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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게 뒤지고 있던 송가를 응원하느라 정신이 팔렸던 나는, 조코비치의 다리가 풀리자 환호성을 질렀다. "몰아붙여. 기회야!"라고 외치며. 4세트, 체력이 소진됐을만도 한 때였다. 조코비치는 호주오픈 들어서 늘 3:0 완승만을 거둬왔고, 4세트까지 시합을 이어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송가는, 체력이 바닥나도 정신력만으로라도 뛸 만 했다. 말 그대로 이 순간이 송가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일 것임에 분명했다.

4세트, 그 4세트에서, 내가 응원하던 송가가 마지막 기회를 잡고, 조코비치에게 엄청난 위기가 닥친 바로 그 순간에서, 난 아마도 진짜 테니스를 느낀 것 같다. 쓰러져가는 조코비치는 송가의 서비스가 조금만 날카롭게 들어오면 팔조차 뻗지를 못했다. 송가가 랠리를 길게 이어가려고 하면, 아예 포기해 버렸다. 조코비치는 절반을 버리고, 자신의 서비스 게임에만 모든 것을 걸었다. 190km가 넘는 서브는 마지막 타이브레이크의 순간까지 계속해서 쏟아졌다. 서 있기도 힘들었을 것이 분명할 만큼 수건으로 땀을 연신 닦아내면서, 끊임없이 왼쪽 허벅지를 왼 손으로 마사지해가면서, 조코비치는 거기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켜냈다. 이 때 조코비치가 사용한 가장 큰 무기는 송가로부터 계속해서 얻어 맞았던, 송가의 전매특허 '드롭샷'이었다.

송가도 멈춰 서있지 않았다. 랭킹 3위에, '황제' 페더러를 꺾고 한창 상승세를 타는 이 노련한 신예에게 있는 힘껏 맞섰다. 200km가 넘는 서비스 에이스를 연속으로 꽂아 넣고, 슬램덩크 같은 오버헤드 스매시로 조코비치를 위협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송가의 가장 큰 무기는 그때까지 조코비치로부터 계속해서 얻어 맞았던, 조코비치의 전매특허 '다운더라인'이란 사실이었다.

송가가 패배한 건, 경험부족에서 나온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신력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혹시 조코비치가 졌다면(타이브레이크를 놓쳤다면 십중팔구 그렇게 됐겠지만), 그것은 송가 만큼 버틸 수 없었던 상대적으로 부족한 체력 탓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 초반의 두 젊은 선수는, 경기 내내 발전하면서, 마지막까지 상대의 약점을 파고 들면서, 상대의 장점을 배워나갔다. 어떻게 이렇게 드라마 같은 경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걸까. 송가와 조코비치의 대결은 재미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나의 편견은 여지없이 틀렸다. 오늘의 호주오픈 결승은 단연 최고의 경기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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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가 골프를 재미없게 만든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테니스도 그럴 뻔 했다. 페더러와 나달이 맞붙는 결승을 수 차례씩 보아오면서 이젠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하드 코트와 클레이 코트를 구분하면서 우열을 나눠 보는 것도 한 두번, 이젠 할만큼 했다.

그 때 송가(혹은 총가)가 나타났다.(송가로 표기하는 것이 대세인 듯 싶어 앞으로는 송가로 통일) 랭킹 상위권의 시드 선수들을 줄줄이 꺾으며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결승까지 진출했다. 게다가 준결승 상대는 세계 2위 라파엘 나달이었다. 그것도 기존에 약했던 하드 코트에서 최근 물이 오를대로 올라서 '황제' 페더러를 꺾을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고 한 바로 이 호주 오픈에서.

아래의 통계를 보면 송가의 승리의 비결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랭킹도, 역대 거둬들인 상금 총액도 나달에게 밀리는 것은 기본이다. 경력에서 일단 송가는 나달의 적수가 아니다. 더욱이 ATP에서 결승에 오른 첫 시합이 그랜드 슬램일 정도로, 송가의 경력은 일천하다. 경기 내용도 마찬가지. 둘 다 화끈한 시합을 자랑하긴 하지만, 나달은 호주 오픈 본선에서 3:0 아니면 2:0의 파워풀한 스트레이트로 4강까지 바로 올라왔다. 단 한 세트도 상대방에게 내준 적이 없었다.

차이는 서비스였다. 쿼터파이널까지 68개를 쏟아 넣은 송가의 서비스 에이스는 페더러와 공동 선두였다. 나달과의 시합에서도 서비스 에이스는 쏟아졌다. 나달과의 4강전에서 쏟아낸 에이스만 17개였다. 최고 속도는 221km. 개인 기록은 231km까지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로딕과 같은 스피드에 페더러같은 영리함까지 갖춘 모양이다. 최고다.) 이 시합 이후 송가의 에이스는 85개가 됐다. 더욱이, 베이스라이너인 나달에게 송가는 위력적인 서브&발리로 정면으로 맞섰다. 나달이 아무리 스트로크를 깊이 찔러대도, 송가는 기필코 네트까지 전진해내고야 말았다. 그 위압감과, 예상을 뒤엎고 떨어지는 드롭샷에 나달은 시종일관 괴로워했다.

송가가 꼭 페더러하고 한 판 붙었으면 좋겠다. 미안하지만, 조코비치, 이번엔 아닌 것 같다. 프랑스라면 늘 눈을 흘기지만, 송가에게만은 예외다. 이 프랑스 특급열차가 너무 멋지다.

송가와 나달 비교(전적은 호주오픈 4강까지)

 

송가

나달

1.88m

1.85m

몸무게

90kg

86kg

나이

22세

21

랭킹

38위

2위

스타일

오른손 포핸드, 투핸드 백핸드

왼손 포핸드,투핸드 백핸드

에이스(호주 오픈)

68

28

더블 폴트

10

12

5세트까지 간 경기

0

0

4세트까지 간 경기

2

0

3세트 이하 경기

3

5

총 경기 수

173

124

총 상금액

48만4813달러

1398만3874달러

별명

코트의 무하메드 알리

떼제베(TGV)

자이언트 킬러

클레이 코트의 왕

엘 마타도르(투우사)

황소

마요르카의 미노타우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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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머리2008. 1. 2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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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의 일이다. 뉴욕타임즈의 시가총액 70퍼센트가 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고의 신문사가 처한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개선될 기미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모두가 뉴욕타임즈에 대해 비관적인 얘기를 하고 있고, 수십 조에 달하는 기업 가치를 자랑하던 세계 최대의 미디어그룹은 아마도 수년 내에 2조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수준으로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정도면, 한번 쯤 '질러볼만한' 싼 가격이 되는 것이다. 뉴욕타임즈가 드디어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많고 많은 매물 가운데 하나가 되는 순간이, 곧 올지 모른다.

뉴욕타임즈를 인수했을 때 가장 크게 이익을 볼 수 있는 곳은 구글이다. 과연 뉴욕타임즈의 사주인 슐즈버거 가문이 이를 용납하겠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뉴욕타임즈의 모든 기타 주주들이 구글이 제시할지 모르는 높은 가격에(이미 머독이 월스트리트 인수에서 한 차례 보여준 바 있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이렇게 회사를 파는 것 말고, 슐즈버거 가문에 다른 선택이 있을까? 답은 없어보인다. 게다가 무엇보다, '구글은 머독보다 낫다'는 공감대가 있질 않나. 뉴욕타임즈의 기자들과 구성원들은 '머독의 뉴욕타임즈'보다는 '구글의 뉴욕타임즈'에 열렬한 지지를 보낼 것이 거의 분명하다.

시장가치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을 적어낼 것이 거의 확실한 구글의 제안이 온다면, 뉴욕타임즈의 주주들은 그 쯤에서 이익을 실현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주 가문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슐즈버거 가문의 정체성이고, 사실상 모든 것이다. 그들은 '기자 정신'을 가훈처럼 물려내려오는 집안이고, 더 좋은 언론을 만들기 위해 수대 째 노력해 왔다. 게다가 돈은 이미 벌 만큼 벌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정의이고, 자신의 신념을 사회의 신념으로 만들겠다는 긍지이고, '뉴욕타임즈'라는 말이 상징하고 있는 그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슐즈버거 가문조차, 이미 알고 있다. 게임의 규칙은 바뀌었다. 이젠 '분류광고'라는 신문의 영역도 크렉리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웹사이트들이 가져가버렸고, 백화점 광고조차 신문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정보를 얻는 채널 자체가 변했다. 이젠 신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터넷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적은 바로 루퍼트 머독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을 산 머독에게 뉴욕타임즈는 경쟁자다. 이익에 반하고, 머독과 같은 사람을 공격해 왔던 바로 그 최대의 경쟁자가 이제 눈 앞에 매물로 나와 있는 상황이 됐다. 머독이 다우존스에 투자해 돈을 벌어보려고 6조 원을 투자했을까? 아니다. 경쟁도 치열하고, 산업도 이제 쇠퇴기에 불과한데 그럴 이유가 없었다. 이유는 하나, 뉴욕타임즈와 경쟁할만한 곳은 월스트리트 저널 뿐이고, 살만했기 때문이었다.

뉴욕타임즈의 선택은 별로 없다. 자금이 충분한 든든한 파트너를 옆에 업든지, 아니면 머독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보스톤 글로브'를 팔고, 레드삭스 지분을 팔고, NESN을 팔면서 나락의 길로 빠져드는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은 잠시 더 연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구글과 손잡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자금은 물론, 구글은 뉴욕타임즈의 영향력이 필요하고, 뉴욕타임즈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게다가 뉴욕타임즈는 그 브랜드가치에 비해 시장가격이 엄청나게 낮은 아주 매력적인 기업이기까지 하다. 쓰레기 뉴스로 가득찬 구글 뉴스에 '뉴욕타임즈'가 들어온다면, 그리고 모바일과 인터넷에서 뉴욕타임즈의 콘텐츠를 쏟아낼 수 있다면? 구글로서는 2조 원이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이것은 커버리지를 확대하려는 뉴욕타임즈의 정책과도 배치되지 않는다. 오직 한 가지 장애는 대주주의 결심 뿐이다.

네이버가 조선일보를 산다면 어떨까.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언론사들은 시장에 공개돼 거래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곳에선 아직도 시장 논리보다는 다른 논리가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기업으로서의 네이버에게 조선일보는 엄청난 매력이다. 조선일보의 네트워크와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곳에도 방씨 가문이라는 존재가 있다. 그들은 대대로 언론사를 운영하며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슐즈버거 가문과 비교해 자신들의 회사에 대한 애착이 덜할 리 없다. 홍씨 가문도, 김씨 가문도 다를 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고, 한국 언론사의 선택 또한 별로 없다. 신문 시장은 계속 하락세이고, 여파는 지상파 방송국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인터넷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상황 앞에서 자신있게 버틸 수 있는 언론사라는 것은 그다지 보이질 않는다. 한국에서 구글만한 자본력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건 누구일까. 네이버 뿐이다. 아니, 어쩌면 조선일보는 루퍼트 머독일지도 모르겠다. 네이버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 거짓말같은 얘기들이, 진실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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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머리2008. 1. 2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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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가 죽었을 때, 우리 신문은 저런 걸 했을까? 버지니안 파일럿 외에도, 히스 레저를 위로 올린 신문은 많았다. 하지만 전 세계의 증시가 요동쳤을 때 저런 디자인을 보여준 곳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뚝 떨어진' 주가 그래프를 보여줬을 뿐. 디자인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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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도 아니다. 프랑스가 뒤집혔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상륙한 떼제베(TGV)" 총가 덕분이다. 프랑스만이 아니다. 호주 오픈이 열리고 있는 멜버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유럽 등의 테니스팬들은 총가를 보면서 "테니스계의 무하메드 알리"라는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크게 다를 게 없다. 테니스 게시판 등을 돌다보면 모두 총가 얘기 뿐이다. 급기야 22살의 조 윌프리드 총가(Joe Wilfried Tsonga)는 이 전통의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눈 앞에 단 세명만을 남겨둔 채 4강까지 올라섰다. 단 세 명은 그저 그런 세 명이 아니다. '황제' 로저 페더러와 랭킹 2위의 라파엘 나달, 3위의 노박 조코비치. 모두 최고의 선수들이다. 지금 총가의 홈페이지에는 "하나, 둘, 셋 그리고 총가!"라는 구호가 올라 있다. 도대체, 어떤 이변이 일어날까.

서비스에이스 68개. 이번 호주오픈에서 현재까지의 최고 서비스에이스 기록이다. 주인공은 페더러, 그리고 바로 총가다. 적어도 서비스에서는 세계랭킹 1위에 전혀 뒤지지 않는 모양새다. 게다가 이 서비스에이스가 약한 선수들 앞에서 터져나왔던 것도 아니었다. 앤디 머레이(9위)와 리샤르 가스케(8위), 미하일 유즈니(14위)를 상대로 뽑아낸 기록인 것이다. 이들에게 무명의 총가가 이길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총가의 세계랭킹은 38위에 불과한데, 그나마 2년 전 345위에서 급격히 상승했다. 이 정도면 거의 "자고 일어나 눈을 떠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수준이다. 폭발적인 서비스에이스는 곧바로 바람처럼 달려드는 '서브&발리'로 이어진다. 아무리 상대방의 리턴이 거세고, 패싱샷이 날카로워도, 총가는 좀처럼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호주오픈 동영상에서 본 총가의 경기는 경이적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쉽게 점수를 따고, 어렵게 점수를 내주는 스타일의 경기였다. 서비스에이스와 과감한 네트플레이, 물러서지 않는 공격성 덕분에 총가는 랠리가 거의 없이 점수를 낸다. 하지만 총가가 리턴을 할 때 상대방이 그에게서 포인트를 뽑아내려면 기나긴 랠리를 벌여야만 한다. 젊고, 파워가 넘치는 총가는 아무리 힘든 코스도 포기하지 않고 받아내며 상대를 괴롭힌다. 물론 먼저 지쳐 떨어지는 건 상대방이다.

총가의 홈페이지에 적힌 "만약 꼭 필요한 기술이 있다면(
Si tu devais avoir)" 코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달과 맞붙을 4강전의 결과가 궁금하다.

Si tu devais avoir :

Le Service de(서비스): Roddick(로딕)

Le Retour(리턴) : Agassi(애거시)

Le Coup droit(포핸드) : El Aynaoui(유네스 엘 아이나위)

Le Revers(백핸드) : Federrer(페더러)

Le Volée(발리) : Sampras(샘프라스)

Le Passing shot(패싱샷) : Shrichapan(파라돈 스리차판)

L’ Amortie(드롭샷) : Coria(기예르모 코리아)

Le Lob(로브) : Hewitt(휴잇)

Le Smash(스매시) : Henmann(헨만)

Le Jeu de jambes(스텝) : Clément(아르노 클레망)

Le Physique(체력) : Canas(기예르모 카나스)

Le Mental(정신력; 멘탈) : Hewitt(휴잇)

Le Palmarès(승리의 영광) : Sampras(샘프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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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머리2008. 1. 1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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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1면 디자인이 좋은 신문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1면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도 못한다. 특히나 접혀 있는 상태의 지면 상단 디자인은 더욱 중요하다.
버지니안 파일럿의 이 1면은 여러 측면에서 기존의 신문 1면과 다르다. 제호보다 더 높은 곳에 그 날의 주요 행사가 소개돼 있고, 신문을 가판대에 놓을 때 눈에 보이게 되는 반으로 접어 상단부에는 빽빽한 글씨의 기사가 전혀 없다. 콜라쥬와 인포그래픽, 제호 만으로 1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채웠다. 그렇다고 하단부가 엉망인 것도 아니다. 스포츠 사진을 저 정도로 효과적으로 사용하기도 쉽지 않다. 독자를 알고, 목적이 뚜렷하고, 중요한 것을 골라내는 능력이 남다르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신문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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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지금 와서 세스 고딘을 들먹일 필요가 없는 거다. 원래부터 마케팅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이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휘어잡을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

세상의 그 어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세월의 힘'을 이길 수는 없다. 우리는 처음 '취권'을 찍다가 기고만장해져서 헐리우드에 진출해가지고는 '캐논볼' 시리즈 따위로 허송세월을 하던 성룡을 좋아하지 않는다. 취권은 좋아했지만, 성룡의 기고만장함까지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눈물을 쏟으며 아시아로 돌아와서 아시아 투어를 통해 아시아 각국의 어린이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하던 성룡은 기억한다. 성룡은 한국에도 수 차례 반복 방문하며 "내년에 자전거를 갖다 줄게"라고 말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같은 보육원을 연거퍼 방문하곤 했다. 그것은 진심이다. 하지만, 진심 또한 짧다. 나이가 환갑이 다 된 지금, 뒤늦게 다시 헐리우드를 두드리고, 때때로 아시아에서 영화를 찍곤 하는 성룡은 진심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몸으로 코미디처럼 보이는 아크로배틱 액션을 하고, 그러다 다치고, 다치는 자신을 보면서 사람들이 즐거워 한 대가로 돈을 버는 인생. 그 인생에는 즐거움도 있지만, 즐거움 만큼의 처연함도 있다.

애플이 지금 왜 이리도 인기일까. 그건 애플이 평생을 저따위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1등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자유로움과 히피적인 영혼이란 것은 다른 곳에는 없고, 오직 쿠퍼티노의 애플 기숙사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고 우겨왔던 그 말도 안 되게 독단적인 정신으로 벌써 30년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1977년에 20대였던 잡스는 어느새 50대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검정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애플의 광신도들과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 잡스는 경박해 보였지만, 30년을 경박하게 살아왔던 그에게 지금은 '무게'가 붙는다. 그 무게야말로 그의 '내공'이 된다.

내가 1984년의 이 매킨토시 광고를 보면서 느낀 건 이런 30년의 힘이다. 아마도 이 광고가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몹시도 건방져 보였을 테고, 아이디어만 넘치고 가벼워 보였을 것이 뻔한 저 광고. 하지만 한 회사가 저런 식의 건방질 정도로 자유로움만을 강조하는 컨셉을 30년 유지한다면, 그 다음에는 그 회사는 그렇게 생겨먹은 회사이기에 무슨 마케팅을 해도 자유로움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다. 애플이 한다면, Think Different일 것만 같은 30년 간의 세뇌가 매니아를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폰을 백날 따라하고, 아이팟을 아무리 카피해봐야, 그런 식으로 하루를 사는 당신들에게 미래는 없다. 당신들에겐 역사가 없으니까.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고 성공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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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머리2007. 12. 20. 19:26

MBTI 테스트라는 걸 드디어 했다. 남들이 다 한다기에 전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의외로 잘 맞는 것 같다. 역시, 직업은 제대로 고른 것인지도. -_-;

ENTP형

민첩하고 독창적이며 안목이 넓으며 다방면에 관심과 재능이 많다.

독창적이며 창의력이 풍부하고 넓은 안목을 갖고 있으며 다방면에 지능이 많다.
풍부한 상상력과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솔선력이 강하며 논리적이다.
새로운 문제나 복잡한 문제에 해결 능력이 뛰어나며 사람들의 동향에 대해 기민하고 박식하다.
그러나 일상적이고 세부적인 일을 경시하고 태만하기 쉽다.
즉, 새로운 도전이 없는 일에는 흥미가 없으나 관심을 갖고 있는 일에는 대단한 수행능력을 가지고 있다.
발명가, 과학자, 문제해결사, 저널리스트, 마케팅, 컴퓨터 분석 등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 때로 경쟁적이며 현실보다는 이론에 더 밝은 편이다.

* 일반적인 특성 *
 
한번들은 얘기를 또 듣는 건 싫어한다
5대양 6대주가 활동 무대 이건 싫어한다
여자인 경우 치마를 두른 남자 같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쉽게 해결한다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 것이 없다
전공이 여러 가지이다
굉장히 다재다능하고 능력이 있다
단어 하나로 2시간도 이야기 한다
초, 중, 고등학교 의 규칙생활이 힘들 수 있다
일상적인 일에 쉽게 싫증을 느낀다
007 제임스 본드형 이다
인간관계가 자유롭다
똑같은 강의를 반복 못한다
관심분야는 대단히 박식 관심 없는 분야는 대단히 무식
경쟁심이 많다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일은 지루하고 힘들어 한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빠뜨리거나 빼먹는 일이 많다
다른 누구의 권유나 참견은 질색이다
자기의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끈기 있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지 못한다
말을 나오는 대로 막할 수 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방 친해진다
팔방미인, 눈썰미가 좋다
길게 설명하는 건 짜증난다

* 개발해야할점 *
 
말을 할 때 저 사람이 어떻게 느낄 까 먼저 생각하는 것이 필요

일의 끝마무리에 대한 인내심이 필요

타인에 대한 칭찬, 격려, 인정이 필요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07. 12. 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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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문제는 경제란 말이다. 이 바보야.
1992년 미국 대선, 무려 91%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즐기며 한가로이 재선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버지 부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는 아칸소라는 시골 주지사 출신의 젊은 정치인 빌 클린턴에게 참패하고 만다. 냉전을 종식시키고,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미국의 지도자가 시골뜨기 정치인에게 질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사실, 경제 전문가는 클린턴보다는 부시라고 해야 했다. 부시는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이고, 클린턴은 같은 대학에서 로스쿨을 마친 변호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경제=클린턴'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속의 저 인물, 제임스 카빌의 치밀한 선거전략 덕분이었다. 카빌의 전략은 단순했다. 전쟁 영웅에게 외교 안보로 맞붙어봐야 승산이 있을리 없으니, 경기침체를 노리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클린턴은 무리없이 재선에도 성공하고 만다.

직선제가 도입된 후 우리의 대선 화두는 우선 민주주의였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을 몰아내고, 한 번 제대로 바꿔보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DJ의 전략은 단순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였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과 결합한 효과적인 캐치프레이즈는 DJ를 청와대에 입성시켰다. 같은 시간, 이회창은 뭘 하고 있었나. 기억에 남는 구호가 있었나. 그저 듣기 좋은 평이한 말만 쏟아낼 뿐이었다.

노무현의 화두는 '평화'였다. DJ보다도 더 단순했다. 노무현은 유권자들에게 외쳤다. '전쟁이냐, 평화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DJ 정권의 실정과 부패나 강조하고, 다시 잃어버린 기득권을 찾아오겠다며 '신보수주의'를 내걸었던 이회창은 역시 매력이 없었다. 거기엔 단순함의 미학도, 진정성도 없어 보였다.

이회창은 올해 대선에서조차 빈곤한 선거 전략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회창의 캐치프레이즈는 '반듯한 대한민국'. 자신을 지지하지 않고 있는 한국인을 '반듯하지 못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듯한 이 구호가 먹힐 리 없었다. 도무지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울 생각이 없어보이고, 막판까지 내분으로 시간을 소모한 통합신당의 정동영도 제대로 된 선거전략을 내세우는 데 실패했다. 그저 이명박을 욕할 뿐이었다. '문제는 경제란 말이다, 이 바보야.' 이명박의 메시지는 단순했고, 가슴을 울렸다. 이명박이 경제 전문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슈를 만들어내고 선점한 것이 이명박 측이라는 것이었다.

제임스 카빌은 1944년생이다. 아직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요즘같은 세상에서 아마 10년은 더 열정적으로 일할지도 모른다. 통합신당은 앞으로 카빌을 초청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스라엘의 에후드 바락을 총리로 만들었고, 에르네스토 세디요 멕시코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 전략을 짜줬으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선거 캠페인에까지 관여했던 황금 손. 저런 사람이 한국 정치판에 끼어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Posted by 흰솔
토끼머리2007. 12. 12.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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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이었다. 내 대학 시절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교양수업. 지금은 정년퇴임하셨지만,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해양학 교양수업 교수님이셨을 이창복 선생님이 대뜸 "현장수업을 떠납니다"라고 하셨다. 대개의 인문대 교수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현장과 유리된 교육에 매우 익숙하다. 도서관에 진리가 있다고 믿는 그들은 문학을 다루면서도 삶과는 멀리 있었다. 그들과 4년을 보냈던지라, 서산 앞바다에서 수업을 하겠다는 공대 선생님의 제안은 몹시도 두근거렸다. 졸업 직전의 복학생이 오죽하면 야외수업을 간다는 말에 전날 밤잠까지 다 설쳤을까.

그날 그 수업 이후, 서산 앞바다가 달라 보였다. 아니, 이후 만나는 모든 바다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게들이 생존을 위해 모래 속의 아주 조그만 양분을 섭취하고는 다시 모래를 내뱉으며 만들어내는 조그만 모래공들, 천천히 형성되는 사구(dune)와 사구를 망가뜨리는 횟집 및 카페들, 자신들을 밀어낸 횟집과 카페가 싫어 이별이라도 하는 듯 뭍에서 멀어져만 가는 하얀 백사장. 달리기를 하듯 맹렬한 속도로 뻘 위에 서 있는 사람을 휩쓸어가기도 하는 격렬한 조수, 조수의 위협에도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뻘 깊숙히 박아놓은 장대... 무식하기 이루 말할 데 없던 나는 그 곳에서 처음 바다를 만났다. 필사적인 생명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곳.

지금, 그곳이 검게 덮여간다. 5년 전에는 그렇게도 아름다웠던 그곳이. 과연 우리에게 그 수많은 필사적인 삶을 "실수였다"며 한순간에 송두리째 앗아갈 권리라는 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걸까. 미안하다. 정말, 나라도, 대신, 미안.
Posted by 흰솔