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는다.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다.

많은 책이 필요하지 않다. 치과의사가 6개월마다 전해주는 두 권이면 족하다. 그는 느리지만 섬세하다. 카누에 떠내려 온 금발의 시체를 보는 눈은 탐정 같으며, 목숨을 걸고 살쾡이와 마주 설 때는 호흡마저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슬프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연애 소설만을 고집하는 노인의 취향은 어쩐지 이상하다. 말라리아에 걸려 밀림으로 떠나온 지 2년 만에 죽은 연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 그의 애도는 너무 짧다.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간 밀림을 향해 분노하지만 이내 밀림은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정없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밀고 들어오는 양키들의 폭력성에 저항해도 결국 읍장을 도와 살쾡이를 잡으러 밀림으로 들어간다. 어쩔 수 없는 현실과의 타협. 노인은  공존할 수도 그렇다고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는 것들과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

밀림은 사랑하는 이를 앗아가기도 했으나 평생을 두고 적응해야 할 대상이며, 가족처럼 지냈던 수아르 족 인디오들 역시 그를 친구로 대했을 뿐이다. 노인은 양키에게 죽은 수아르 족 친구의 복수를 했으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게 했다는 이유로 부족을 떠나게 된다. 인디오들은 떠나가는 그가 멀어지자 발자국을 지운다. 어쩌면 딱 그만큼의 거리가 가장 행복한 삶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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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극장대기실2007. 2. 2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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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강남구 신사동에 <클래식시네마 오즈>가 개관했다. 고전영화만을 상영하겠다는 취지로 도로시관과 토토관 각각 200여석정도의 소규모 상영관으로 시작했다. 고전영화중에는 미개봉작들도 많았으므로 판권과 자막작업등의 초기비용의 문제로 연회비 4만원정도에 회원을 모집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여의도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꿀단지라도 만난 것처럼 얼른 회원에 가입했다. 극장은 여의도에서 가깝지 않았고, 집에서도 가깝지 않았지만 10~11시에 영화가 끝나더라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이지 라이더>나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보고 돌아가는 길은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즈는 채 일년도 지나기 전 경영에 어려움을 보였고,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일반 상영관으로 전환해야 했다. 더 이상 클래식영화는 볼 수 없게 되었고, 이후로 지금까지 상영은 계속되고 있다. 판권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은 물론이고, (그놈의) 스크린쿼터가 예외없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2003년부터 영화진흥위원회는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11개 예술영화 전용관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예술 영화 상영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영진위는 1년에 7천7백만원을 보조하는 대신 연간 상영일수의 5분의 3(219일) 이상을 예술 영화 상영에 할애할 것을 의무화했다. 더불어 스크린쿼터제에 따라 국내 예술영화 의무상영일수(106일)도 지키도록 했다.

실질적으로 국내 예술 영화가 106일을 상영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지도 의문이거니와 예술 영화의 기준도 사실상 매우 모호하다. 지속적으로 제기된 이와 같은 문제는 최근 국내 예술 영화 상영일수는 70일로 줄이고, 예술영화의 범주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작지원하고 배급을 지원하는 작품, 국내 에니메이션, 서울지역 시장점유율 1%이내인 국가의 작품 등이 해당하는 영화를 포함하기로 결정되었다.

코아아트홀은 결국 경영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폐관했으며, 서울아트시네마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필름포럼과 함께 허리우드 극장의 한 개관을 대여했다. 종로 주위의 극장들은 멀티플랙스로 전환하여 최근 속속 재개관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위탁 운영하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에 지난해 지원한 금액은 3억 4천 4백만원이다. 여기에는 전용관 임대료와 번역 자막지원 등 프로그램 기획 지원금만 포함 되어있기 때문에 필름을 수급하고 상영하는 데 드는 모든 운영비는 자체 사업을 통해 마련해야 하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처럼 거대배급사가 멀티플렉스 극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한 상영관 독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개 상영관에서 10개 영화를 볼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꿈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CGV에서는 CJ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메가박스에서는 쇼박스 영화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폭력에 관객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영화를 보고있다.

고전영화, 예술영화는 늘 어렵고 따분하지 않다. 소수 시네필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단관 장기상영으로 새로운 상영방식을 모색했던 김기덕 감독의 <활>은 극장측의 변심으로 2주만에 내려왔으며,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은 좋은 관객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 불가능해보인다. 대안을 찾던 두 영화의 참패는 씁쓸하다. ‘오즈’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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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극장대기실2007. 2. 2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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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와 씨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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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lane/극장대기실2007. 2. 21. 23:54

멜로 영화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이야기는 이야기라는 것을 지어서 만들어낸 태초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되어오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같이살다 쫒겨났지만 그래서 헤어졌단 얘기는 없다. 쫒겨나긴 했지만 애도 낳고 잘살았으니 우리가 이렇게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다니지 않는가.

누가 누구를 만나고 헤어지는 남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일종의 안도감을 얻기도 하고 맞아 나도 저랬어하면서 공감하기도 한다. 더이상 변조될 것이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등장했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을 기둥으로 친구의 애인을 만나는 것은 사건도 아니고, 불륜이나 동성적 만남에 친족과의 조합도 모자라 이젠 장인어른과 사위만 남은 것 아니냐는 말도있다. 뭐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멜로영화를 마주하기 위해 기꺼이 의자에 앉으며 때로는 아낌없는 눈물을, 때로는 가슴이 먹먹한 기분이 느껴지기를 마다않는 것이다.

사람마다, 시기마다(연애중이거나, 지겹거나, 막 헤어졌거나, 연애사가 복잡한 중이거나, 아무라도 좋으니 만나고 싶거나) 보고싶은 영화가 다르기도 하겠으나 몇가지 타입을 나눠보자. 분류상 여기에도 속하고, 저기에도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대충 나눴다. 내 맘대로.


1. Fantasy

i.현대판 왕족

많은 여성들이 환호하는 몇몇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달리는 남성, 혹은 여성만이 재현할 수 있는 영역이다. 휴그랜트, 줄리아 로버츠가 자주 등장하는 영화들이다. <러브 액츄얼리>의 영국수상과 비서의 연애라던가, <노팅힐>의 헐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와 구멍 서점의 주인이 사랑에 빠지는 설정등이다. 산드라 블록과 휴그랜트가 재벌로 등장한 <투 윅스 노티스>나 메이드로 등장하는 제니퍼 로페즈와 유력한 상원의원후보 랄프 파인즈의 <러브 인 맨하탄>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최소한 한쪽은 현대판 왕족으로서 현실에서는 거의 연애하기 불가능한 설정으로 가진건 많은데 유독 사랑에 어설프다. 과도한 좌충우돌에 우스꽝스러운 분장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래봐야 재들도 우리랑 비슷하네 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식이다.

ii.변신은 무죄

못생긴 소년, 소녀가 어느날 짠 하고 변신해서 나타난다. 변신의 원인은 사랑의 힘이거나 돈의 힘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잘보이려고 대충 입던 옷도 근사한 수트로, 끼고다니던 뿔테안경도(필수) 렌즈로, 헤어스타일도 바뀐다. 혹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숨겨진 공주나 왕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는데 평소에 하고다니는 모습은 형편없었지만 대체로 똑똑거나 공부는 잘하는 부류들이다. 중간에 스타일을 바꿔주는 조력자가 반드시 등장한다.

<타이타닉>에서 레오가 계단위에 서있던 장면을 떠올리시면 되겠다. 변신하고 나타나면 다들 일정비율로 동공을 확대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프린세스 다이어리>나 <쉬즈 올댓>, 혹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자주보이는 전형적인 설정되시겠다. <신입사원>의 한가인의 변신도 역시 많은 남성들에게 무죄선고를 받았다.

iii. 신파성 멜로

왕족보다는 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이 역시 보기 힘든 유형의 종족이다. 이른바 순정파. 과거엔 남자 바지자락에 매달리는 장면을 연상시키며 많은 여성들이 투신하였으나 최근에는 남성에게 많은 배역이다.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씨가 연기한 석중이가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첫눈에 반해 당신의 과거는 묻지 않겠으며, 무슨일이 있어도 평생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고백은 핫초코에 설탕 들이붓는 식이다. 게다가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대도 정말 그렇게 하지 않는가. 가끔은 사랑해서 떠나기도 한다.

지고지순하면서도 이룰수 없는 사랑으로 불치병, 집안의 반대등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으며 로미오군과 줄리엣양을 시작으로 <내 머릿속의 지우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늑대의 유혹>등이 있겠다. '이게 진짜 사랑이지'라고 도도하게 팔짱끼고 있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좋아하지 않는 유형이라 떠오르는 영화가 별로 없다.
 

2. 그래 맞아!

i. 예쁘지만 어설픈 그녀

현대판 왕족보다는 조금 덜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영화들이다. 한때 로맨틱하면 대명사였던 맥 라이언류의 영화들을 떠올리시면 되겠다. 아련한 추억이 된 <프랜치 키스>, <유브갓메일>,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에 등장하는 좌충우돌 귀여운 모습이었으나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떠났다. 맥라이언이 기획한 <웨딩 플레너>의 제니퍼 로페즈도 이에 질세라 <러브 인 맨하탄><저지걸>등을 연작중이다.

평범하면서 당당한 여성 캐릭터와 잘생기고 능력좋은 오빠들이 대부분이며, 조력자로 친구들이나 쿨한 부모님들이 필요하다. <윔블던>류의 영국 워킹 타이틀 시리즈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처럼 미워할 수 없는 여주인공들이 등장한다.

ii. 나이 좀 들면 어때

지난해 삼순언니가 대 활약을 한 분야이다. 그러나 겨우 서른살에 노처녀 노릇을 하는 바람에 원성아닌 원성을 사기도 했다. <섹스 앤더 시티>의 언니들 정도는 되어줘야 나이 먹었다고 명함을 내밀지 않겠는가. <내 남자의 로맨스>처럼 과도한 비굴함으로 신파도 로맨틱도 못건드리는 부작용도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르네 젤위거의 육중한 몸매와 아줌마 빤스의 공로는 전세계적으로 인정되는 바이다. <뮤리엘의 웨딩>이나 <웨딩 싱어>의 그녀들도 놓칠수 없다.

그러나 역시 뭐니뭐니해도 <파니 핑크>의 마리아 슈레이더 언니가 본좌. 서른 넘은 여자가 시집가기는 원자폭탄 맞을 확률 보다 낮다는 말을 남겼으며 삼순이가 극중 초반에 <파니핑크> 비됴를 들고있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iii. 이게 진짜 연애지

어느정도 환상적인 연애는 스크린 속에서 볼만큼 봤다. 선남선녀의 연애에 대리만족도 느꼈고, 남들은 맨날 만나면 뭐하나 궁금하던 찰나에 저러고 노는구나하고 배우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은 이게 진짜 연애라고 알려주는 영화들이 있다. 이 부류의 관건은 얼마나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느냐이다.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주인공들과 한번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게 만들어주는 사건들이 등장해야만 웰메이드라 할 수 있다. 나도 그랬으나 잊고 있던 일들이 담담하게 나열됨으로써 영화가 끝나고서도 잔상을 남긴다.

<봄날은 간다>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친구들과 삼일 밤낮을 떠들게 만들었으며, <와니와 준하>처럼 담담하게 일상을 구석구석 여러번 보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을 놓치다>처럼 살아있는 대사도 필수.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처럼 꼭 젊고 탱탱한 언니 오빠들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으며, <비포 선라이즈>처럼 닿을 듯말듯 아쉬운 스킨쉽만 있어도 상관없다. 홀라당 벗고 나오는 몸매좋은 언니오빠들도 없고, 시끄러운 사건도 없어서 종종 지나치게 건조해질 위험이 있으나 그것이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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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ting Hill / 1999 / Directed by Roger Michell
· Love Actually / 2003 / Directed by Richard Curtis
· Two Weeks Notice / 2002 / Directed by Marc Lawrence
· Maid In Manhattan / 2002 / Directed by Wayne Wang
· Titanic / 1997 / Directed by James Cameron
· The Princess Diaries / 2001 / Directed by Garry Marshall
· She's All That / 1999 / Directed by Robert Iscove
· 너는 내 운명 / 2005 / 감독 박진표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2004 / 감독 이재한
·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 2004 / 감독 곽재용
· 늑대의 유혹  / 2004 / 감독 김태균
· French Kiss / 1995 /  Directed by Lawrence Kasdan
· You've Got Mail, 1998 / Directed by Nora Ephron
· Sleepless In Seattle / 1993 / Directed by Nora Ephron
· The Wedding Planner / 2001 / Directed by Adam Shankman
· Jersey Girl / 2004 / Directed by Kevin Smith
· Wimbledon / 2004 / Directed by Richard Loncraine
· My Best Friend's Wedding / 1997 / Directed by P.J. Hogan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 2002 / 감독 모지은
· 내 남자의 로맨스 / 2004 / 감독 박제현
· Bridget Jones's Diary / 2001 / Directed by Sharon Maguire
· Muriel's Wedding / 1994 / Directed by P.J. Hogan
· The Wedding Singer / 1998 / Directed by  Frank Coraci
· Keiner Liebt Mich, Nobody Loves Me / 1994 / Directed by Doris Dorrie
· 봄날은 간다 / 2001 / 감독 허진호
· 와니와 준하 / 2001 / 김독 김용균
· 사랑을 놓치다 / 2006 / 감독 추창민
· Something's Gotta Give / 2003 / Directed by Nancy Meyers
· Before Sunrise / 1995 / Directed by Richard Linklater

Posted by Purslane
Purslane/극장대기실2007. 2. 21. 23:43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영국을 향해 그들의 주권을 주장해 왔다. 블러디 선데이는 1972년 1월 30일에 있었던 그들의 평화행진이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북아일랜드의 독립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그들은 왜 1972년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큐적 기법을 통해 단지 당신을 그날에 뚝 떨어뜨려 놓는다. 거리를 걸으며 평화적 시위를 하려는 북아일랜드 데리시의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군대에게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아무도 시위대에게서 무기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어딘선가 들린 총성 한발에 14명의 시민이 부상을 당하고 13명이 사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서 광주를 떠올렸다. 아쉽게도 나는 광주를 잘 알지 못하는 세대이다. (그것이 회피할수 있는 핑계는 아니지만) 김영진기자는 광주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지식인뿐이라고 말했다. 올림픽을 치르며 시끌벅적하게 눈과 귀를 가리는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광주를 외면해왔다. 아직도 광주는 커다란 역사속의 사건이라기 보다는 <박하사탕>,「꽃잎>과 같은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과거의 일부로 투영될 뿐이었다.

우리가 아직 광주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린그래스 감독을 비롯한 아일랜드 작가들은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그동안 많은 영화를 통해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짐 세리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나 <더 복서>, 닐 조단의 <마이클 콜린스>등을 통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으며, 은폐된 사실을 규명하고 지나간 역사를 자꾸만 현실로 끌어당김으로서 아일랜드의 영화들은 전세계에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헐리우드는 아랍인들만큼이나 한때 IRA를 테러리스트로 자주 등장시켰지만 아일랜드 감독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듦으로서 사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가 역사속에 허구적 설정을 버무려 놓으면서 그 속에 개인사를, 단순히 멋진 배우를, 신파를 넣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흔히 이런 형식의 영화는 재미없고 지루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설명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순간순간을 놓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강한 힘을 지녔다. 그것이 사실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객관성, 정확성등이 진리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서 우리는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권력에 쉽게 무력화된다. 다큐멘터리도 결국은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잊게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린그래스 감독이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것은 매우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다큐멘터리에서 세련된 카메라 워크나 근사한 화면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핸드핼드로 사람들을 쫒아다니고, 적당히 잡음이 섞이고, 조악한 화면을 보여주면 더 사실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화면과 화면사이를 암전으로 처리하거나 마지막장면까지 끊임없이 여기저기에서 울려대는 전화벨소리는 더욱 영화를 real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분명히 카메라는 한편에 서 있다. 정작 총격이 시작되면 무력한 시민들은 도망다니고, 흰 수건을 흔들며 쭈그리고 뛰어다니지만 무장한 군인들은 정확히 무엇을 겨누는지도 모르는채 악을 쓰면서 사람들을 죽인다. 총격이 끝나고 시민들은 병원에서 죽은 형제, 부모를 찾아서 눈물을 흘리고 분노한다. 그러나 군인들은 시민들에게서 총한자루도 찾지 못한채 그것이 정당한 행위였으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행위였다고자신있게 말한다. 위증을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너무나 태연한 그 모습에 관객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영국군의 지나친 무력행사와 사건은폐는 침묵 시위를 하던 데리의 수많은 청년들에게 IRA에 가입해 총을 쥐어주는 역할을 했다. 세계권력의 주류인 영국을 용기있게 직접적으로 비판하므로서 아일랜드는 소정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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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Sunday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지 못했다. 자그마치 천만이나 되는 관객이 그 영화를 보았지만, 그 영화를 보고 역사에 대해 이야기는 하는 사람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 잘생긴 두 배우와 신파적인 설정, 여성으로서 이은주의 역할에 대한 비난따위가 전부였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해 최근까지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는 영화가 나왔지만 현실을 던져주는 영화는 없었다. 언젠가는 극장에서 우리도 신파가 아닌 역사의 한장면을 보게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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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Sunday / 2002 / Directed by Paul Greengrass

Posted by Purs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